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도 '깡깡이 아지매'의 땀, 역사와 예술로 재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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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 '깡깡이 아지매'의 땀, 역사와 예술로 재탄생
  • 취재기자 이지은
  • 승인 2019.05.19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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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한민국 최초 조선소 자리가 예술마을이 되다
도시재생으로 벽화, 벤치, 공중박스, 가로등 예술작품 설치
일부 조선수리소는 가동 중...과거의 땀과 현재의 풍요 공존

세계 최강 대한민국 조선산업의 발상지가 부산에 있다. 구한말에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일본 계열 조선소가 들어서면서부터 이곳의 조선업은 다이나믹하게 흥망성쇠를 거듭했다. 1970년대 한때 선박 수리업으로 활기를 찾다가 이후 다시 쇠퇴 일로를 걸었다. 최근 남아있는 조선산업 시설을 활용해 도시 재생 사업이 진행됐다. 그리고 아름다운 자태로 다시 태어났다. 새로운 관광지로도 인기를 끌고 있는 이곳은 부산시 영도구 대평동 1, 2가에 위치한 일명 깡깡이 예술 마을이다.

깡깡이 예술 마을은 영도로 들어가는 길목, 부산시 영도구 대평동 1가, 2가에 위치해 있다(사진: 네이버 지도 캡처).
깡깡이 예술 마을은 영도로 들어가는 길목, 부산시 영도구 대평동 1가, 2가에 위치해 있다(사진: 네이버 지도 캡처).

대평동(大平洞)의 옛날 이름은 대풍포(大風浦)였다. 광복 이후, 파도와 바람이 잔잔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바람 ()’을 편안할 ()’으로 바꿨다. 부산항이 개항된 1876, 어장이 풍부했던 대풍포 부근에 일본인 어부들이 몰려오면서 대풍포는 어선들의 정박지가 됐고, 자연스레 조선소나 선박과 관련된 사업이 발전하게 됐다.

특히 근대 조선산업의 발상지가 될 수 있었던 계기는 188710월 일본인 조선업자 다나카에 의해 지어진 다나카 조선소때문이었다. 목선을 건조, 수리했던 다나카 조선소는 한국 최초의 근대식 조선소로, 풍력이 아니고 일본형 근대식 발동기를 사용해 동력을 얻는 방식으로 근대식 목선을 제조했다. 다나카 조선소가 생긴 이후, 크고 작은 조선소들이 생겨났지만, 다나카 조선소만큼 꾸준히 번창하지는 못했다.

1924년 다나카 조선소의 모습(사진: 부경근대사료연구소).
1924년 다나카 조선소의 모습(사진: 부경근대사료연구소).

계속해서 공업이 발달하자, 1916년 일본인이 매축권(埋築權, 바다를 메워 뭍으로 만드는 작업의 권리)을 얻어 대평동과 남항동 일대의 포구를 매립하는 대규모 매립공사를 벌였고, 매립지에 공장을 지었다. 이것이 1차 매립공사였고, 1926년까지 10년 동안 진행됐으며, 여기에 주택지와 조선소 등이 집중적으로 들어섰다. 2차 매립은 1931년부터 1934년까지 영도다리 건설과 함께 진행됐으며, 두 번의 매립 끝에 현재와 같은 버선 모양(위의 지도 모양 참조)의 매립지가 됐다.

부산시 영도구 대풍포 앞바다의 매축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기념비이다(사진: 부산문화역사대전 게시판 캡처).
부산시 영도구 대풍포 앞바다의 매축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기념비이다(사진: 부산문화역사대전 게시판 캡처).

1937년에는 한국 최초의 철강 전문 조선소인 조선중공업주식회사’(현재 한진중공업)가 설립됐다. 이곳은 다나카 조선소 못지않게 한국의 조선 산업을 성장시켰다. 그렇게 점점 확장되던 영도의 일제강점기 조선 산업은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고 물러가면서 위기를 맞았고 침체기를 겪게 된다.

그러던 마을이 1970년대 초반, 원양어업이 성장하며 다시 살아난다. 이는 조선업에도 큰 변화와 발전을 주었고, 대평동은 선박 수리를 주업종으로 전환해 경기를 되찾았다. <깡깡이 마을 100년의 울림·역사>에서 서만선 할머니는 “1979년에 대평동은 경기가 참 좋았다. 그때 대평동은 원양어선으로 왁자지껄했다. 여자들도 거의 다 깡깡이를 했고 배 사업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깡깡이는 선박이 본격적인 수리에 들어가기 전 선박 표면에 붙은 녹이나 조개껍데기를 벗겨내기 위해 작은 망치로 선박의 철제 표면을 때릴 때 나는 소리다. 과거 깡깡이질은 주로 아줌마(아지매)들이 했기 때문에 그들을 깡깡이 아지매라 불렀다. 깡깡이질을 하기 위해서는 나무 널판을 타고 높이 올라가 배에 달라붙어 망치로 직접 배 표면을 때렸다. 마을 해설사인 신을임 씨는 깡깡이 아지매를 그린 그림인 <우리 모두의 어머니상>이란 작품을 볼 때마다 우리 어머니들이 참 고생이 많았구나하고 느낀다고 말했다.

깡깡이 아지매들이 타고 올라갔던 나무널판. ‘족장’ 또는 ‘아시바’라 불렀다. 이 사진은 깡깡이마을박물관에 전시된 것을 촬영한 것이다(사진: 취재기자 이지은).
깡깡이 아지매들이 타고 올라갔던 나무널판. ‘족장’ 또는 ‘아시바’라 불렀다. 이 사진은 깡깡이마을박물관에 전시된 것을 촬영한 것이다(사진: 취재기자 이지은).

깡깡이로 인해 깡깡이 아지매 중에는 난청에 이명이 겹쳐 불면증에 시달리는 이들도 많았다. <깡깡이 마을 100년의 울림·역사>에서 대평노인회 김성호 부회장은 옛날에 깡깡이질을 한 사람들이 심폐증 이런 게 많이 남아있을 기라. 오래한 사람들은 늙어가지고. 그리고 귀도 깡깡깡 하니까 그걸 탁 막고 해야 하는데 옛날엔 그래 못했거든. 그냥 수건으로 가리고 때리고...”라고 말했다. 1970년대 중반부터는 기술이 발달하며 그라인더와 같은 기계를 사용해 깡깡이 아지매들의 일감을 덜었다.

1980년대를 기점으로 수리 선박이 감소하고 대다수의 선박이 감천 또는 다대포 지역으로 빠지면서 조선경기의 불황이 찾아왔다. 영도 지구 매축 이후 100여 년간 바다 밑을 손보지 않아 뻘이 쌓이면서 수심이 낮아져 대형 선박을 수선소로 들일 수 없게 됐다. 그래서 이곳에는 소형 선박만 수리하는 소형 조선소만 남게 돼 조선 수리시설이 쇠락의 길을 걷게 됐다. 덩달아 거주인구도 급격히 줄었다. 젊은 사람들은 꿈과 희망을 찾아 다른 곳으로 떠났고, 이곳에는 노인들만 남았다.

그런 깡깡이 마을이 2015년 부산시가 공모한 예술상상마을 사업에 선정돼 활기를 되찾았다. 영도 대평동 일대를 중심으로 문화예술형 도시재생 프로젝트가 진행돼 관광객의 발걸음을 이끌게 했다. 특히 이 사업은 낡아서 쓰지 않는 건물이나 빈 건물을 적극 활용했고, 오랫동안 이곳을 지켜온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는데 열중했다. 마을 해설사 신을임 씨는 주말에는 관광객들이 하루에 150명 넘게 올 때도 있다투어를 하러 오는 손님이 있으면 최선을 다해 구석구석 알리고 있다고 전했다.

깡깡이 예술 마을 안내 지도로 번호와 색깔로 구분돼있어 각종 공연예술 프로젝트를 쉽게 찾아갈 수 있다(사진: 깡깡이 예술 마을 홈페이지 캡처).
깡깡이 예술 마을 안내 지도로 번호와 색깔로 구분돼있어 각종 공연예술 프로젝트를 쉽게 찾아갈 수 있다(사진: 깡깡이 예술 마을 홈페이지 캡처).

깡깡이 마을이 공공 예술 프로젝트를 실행한 결과, 33가지의 예술작품들이 마을 곳곳에 생겨났다. 그 중 예술작품으로 태어난 벤치로는 포구를 상징하는 대형 닻과 버려진 자개장롱을 장식으로 활용해 만든 마을버스 정류장 벤치인 <시간에 >가 있다.

대형 닻과 버려진 자개장롱을 활용해 만든 마을버스 정류장 벤치인 ‘시간에 ‘닻’다‘다(사진: 깡깡이 예술 마을 페이스북 캡처).
대형 닻과 버려진 자개장롱을 활용해 만든 마을버스 정류장 벤치인 ‘시간에 ‘닻’다‘다(사진: 깡깡이 예술 마을 페이스북 캡처).

또 다른 벤치를 이용한 예술작품은 깡깡이질을 하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벤치 <두드림>, 선박 수리를 위해 협력하는 대평동 주민들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서로 맞물려야만 돌아가는 기어를 벤치에 활용한 <관계-어울림> 등이 있다.

깡깡이질을 하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벤치 예술작품 ‘두드림’(사진: 깡깡이 예술 마을 페이스북 캡처).
깡깡이질을 하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벤치 예술작품 ‘두드림’(사진: 깡깡이 예술 마을 페이스북 캡처).
선박 수리를 위해 협력하는 대평동 주민들의 모습을 담기 위해 기어를 벤치에 활용한 예술작품 ‘관계-어울림’이다(사진: 깡깡이 예술 마을 페이스북 캡처).
선박 수리를 위해 협력하는 대평동 주민들의 모습을 담기 위해 기어를 벤치에 활용한 예술작품 ‘관계-어울림’이다(사진: 깡깡이 예술 마을 페이스북 캡처).

라이트 프로젝트를 진행해 만든 예술작품도 있다. 라이트 프로젝트란 가로수 조명을 예술작품으로 재탄생시킨 작품들로 주민들의 편의와 범죄예방에 도움을 주고 있다. 마을에서 가장 어두운 곳에 설치한 파란 조명의 구름가로등’, 남포동 자갈치시장에서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설치해서 글씨를 보여주는 조명인 그때 왜 그랬어요등이 있다.

조명 기능과 범죄예방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는 ‘구름가로등’은 밤에 파란 불빛으로 빛난다(사진: 취재기자 이지은).
조명 기능과 범죄예방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는 ‘구름가로등’은 밤에 파란 불빛으로 빛난다(사진: 취재기자 이지은).

키네틱 프로젝트로 만들어진 예술작품도 있다. 키네틱 프로젝트란 예술작품 자체가 움직이거나 예술작품에 움직이는 부분이 들어간 작품이다. 이들 작품들은 깡깡이 마을에서 가장 바람이 많이 부는 곳에 있고, 풍력으로 기어가 맞물려 움직이는 예술작품 <바람과 시간>, 조수간만의 차이에 따라 해와 달이 시소처럼 움직이는 예술작품인 <발견> 등이 있다.

예술작품 ‘바람과 시간’은 바람이 불면 기어가 맞물려 움직이는 작품으로, 바람은 마을의 역사와 시간을, 기어는 열심히 살아가는 대평동 사람들의 일상을 상징한다(사진: 깡깡이 예술 마을 페이스북 캡처).
예술작품 ‘바람과 시간’은 바람이 불면 기어가 맞물려 움직이는 작품으로, 바람은 마을의 역사와 시간을, 기어는 열심히 살아가는 대평동 사람들의 일상을 상징한다(사진: 깡깡이 예술 마을 페이스북 캡처).

현장의 소리를 이용해 예술작품을 만든 사운드 프로젝트로 탄생한 작품도 있다. 이들 작품들은 깡깡이 마을의 다양한 소리를 체험하게 한다. 폐기된 전화 부스 안에 있는 여러 버튼을 눌러 깡깡이 아지매 음성인터뷰나 마을의 소리, 노래 등을 들을 수 있는 <Sound Brear Meucci>, 벤치에 앉아 양쪽 관에 귀를 대면 물양장(선박의 안전 접안을 위해 부두의 바다 방향에 수직으로 세운 벽, 일종의 간이 부두 시설이다)의 다양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써라운드 사운드 스피커> 등이 있다.

폐기된 전화 부스에 설치된 버튼을 누르면 다양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Sound Brear Meucci’(사진: 취재기자 이지은).
폐기된 전화 부스에 설치된 버튼을 누르면 다양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Sound Brear Meucci’(사진: 취재기자 이지은).
‘써라운드 사운드 스피커’에 양쪽 귀를 대면 물양장의 다양한 소리를 풍부하게 들을 수 있다(사진: 취재기자 이지은).
‘써라운드 사운드 스피커’에 양쪽 귀를 대면 물양장의 다양한 소리를 풍부하게 들을 수 있다(사진: 취재기자 이지은).

예술 프로젝트에 벽화가 빠질 수 없다. 마을의 어두운 분위기를 밝게 만들기 위해 거리마다 다양한 그림을 그린 벽화들이 모인 페인팅 시티가 있다. 여기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은 깡깡이 아지매를 주인공으로 한 <우리 모두의 어머니>.

깡깡이 아지매를 주인공으로 한 벽화 ‘우리 모두의 어머니’로 마을의 역사와 삶의 애환을 알 수 있다(사진: 취재기자 이지은).
깡깡이 아지매를 주인공으로 한 벽화 ‘우리 모두의 어머니’로 마을의 역사와 삶의 애환을 알 수 있다(사진: 취재기자 이지은).

또 다른 페인팅 시티예술작품으로는 낡은 창고에 여러 가지 색상을 이용해 수리조선소 사람들을 그린 <컬러풀 스트리트>, 깡깡이 아지매와 배, 용접기술자, 강아지 등 깡깡이 마을의 모습을 만화캐릭터처럼 표현한 <영도사람들> 등의 작품이 있다.

‘컬러풀 스트리트’는 길가의 낡은 창고에 여러 색상을 이용해 그림을 그렸다(사진: 취재기자 이지은).
‘컬러풀 스트리트’는 길가의 낡은 창고에 여러 색상을 이용해 그림을 그렸다(사진: 취재기자 이지은).
깡깡이 마을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을 만화 캐릭터처럼 표현한 ‘영도사람들’(사진: 깡깡이 예술 마을 페이스북 캡처).
깡깡이 마을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을 만화 캐릭터처럼 표현한 ‘영도사람들’(사진: 깡깡이 예술 마을 페이스북 캡처).

이런 예술작품뿐만 아니라 깡깡이 예술 마을에는 다양한 공간도 있다. 방문객들이 마을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깡깡이 안내센터와 물양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선박을 활용해 다양한 예술작품을 보며 체험까지 할 수 있는 신기한 선박체험관이 생겼다.

방문객들이 마을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깡깡이 안내 센터이다(사진: 취재기자 이지은).
방문객들이 마을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깡깡이 안내 센터이다(사진: 취재기자 이지은).
신기한 선박체험관에는 직접 깡깡이를 체험해볼 수 있는 곳이 마련돼 있다(사진: 취재기자 이지은).
신기한 선박체험관에는 직접 깡깡이를 체험해볼 수 있는 곳이 마련돼 있다(사진: 취재기자 이지은).
신기한 선박체험관 조타실에는 가상으로 직접 선박을 조종을 해보고 의상을 입을 수 있다(사진: 취재기자 이지은).
신기한 선박체험관 조타실에는 가상으로 직접 선박을 조종해보고 의상을 입을 수 있다(사진: 취재기자 이지은).

또한 조립 체험과 직접 키트를 만들어 볼 수 있는 깡깡이 마을공작소’, 대평동 마을회에서 직접 운영하며 음료와 디저트를 판매하는 대평마을다방과 강연이나 공연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는 깡깡이 생활문화센터’, 깡깡이 생활문화센터 2층에 있으며 깡깡이 마을의 역사와 다양한 이야기를 유물, 영상, 작품, 사진 등을 볼 수 있는 깡깡이 마을박물관등의 공간이 마련됐다. 깡깡이 예술 마을에 관광을 온 대학생 김지은(22, 경북 포항시) 씨는 눈으로 보는 것뿐만 아니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많다는 게 좋다고 말했다.

깡깡이 마을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박물관의 내부 모습이다(사진: 취재기자 이지은).
깡깡이 마을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박물관의 내부 모습이다(사진: 취재기자 이지은).

하지만 깡깡이 마을은 여전히 사람들이 일하는 산업현장이다. 평일은 조선소나 작업장에서 작업이 진행되기 때문에 혼잡하고 주차시설이 부족하다. 따라서 가급적으로 주말 혹은 정기투어 프로그램을 이용해 해설사와 함께 마을 투어를 하는 것이 좋다. 또한 조선소나 작업장은 들어갈 수 없으며, 사진 촬영은 초상권 침해와 기술 유출의 문제가 생길 수 있으므로 문의하고 해야 한다.

깡깡이 마을은 사람의 삶과 일이 역사와 예술로 승화된 현장이다. 우리네 과거의 땀과 현대의 풍요가 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깡깡이 마을은 가볼 가치가 충분하고도 남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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