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 입고 가면 "어서 오세요" 환대, 청바지엔 시큰둥...백화점 명품관의 손님 차별, '을의 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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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 입고 가면 "어서 오세요" 환대, 청바지엔 시큰둥...백화점 명품관의 손님 차별, '을의 갑질'
  • 취재기자 정인혜
  • 승인 2017.11.07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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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체험한 명품관의 고객 접대법...네티즌들 "사람 봐 가며 무시하니 무서워서 어디 가보겠나" 성토 / 정인혜 기자

교수 갑질, 군대 갑질, 수많은 갑질 행태가 하루가 멀다 하고 보고되지만, 가장 많은 갑질 사건의 배경이 되는 곳은 단연 백화점이다. 3년 전 백화점 주차장에서 주차요원을 무릎 꿇린 두 모녀의 이야기를 계기로 이 같은 피해를 겪었다는 백화점 직원들의 이야기가 줄을 이었고, 이내 백화점은 갑질 사건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곳으로 대중들의 뇌리에 각인됐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백화점에서 발생하는 갑질의 주체를 꼭 손님으로 한정할 수 없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일부 직원들이 손님을 차별하는 등 ‘을의 갑질’을 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 이 같은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손님들은 그 현장으로 ‘백화점 명품관’을 지목한다.

사실 백화점 명품관 일부 직원들의 갑질 행태가 알려진 지는 꽤 오래됐다. 여성들이 많이 모이는 여초 커뮤니티에서는 백화점 명품관 직원에게 무시를 당했다는 글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다소 오래된 주제지만, 여러 독자로부터 백화점 명품관의 실상을 다뤄달라는 요청, 사례가 다수 전달됐다. 제보와 사례는 주로 옷차림 등 행색에 따라 직원들의 응대가 달라진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기자는 이틀에 걸쳐 옷차림을 달리해 백화점 명품관에 들러 직원들의 응대 방법을 직접 살펴봤다.

모 명품 브랜드 매장. 해당 기사에 등장하는 매장과는 관련 없음(사진: 취재기자 정인혜).

지난 6일 찾은 대형 백화점 본사의 A 명품관. 평일이라서 그런지 해당 매장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어머니에게서 빌린 해당 브랜드 가방에 한껏 차려입은 기자가 매장으로 들어서자 검정 원피스를 입고 있던 두 직원은 환한 미소로 맞았다. 인터넷 검색으로 미리 알아간 신상품 가방 이름을 말하자, 하얀 장갑을 끼고 제품을 앞에 내왔다.

이어 제품 설명이 이어졌다.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많아서 품절 대란인 건 알고 계시죠? 지금 저희 매장에도 블랙 컬러 딱 두 점 남았어요. 수납 주머니도 잘 나왔고 가격도 잘 빠진 편이에요. 재질이 딱 겨울 시즌 맞춰서 나온 거라 지금 사시면 내년 3월까지 편하게 드실 수 있어요. 색감이 외피 내피 딱 맞춰서 고급스럽게 나왔어요. 안감까지 천연 스웨이드로 처리돼 있는 가방이에요. 다른 매장에서는 웨이팅도 안 받는데 오늘 운이 좋으시네요. 정말 잘 어울리시겠다.” 가격은 200만 원대.

사실 명품은 잘 모르는 터라 거의 넋이 나간 채로 쳐다만 보고 있었다. 녹취해놨기에 망정이지, 그냥 들었다면 무슨 설명을 들었는지 기억도 못 해냈을 터. 또 다른 질문에 앞서 마른기침을 두어 번 했는데, 한 직원이 곧바로 컵에 따뜻한 차를 내왔다. 쇼핑에서 이런 환대는 처음인터라 감동이 일기까지 했다.

당연히 제품은 사지도 못했지만, 직원들은 끝까지 투철한 서비스 정신을 보였다. ‘이 다음에 명품을 살 일이 생기면 꼭 이 매장을 찾아야지’ 다짐하며 매장을 나섰다. 이어 같은 층에 위치한 명품 매장 두어 군데를 더 들렀으나, 직원들은 모두 친절했다.

이튿날인 7일. 청바지에 티셔츠, 모 스포츠 브랜드의 패딩 조끼를 입고 다시 명품관을 찾았다. 혹여 어제 만난 직원이 얼굴을 알아볼까 걱정돼 머리 모양을 바꾸고, 안경도 썼다. 전날보다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 터라 비슷한 옷차림을 한 지인을 대동했다.

평일인 탓인지 이날 백화점도 한산했다. 전날 방문한 매장 직원들의 태도 빼고는 달라진 게 없었다. 지난날 환대로 기자를 맞았던 A 매장 직원 두 명 사이에서는 냉기가 흘렀다. 기자를 매장에서 아르바이트하다가 도망친 괘씸한 대학생쯤으로 여기는 듯싶었다. 어찌나 쌀쌀맞던지 전날 방문하지 않았다면 두 직원의 성격을 오해할 뻔했다.

함께 간 지인은 매장 직원에게 전날 기자가 구경한 가방 모델을 보고 싶다고 요청했다. 제품을 내오긴 했지만, 표정은 전날처럼 밝지 않았다. 속사포처럼 흘러나오던 제품 설명도 생략됐다. 기침을 수차례 해봤지만 차는커녕 냉수도 없었다.

매장에 없는 다른 색상을 주문하는 방법에 대해 묻자, ‘알아보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연락처를 알려달라며 적극적으로 나왔던 전날의 태도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씁쓸한 마음만 가득 안고 매장을 나섰다. ‘돈 생겨도 여기서는 절대 안 사겠다’는 다짐과 함께.

모 브랜드 쇼윈도우 전경. 기사 내용과는 관련 없음(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이런 경험은 비단 기자만이 갖고 있는 게 아닌 듯 보인다. 지난 2012년 포털 사이트 네이트 판에 올라온 ‘대놓고 엄마 무시하는 백화점 명품관 직원’이라는 제목의 글에는 1525명의 네티즌이 추천을 눌렀다. 

해당 글에서 글쓴이는 “백화점 직원이 대놓고 사람 무시하는 표정과 말투로 마음을 상하게 했다”고 적었고, 수백 명의 네티즌들은 이에 공감하며 자신의 경험을 털어놨다. 가격을 질문하자 ‘그거 비싸요’라는 대답을 들었다는 사례에서부터 등산복을 입고 갔다가 쫓겨날 뻔했다는 사례까지 내용도 가지각색이다.

백화점은 고객들의 불편사항을 해결하기 위해 고객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고객센터에서는 이 같은 명품관 직원들의 행태에 대해 뭐라고 설명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소 원론적인 답변만 돌아왔다. 

해당 명품 매장의 본사 백화점 고객센터 담당자는 “일부 직원들의 부족한 서비스로 기분을 언짢게 해드려 죄송하다”며 “앞으로 더욱 주의하고, 열린 마음으로 고객과의 소통을 더욱 강화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타인을 배려하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이 이 같은 문제의 근원적인 대책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자신의 입장에서 상대를 예단하고 폄하하는 자세는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직장인 박모(41) 씨는 “갑질이니 을질이니 생각해보면 다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이기적인 자세에서부터 나오는 문제”라며 “상대방을 배려하는 태도가 우리 사회에는 많이 필요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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