“성범죄, 나도 언제든 당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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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나도 언제든 당할 수 있다"
  • 취재기자 김민지
  • 승인 2014.03.16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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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 개선 위한 ‘DON’T DO THAT’ 캠페인 폭발적 확산
▲ 성범죄 인식 개선 캠페인 ‘DON’T DO THAT‘의 공식 엠블럼(사진 제공: DON’T DO THAT).

2012년 3월, 인터넷 커뮤니티 ‘다음’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이 글은 왜 끔찍한 성범죄에 비해 가해자 처벌은 솜방망이냐고 열변을 토했다. 그리고 성범죄에 걸맞는 처벌이 가해자에 내려지도록 시민들이 직접 나서자고 주장했다. 이 글을 본 사람 중 서울에 사는 여섯 명이 모였다. 그들은 당장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서자고 결의했다. 이 때 준비된 피켓 슬로건이 ‘Don’t do that!’이었다. ’여성들을 성폭행하지 마‘란 의미로 이런 슬로건을 내건 이들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서울 신촌 홍대 거리로 나갔다. 그리고 목청껏 ’Don’t do that!‘을 외쳤다.

이것이 성범죄 인식을 바꾸자는 캠페인을 주도하는 단체 ‘DON’T DO THAT’의 시작이었다. 이름도 없던 그들이 외쳤던 첫 구호 ‘Don’t do that’이 그들 캠페인 공식 명칭이기도 하고 그 캠페인을 주도하는 단체명이 된 것이다.

‘DON’T DO THAT’ 모임은 ‘DON’T DO THAT’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세 가지 방향을 부여했다. ‘DON’T DO THAT’이란 슬로건은 성범죄 가해자들에게 “강간하지 마!” 성범죄 피해자들에게는 “너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마!” 그리고 일반 시민들에게는 성범죄가 “피해자의 잘못이라고 하지 마!” “나랑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마!”란 메시지를 담고 있다.

‘DON’T DO THAT’ 서울 모임 활동이 다시 다음 카페에 소개되자, 여러 지역에서 참여하고 싶다는 회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서울 모임은 각 지역에 흩어진 그들에게 캠페인의 의미를 공유하고 전파했다. 그러자 ‘DON’T DO THAT’ 지역 모임들이 구성되고, 지역별로 ‘DON’T DO THAT’ 캠페인이 펼쳐졌다. 활동 중인 회원들이 약간씩 바뀌면서 현재는 서울 모임에 30명의 회원이 참여하고 있고, 부산 모임에는 30명, 대전 모임에는 10명, 대구 모임에는 10명, 광주 모임에는 5명이 각각 팀을 이뤄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DON’T DO THAT 부산 팀은 서울 팀과 거의 같은 시기에 출발했다. DON’T DO THAT 부산 팀은 2012년 3월에 10명의 회원이 모여 결성됐다. 부산 모임의 시작은 미약했으나, 두 달에 한 번씩 꾸준히 ‘DON’T DO THAT’ 캠페인을 벌인 결과, 지금은 30명의 팀원이 모여 있고, 거리 캠페인 횟수도 16차에 이르렀다. 전국의 팀 중 가장 활발한 성과다. 부산 팀원들은 20세에서 30대 초반의 여자들로 구성돼 있고, 팀원의 대부분은 대학생이다. 이들 중 서너 명은 대학을 졸업한 직장인들이다.

부산 팀은 주로 서면 번화가에서 시민들을 상대로 DON’T DO THAT 캠페인을 펼친다. 부산 팀 캠페인은 원래의 DON’T DO THAT 캠페인 세 가지 목표를 구체화했다. 그것은 성폭행 피해자를 탓하는 우리의 현실과 잘못된 성교육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 성범죄 가해자를 감싸는 우리나라 성범죄 처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성폭행 방지 수단으로 언급되는 성매매 합법화를 반대한다는 것 등이다.

▲ 3월 1일, DON’T DO THAT 부산 팀이 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삼일절 행진 캠페인을 진행한 모습(사진제공: DON'T DO THAT)

최근 DON’T DO THAT 부산 팀은 새로운 캠페인을 고안했다. 그것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위안부를 아시나요’ 캠페인이다. 작년 3월 1일, 삼일절을 맞아 시작된 위안부 알리기 캠페인은 위안부 문제의 심각성을 시민들에게 알리고, 정부가 일본 사과 촉구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호소를 담고 있다. DON’T DO THAT 부산 팀은 작년 8월 27일 국치일에 부산시 수영구에 있는 위안부 역사관 ‘민족과 여성 역사관’을 위한 후원금 모금 운동을 벌였고 그 결과 모인 후원금 132만 원을 ‘민족과 여성 역사관’에 전달했다. 지난달 28일부터 이번 달 1일 사이에는 더 많은 사람에게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DON’T DO THAT 부산 팀은 일어와 영어로도 피켓을 제작해 서면 거리에서 한복을 입고 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삼일절 행진을 펼쳤다. 현재 재정 곤란을 겪고 있는 부산 유일의 위안부 역사관 ‘민족과 여성 역사관’을 위해 2차 후원금 모금 운동을 진행 중이다.

▲ 작년 8월 27일 DON’T DO THAT 부산팀이 부산 민족과 여성 역사관에 후원금을 전달하는 모습(사진제공: DON’T DO THAT)

DON’T DO THAT 부산 팀은 작년 8월 31일, ‘어떤 옷차림을 하고 있든, 성폭행당해도 되는 여성은 없다. 성욕과 성폭행 욕구는 다르다’는 주제로 부산 서면 거리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슬럿워크(slut walk)를 진행했다. slut란 난잡한 여자라는 뜻으로 슬럿워크란 난잡한 여자들의 행진이란 의미다. 이는 캐나다에서 시작된 운동으로, 여성들이 노출이 심한 옷을 입는 것이 남자들의 성욕을 자극하여 성폭행을 유발한다는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여성들이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거리를 행진하는 시위를 가리킨다. 다시 말하면, 여성들의 노출이 성범죄의 원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여성들의 노출로 항의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DON’T DO THAT 부산 팀 대표 배재원(26) 씨는 처음 슬럿워크를 기획했을 때 캠페인의 의미가 왜곡될까 봐 걱정이 많았다. 그녀는 “노출한다는 것에 대한 걱정이 있었지만, 옷을 입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고, 노출이 성범죄의 원인이 아니란 것을 강조하고 싶었어요”라고 말했다.

성범죄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DON’T DO THAT 부산 팀이 벌인 각종 DON’T DO THAT 캠페인은 작년 10월 25일 경남여성회로부터 ‘2013 성 평등 조성사업’ 우수 프로그램 1위로 선정되는 기쁨을 누렸다.

하지만 성범죄에 대한 사회 인식을 개선하는 일은 마냥 쉽지만은 않다. DON’T DO THAT 부산 팀원들이 시민들에게 성범죄에 대해 설명하려고 다가가면 사이비 종교 포교자로 오해받는 일도 종종 발생했다. 캠페인 중인 팀원들에게 “저 사람들이 성폭행 피해자 아냐?”라고 수근대는 사람들도 있고, “여자들이 지금 밖에 그런 걸 들고 나와서 뭐하는 짓이냐”라고 상처를 안기는 막말을 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배재원 대표는 이런 수모들이 DON’T DO THAT 팀원이 모두 우리 사회의 약자인 여성들로 구성된 데 따른 어려움이라고 설명했다. 배 대표는 “저희 캠페인을 여성만을 위한 운동이 아니에요. DON’T DO THAT 캠페인은 성범죄 가해자와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우리 모두를 위한 캠페인이에요”라고 말했다.

DON’T DO THAT 모임은 다음 커뮤니티 카페 회원들이 모아 준 연간 후원금 200만 원을 지역별 활동비로 나눠 쓰고 있다. 이 돈은 캠페인을 위한 피켓 제작 재료와 인쇄비로만 사용되고, 예산이 부족할 때에는 팀원들의 사비로 보충한다. 팀원의 대부분이 대학생이라 금전적인 문제에 늘 부딪친다. 각자의 진로로 또 다른 어려움으로 다가오고 있다. 직장인이었던 부산 팀원 한 명은 캠페인에 대한 직장 남자 직원들의 편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활동을 그만두게 되었다. 하지만 남아 있는 부산 팀원들은 대부분 가족이나 남자 친구의 반대를 무릎 쓰고 활동 중이다.

작년 8월 15일 부산 팀이 광복절을 맞아 위안부 캠페인을 진행할 때, 울산에서 여중생 2명이 소식을 듣고 찾아와 팀원들과 함께 시민들에게 캠페인 전단지를 직접 나눠 준 적이 있었다. 고생이 많다며 간식과 마실 것을 사서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팀원들의 캠페인 취지를 듣고 자기 일처럼 분노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이들로부터 DON’T DO THAT 부산 팀은 용기와 에너지를 얻는다,

DON’T DO THAT 부산 팀은 성범죄는 성욕 때문이 아니라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는 행위일 뿐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게 성범죄에 대한 사회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DON’T DO THAT 캠페인의 핵심이다. 배재원 대표는 “나비효과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의 작은 목소리가 커다란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조그마한 원동력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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