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원대 술값도 OK…모르는 사람끼리 만나 각출하는 ‘클럽 조각 모임’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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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 원대 술값도 OK…모르는 사람끼리 만나 각출하는 ‘클럽 조각 모임’ 인기
  • 취재기자 정인혜
  • 승인 2018.03.21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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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적당히 아껴 마시기', '부킹녀 가로채지 말기' 등 규칙까지…"같은 취향 만나니 좋아" / 정인혜 기자
모르는 사람끼리 술값을 각출해 모이는 '조각 모임'이 새로운 유흥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은 미국 라스베가스의 한 나이트클럽(사진: 구글 무료이미지).

시쳇말로 ‘뿜빠이’라고 하는 더치페이 문화가 한국 사회에도 자리 잡았다. 남녀 데이트뿐 아니라 부부, 친구, 선후배, 가족 사이에서도 각자 계산하는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현금이 없을 때는 카드결제도 나눠서 하는 추세다. 지나치게 계산적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서로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돼 환영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청년들에게 더치페이는 이미 익숙한 문화다.

이 가운데 유흥비용을 각출해 지불하는 ‘클럽 조각 모임’이 새로운 유흥 트렌드로 각광받고 있다. ‘조각’은 유흥업소 비용을 ‘조각’내 각출한다는 의미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는 않지만, 비싼 술값을 지불해야하는 클럽에 가고 싶은 젊은이들의 모임을 ‘조각 모임’이라 부른다. 인기 있는 클럽 룸 이용료는 적게는 50만 원에서부터 100만 원을 훌쩍 넘어서기도 한다. 조각 모임은 이 같은 경제적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결성된다.

클럽, 헌팅 등 유흥 정보를 한 데 모아놓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조각 모임원 모집 글이 올라온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은 물론 지방도 예외는 아니다. 글쓴이가 “서면 나이트클럽 가실 분”이라고 글을 올리면, 날짜와 장소를 조율한 이들이 만나 주대를 각출하고 클럽에 입장하는 식이다. 모집인원은 보통 4명에서 10명. 물론 초면이다.

한 네티즌이 올린 조각 모임 멤버 모집 글. 'ㅎㄹ'은 홈런의 초성으로, 클럽에서 처음 만난 여성과의 잠자리를 뜻하는 은어다(사진: 네이버 캡처).

직장인 하모(29) 씨는 조각 모임 마니아다. 주변 친구들은 유흥을 좋아하지 않고, 혼자서 100만 원이나 되는 주대를 낼 자신도 없으니 조각 모임만큼 좋은 게 없단다. 그는 “솔직히 클럽에서 룸을 잡지 않고서는 잘 놀기 어렵다. 그렇다고 하루 노는데 몇백 만 원을 쓸 수는 없지 않냐”며 “처음에는 모르는 사람들과 술 먹고 어울리는 게 어색했는데, 계속하다 보니 이것도 나름대로 재미있다”고 조각 모임 예찬론을 폈다.

모르는 사람들이 모이는 만큼, 나름의 규칙도 있다. ‘돈은 만난 자리에서 조각장에게 납부할 것’, ‘스킨십은 조각원들이 허용했을 때 또는 다른 조각원의 파트너가 없을 때만 가능’, ‘술은 적당히 아껴 마실 것’, ‘다른 조각원의 부킹녀를 가로채지 말 것’, '옷은 깔끔하고 튀지 않게 입을 것', '다른 조각원들과 비교될 수 있는 고가의 악세사리 금지' 등이다. 이 같은 룰을 어긴 조각원은 ‘진상’으로 취급받아 다음 번 모임에 참여할 수 없다. 조각원 모집 카페에서도 좋은 평판을 얻기 힘들다.

굳이 까다로운 규칙까지 지켜가면서 모르는 사람과 클럽 룸에 들어가려는 이유는 뭘까. 조각 모임에 참가해본 경험이 있다는 직장인 김모(30) 씨는 이를 ‘권력’에 빗대 설명했다. 일반 고객들이 시끄러운 스테이지에서만 시간을 보내는 데 반해, 룸을 오갈 수 있으면 우월감이 생기기도 한다고. 웨이터들의 극진한 서비스도 룸을 잡으려는 이유 중 하나란다.

김 씨는 “클럽 룸은 사람들이 춤을 추면서 노는 스테이지와 분리돼 있는데, 스테이지에서 춤추는 사람들 보면 묘한 우월감도 생긴다. 클럽 실권을 내가 쥐고 있는 것 같다”며 “스테이지에 있으면 여자들 관심을 받기도 어렵다. 룸에 있는 사람들이 홈런을 칠 확률도 높다”고 말했다. ‘홈런’은 클럽에서 만난 여성과의 잠자리를 뜻하는 은어다.

유흥업소 관계자들에게도 조각 모임은 효자 중의 효자다. 웨이터들이 직접 나서 조각 모임을 꾸리기도 한다. 유흥업소 한 관계자는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유흥을 즐기는 목적은 같기 때문에 주말에는 조각 모임을 통해 업소를 찾는 경우가 많다”며 “비싼 방은 부담을 느낄 수 있는데, 손님들은 서로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경제적인 부담이 줄어들어 좋고, 업소 입장에서는 공실을 없애는 것이니 상부상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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