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어 보니까 상했어요. 반품해 주세요”... 수박 껍질만 남겨놓고 반품 요구하는 등 진상 고객에 골머리 앓는 이커머스 직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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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어 보니까 상했어요. 반품해 주세요”... 수박 껍질만 남겨놓고 반품 요구하는 등 진상 고객에 골머리 앓는 이커머스 직원들
  • 취재기자 최동현
  • 승인 2023.12.29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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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어 보니까, 제품이 상했더라고요. 반품해 주세요.”

어느 날, H 마트 이커머스 부서(전자상거래를 담당하는 부서)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한 입 먹었는데 제품이 상했다면 얼마든지 반품이 가능하다. “다 먹고 하나만 남았었는데 그게 상했더라고요. 그건 버렸고요, 빨리 반품이나 환불해 주세요.”

이커머스 부서에서 10년 넘게 일 해온 회사원 최인화(51, 부산시 서구) 씨는 이 고객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단번에 알아차렸다. “정말 상했다면 제품을 우리에게 그대로 주는 것이 일반적이다”며 “제품이 상했으니 반품이나 환불해 달라고 우기기만 한다면, 의심이 갈 수밖에 없다”고 최인화 씨는 말했다. H 마트의 서비스 제도는 고객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 원칙이다. 또 고객과의 다툼은 직원에게 큰 스트레스를 주기 때문에 이런 경우에는 환불 조치를 해 줄 수밖에 없다.

H 마트 이커머스 부서 창고에서 직원들이 배송을 위해 물품 분류를 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최동현).
H 마트 이커머스 부서 창고에서 직원들이 배송을 위해 물품 분류를 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최동현).

H 마트 이커머스 부서는 식재료와 과자, 빵 등의 간식, 각종 생활용품을 포함해 마트에 있는 모든 제품을 고객의 집으로 배송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전날 고객들이 주문한 내역을 모두 확인한 뒤, 하루 5회 마트 곳곳을 돌아다니며 물품을 담는다. 물품을 담아오면 주문 내역에 맞춰 박스에 분배한다. 오전 한 번, 오후 한 번, 저녁 한 번, 하루에 총 세 번의 배송을 마치면 이커머스 부서의 하루는 끝이 난다.

최인화 씨는 일도 힘든데 황당한 컴플레인까지 들어오면 업무 스트레스가 엄청나다고 말한다. 최 씨는 “집에 돌아와서도 고객들의 전화가 계속해서 온다. 배송 실수나 물품 누락인 경우가 제일 많다”며 퇴근해도 편히 쉬지 못해 처음엔 정말 힘들었지만 이젠 그러려니 하며 넘긴다고 말한다.

이커머스 부서의 박태선(55, 부산시 사하구) 씨는 “마트 행사 기간에는 행사제품을 얼마든지 골라 담을 수 있다”며 “이 기간엔 주문량이 정말 끝도 없기 때문에 직원들이 엄청나게 힘들어한다”고 말했다. 한 달에 한 번은 꼭 있는 힘든 행사 기간에 진상 손님들의 행패까지 이어져 직원들이 스트레스를 안 받을 수 없다고.

지난 2017년 트렌드모니터에서 전국 만 19~59세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갑질 문화와 관련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95.1%가 우리나라의 갑질 문화를 심각한 편이라고 바라보고 있었다. 최인화 씨와 박태선 씨는 지금도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서비스 질과 진상 손님에 대한 설문조사를 정리한 표(사진: 트렌드모니터 웹사이트 캡처).
우리나라 서비스 질과 진상 손님에 대한 설문조사를 정리한 표(사진: 트렌드모니터 웹사이트 캡처).

박태선 씨는 음식과 관련된 황당한 사례를 들려주었다. 수박을 사 간 손님이 맛이 없다며 반품을 요구했다. 사무실로 돌아온 건 깨끗이 다 먹고 남은 수박 껍질이었다. 고객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반품을 해줘야 한다. 반품을 위해 고객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객은 수박이 맛이 없었으니 하나 더 보내주지 말라고 했다.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데 비용이 드니 회사에서 대신 껍질을 버려 달라고 했다고.

또, 10만 원어치의 한우를 거의 다 먹고 반품해달라는 손님도 있었다. 1킬로그램의 한우 중 900그램을 먹고 고기가 너무 질기다며 반품을 요구했다. 박 씨는 남은 100그램을 받고 똑같은 한우를 보내주었다. 반품 요구를 들어주니 돌아오는 대답은 “질긴 한우를 먹고 망가진 내 입과 정신은 어떻게 할 거냐”였다.

매년 형광등 반품을 요구하는 손님도 있다. 최인화 씨는 “그 손님은 일 년마다 형광등 반품을 요구한다. 만 시간 동안 빛이 켜진다는 형광등인데, 방전되면 반품 연락이 온다”고 말했다. 최 씨가 반품 이유를 물어보면 그 손님은 “형광등 사용하면서 시간을 계속 재 봤는데, 만 시간이 되지 않아서 방전됐다. 엄연한 허위 광고니 반품해달라”고 말한다고. 최 씨는 “매년마다 똑같은 이유로 반품을 요구하는 손님이다. 이 손님이 반품을 요구할 때마다 해가 지나고 있는 걸 느낀다”며 웃었다.

진상 손님들의 행패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H 마트 이커머스 부서의 과장 김병열(51, 부산시 부산진구) 씨는 “직원들에게 큰 스트레스를 주는 진상 손님은 법적으로 처벌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김 씨는 “회사 차원에서는 진상 고객들이 주문 못하게 차단할 수 있다”며 방법이 없는 건 아니라고 했다. “마일리지나 쿠폰 등을 악용해 회사에 금전적인 손해를 끼쳤을 경우, 회사에서 아이디를 차단해 버려 더 이상 우리 마트를 이용하지 못하게 한다”고 덧붙였다.

이커머스 부서의 직원들도 사람이다. 매일 똑같은 일을 하고 있어도 얼마든지 실수할 수 있다. 본인의 요구가 맞지 않으면 직원들에게 정중하게 요구사항을 전달하면 된다. 고성방가를 지르며 직원들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할 필요가 없다. 고객은 터치 한 번이면 집 앞에 물건들이 도착한다. 그 터치 한 번 뒤에는 이커머스 직원들의 무수한 땀방울이 숨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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