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편해지는 'ASMR'이래서 들었더니 낯뜨거운 소리 나오는 음란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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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편해지는 'ASMR'이래서 들었더니 낯뜨거운 소리 나오는 음란물
  • 취재기자 정인혜
  • 승인 2017.11.10 06: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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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엔 마사지·산부인과 진료 등 상황극 빙자한 음란물만 수백 만 개...청소년 사이에서 '19금' ASMR 인기 / 정인혜 기자
정신적인 안정감을 가져다 주는 소리를 녹음한 'ASMR' 동영상이 높은 인기를 구사하고 있다. 청자들은 주로 이어폰을 꽂고 영상을 감상한다(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생활 속의 잡음을 담은 동영상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이른바 백색 소음으로 분류되는 ASMR 동영상이다. 그러나 ASMR을 빙자한 사실상의 음란 동영상이 유튜브 등을 통해 범람하고 있어 규제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ASMR은 ‘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의 약어로, ‘자율 감각 쾌락 반응’이라는 뜻이다. 쉽게 말해 정신적인 안정감을 가져다 주는 소리라는 의미다. ‘사각사각’ 가위질을 하는 소리에서부터 책장 넘기는 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바스락거리는 소리까지 다양하다. 학교, 직장 스트레스에 시달리거나 밤에 잠을 설치는 사람들이 주로 찾는다.

ASMR 영상을 가장 많이 접할 수 있는 곳은 단연 동영상 스트리밍 사이트 ‘유튜브’다. 유튜브에서 ASMR을 검색하면 국내에서 제작된 영상뿐 아니라 해외 영상도 수두룩하게 떠오른다. ASMR이라는 단어를 제목에 포함한 동영상만 1000만 개를 넘는다.

최근 유튜브에 올라오는 ASMR 동영상은 ASMR 영상 유행 초창기에 주로 등장한 가위질 소리 등에서 한걸음 발전해 새로운 양상을 보인다. 요즘 유행하는 ASMR 동영상은 대개 사람이 속삭이는 소리, 귀 파주는 소리 등을 주제로 제작된다. 

카메라 녹음 기술이 발전해 이어폰을 꽂고 들으면 단순 영상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의 현실감이 느껴진다. 대다수 ASMR 유튜버들은 소리가 주는 감각을 극대화하기 위해 좌우 소리를 다르게 녹음할 수 있는 바이노럴 마이크를 이용한다.

마음의 안정을 주기 위해 제작된 동영상이라지만, 최근 이 같은 제작 의도를 의심케 하는 ASMR 동영상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상황극’ ASMR 영상이 유행하면서부터 나타난 현상이다. 어떤 상황을 가정하고 그 상황에 맞춰서 롤 플레이(roleplay)를 하는 것이다.

상황극 ASMR은 보통 청자를 서비스 향유자로 가정해 제작되는데, 이때 배경으로 주로 등장하는 상황에는 피부 마사지, 심리 상담, 병원 진료 등이 있다. 청자로 하여금 ‘보살핌’을 받는 느낌을 갖게 하는 게 주목적이다. 일부 유튜버들은 이 같은 특징을 이용해 선정적인 상황을 가정, 애무를 연상하는 대사를 녹음한 ASMR 동영상을 제작한다.

불면증을 겪고 있는 직장인 오모(27) 씨는 최근 지인에게서 ASMR 동영상을 추천받고 이를 들었다가 깜짝 놀랐다. 영상에 등장하는 목소리가 마음을 편하게 해주기는커녕 선정적인 말을 늘어놨던 것. ‘잠 설치는 여자 친구를 재워주는 남자 친구’라는 상황극을 기반으로 제작된 해당 동영상에서는 ‘다리가 섹시하네’ 같은 낯 뜨거운 말만 흘러나왔다.

오 씨는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소리라기에 찾아 들었는데 평소보다 잠을 더 설쳤다”며 “무슨 이런 콘텐츠로 변태 짓을 하려고 그러는지...ASMR이라는 말 자체를 하지 말든가 저런 소리 들으면서 마음 편하게 잠 잘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고 혀를 끌끌 찼다.

유튜브에 'ASMR 19'를 검색하면 400만 개의 음란 ASMR 동영상이 떠오른다(사진: 유튜브 캡처).

비이상적인 상황을 설정해 특정 인물에 수치심을 느끼도록 하는 가학적 성향의 ASMR 동영상도 다수다. 예컨대 산부인과, 면접장, 화장실 등이다. 검색만 하면 바로 찾을 수 있는 터라 접근이 어렵지도 않다. 

유튜브에 ‘ASMR 19’을 검색했더니, 떠오르는 동영상은 400만 개에 달했다. 해외에서 제작된 영상도 다수지만, 한글 제목의 영상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가장 큰 문제는 청소년들의 접근을 막을 방법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선정적인 내용이 여과 없이 등장하지만, 유튜브에 있는 ASMR 동영상은 성인 인증 없이도 누구나 볼 수 있다. 음란물 ASMR 등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중학생 김모(15) 군은 “친구들 사이에서 유명한 19금 ASMR 유튜버도 있다”며 “이어폰만 꽂으면 실감 나는 상황극을 경험할 수 있어서 인기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를 관리할 방법이 있을까. 우선 유튜버에 등록된 동영상은 일정 수준 이상 신고가 접수되면 관리자 측에서 임의로 삭제 조치할 수 있다. ‘가이드라인’에서 벗어난 동영상도 관리자가 삭제한다. 

다만 유튜브에서는 해당 유튜버의 채널 자체가 아닌 문제가 된 영상을 삭제하는 게 기본 방침이기 때문에 대개 유튜버들은 또다시 새로운 동영상을 올린다. 이에 대한 대책은 아직 마련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유튜브 측은 “가이드라인에 따라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며 “경고를 받은 후에도 개선이 없는 채널이나 영상에 대해서는 임의로 삭제한다”고 원론적인 입장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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