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희 칼럼] 그때 왜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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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희 칼럼] 그때 왜 그랬어요
  • 논설주간 박창희
  • 승인 2023.05.08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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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갈치시장에서 영도쪽을 보면 보이는 조명 문구
오만가지 생각 불러와... 이런게 추억 마케팅이자 콘텐츠

비오는 날, 사위가 어둑어둑해질 무렵, 부산 자갈치 시장 해변광장에 나가보셨는지? 거기서 영도쪽을 바라보면 노오란 조명이 켜진 문구 하나를 발견한다. ‘그때 왜 그랬어요’. 

아무런 감정이 실리지 않은듯한 나눔고딕 글씨체. 무표정하고 무뚝뚝한 경상도 사람이 툭 던져놓은듯한 의문형의 문구. 지난날의 상념이, 그때 그 시절의 아련한 추억이, 못다한 사랑 혹은 기약없는 맹세에 대한 후회가 파도처럼 회오리친다. 그때 그랬지, 그랬었지, 그럴 수밖에 없었지…. 이제 와서 어떡하라고…. 묻어두자, 그렇게 덤덤하게 사는 거지. 그게 삶인 거지.

부산 자갈치시장에서 영도쪽을 보면 보이는 조명 문구 '그때 왜 그랬어요'(사진: 영도 깡깡이예술마을 홈페이지 캡처).
부산 자갈치시장에서 영도쪽을 보면 보이는 조명 문구 '그때 왜 그랬어요'(사진: 영도 깡깡이 예술마을 홈페이지 캡처).

‘그때 왜 그랬어요’라는 문구 하나에 지난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느낌, 참 묘하고도 야릇하다. 해풍이 일자 전등에 반짝이는 노오란 문구가 수면 위에서 춤을 춘다. 물결에 따라 일렁거리고 출렁거리는 풍경, 이건 흡사 살아 움직이는 설치예술이다. 바다에 어룽져 하늘거리는 따스한 빛 그림자. 한참 마음이 뺏긴 채 멍하니 바라보다 돌아서려니 다시 ‘그때 왜 그랬어요’라고 묻는다.

이 작품이 영도 깡깡이 예술마을에서 기획해 설치한 이광기 작가의 라이트 프로젝트라는 사실을 알고도 한동안 마음이 흔들렸다. 지역의 시공간을 배경으로 빛과 색체, 소리를 활용한 설치예술이지만, 이쯤되면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2018년 이게 설치되자 이렇쿵 저렇쿵 말들이 많았다고 한다. “기발하고 참신하다”는 평가와 함께, “지역 이미지 버린다”는 비판이 동시에 터져나온 것. 어떤 이는 자발적으로 혼나기 위한 반성의 시간을 가져다준다고 했고, 어떤 이는 공연히 상념을 들쑤셔 괴로움을 준다고 했다.

논란은 사회적 관심으로 이어졌고 어찌되었건 이 작품은 지금까지도 건재하다. 아니 건재함을 넘어 영도와 자갈치를 잇는 한줄기 소통의 빛, 문화관광 콘텐츠로 서 있다. 인터넷에 ‘그때 왜 그랬어요’를 치면 이를 다룬 기사는 물론 다양한 게시물들이 넘쳐난다. 애초 겨냥한 호기심과 궁금증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셈이다.

이 글귀가 가장 운치있게 다가오는 때는 비오는 날 저녁 무렵 자갈치쪽에서 소주 한 잔을 걸치고 바라볼 때다. 그 때는 주변에 누가 있거나 말거나 상념의 빗줄기에 어깨가 젖는다. 운이 좋으면 늙수그레한 거리의 악사가 어코디언으로 연주하는 ‘이별의 부산정거장’이나 ‘굳세어라 금순아’를 들을 수도 있다. 영도다리가 보이고 비린내와 짠내가 '휘날리는' 곳. 가장 부산적인 풍경과 공기, 소리, 냄새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비로소 완성되는 작품. 이 속에 빠져들면 누군들 영화 주인공이 아니랴.

설치예술도 이쯤되면 지역성과 역사성, 예술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지역성과 예술성이 만나는 지점에 문화관광 콘텐츠가 놓인다. 문화관광 콘텐츠는 지역의 역사‧문화자원을 창조적으로 해석하고 재생시킬 때 새롭게 태어난다. 설치예술 하나가 도시의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고 문화적 기표로서 작용하도록 해야 생각있는 도시, 찾고 싶은 도시가 된다. 해양도시 부산을 말할 때 놓치지 말아야 할 관점이다.

그러나 저러나 ‘그때 난 왜 그랬을까?’ 가만히 '의문부호(?)' 하나를 붙여 본다. 그때 헤어진 첫사랑 그 얘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살아갈까. 아련한 상념이 파도를 탄다. 오늘 저녁에도 영도 깡깡이마을의 라이트 프로젝트는 노오란 불빛을 발할 것이다. 비가 오면 다시 자갈치 시장 해변광장에 나가봐야겠다. 불현 듯, 문득, 아련한 첫사랑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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