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희 칼럼] 직언이 그리운 시대, '남명'을 찾다 -시빅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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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희 칼럼] 직언이 그리운 시대, '남명'을 찾다 -시빅뉴스
  • 논설주간 박창희
  • 승인 2022.08.22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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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자락서 '늘 깨어 있으라' 가르친 대쪽선비
임금 질타한 상소문, 지금 읽어도 가슴이 '서늘'
직언 사라진 대통령실... 직언 소통구조 아쉬워

덕이 흐르는 덕천강

지리산 덕천강 앞에 섰다. 덕천강은 지리산 정상 천왕봉 아래의 천왕샘에서 발원해 경남 산청 땅을 거쳐 진양호에 들고 남강이 되어 창녕 남지에서 낙동강으로 합류한다. 천왕샘, 덕천강, 남강 모두 낙동 어미의 아들 딸인 셈이다. 덕천강은 산청군 시천면 덕산에 이르러 한껏 강품을 넓힌다. 흐르는 물살이 장하고 시원시원하다. 지리산의 호쾌한 기상과 온유한 기운이 여울목에 실려 내려가는 듯하다. 보고 있자니 저절로 강의 덕(德)이 느껴진다.

지리산 천왕샘에서 발원한 경남 산청의 덕천강. 남명 조식의 선비정신이 흐르는 듯하다(사진: 박창희 기자).
지리산 천왕샘에서 발원한 경남 산청의 덕천강. 남명 조식의 선비정신이 흐르는 듯하다(사진: 박창희 기자).

환갑 지나 지리산 덕산에 들어와 산천재(山天齋)를 짓고 생애 마지막을 보낸 남명 조식(南冥 曺植, 1501~1572), 그가 본 것도 그것이었으리라. 맑은 날 산천재 앞마당에 서면 지리산 천왕봉과 중봉 등이 아득한 실루엣으로 다가온다. 남명은 지리산 자락에서 덕천강을 보며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흔들림없는 대쪽 선비로 살았다.

칼 찬 선비

조선시대 영남의 유학은 ‘좌퇴계·우남명’이란 말이 함축하듯, 낙동강을 중심으로 경북 안동과 봉화 청량산 언저리에서 활동한 퇴계(이황)학파와 지리산을 기반으로 한 남명학파로 대별된다. 퇴계와 남명은 1501년 출생한 동갑내기로, 조선 유학의 양대산맥을 형성한 대유(大儒)다. '동방의 주자'로 일컬어진 퇴계에 비해 남명은 참혹한 사화 등의 영향으로 온전한 대접을 못받은 때도 있었다. 그러나 구름이 걷히면 산봉우리가 드러나듯, 시간이 갈수록 남명의 선비정신과 직언(直言)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남명이 남긴 덕이 아닐 수 없다.

남명은 경(敬)과 의(義)를 다잡고 실천한 처사(處士), 직언의 사나이였다. 남명의 학문은 흔히 ‘경의지학(敬義之學)’이라 일컬어진다. 경은 유학자가 자신을 수양하는 방법론이고 의는 사회적 실천의 기준이다. 남명은 스스로를 수양할 때는 무엇인가를 두려워하는 듯 삼갔고, 불의와 맞설 때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는 '늘 깨어 있으라'는 뜻으로 성성자라는 방울과 경의검을 갖고 다녔다고 한다. 

남명을 모신 산청 덕천서원 앞 덕천강 강변에는 세심정(洗心亭)이란 작은 정자가 있고, 남명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덕천강을 바라보며 서 있는 ‘마음을 씻는 정자’. 시의 내용이 시퍼른 칼날 같다.

온 몸에 쌓인 사십년 동안의 허물을(全身四十年前累)/천섬 맑은 물에 모두 씻어버리네(千斛淸淵洗盡休)/만약 오장에 티끌이 생긴다면(塵土倘能生五內)/지금 바로 배를 갈라 저 물에 띄워 보내리(直今刳腹付歸流)

남명이 지은 ‘감천(泔川)’이라는 시다. 감천은 ‘냇물에 목욕하다’라는 뜻. 내용이 세다. '이게 남명이구나!' 싶다. 바위에 새긴 시퍼런 글씨가 가슴을 찌른다.  

산청 덕산서원 앞 덕천강가에 세워진 남명 조식의 시비(사진: 박창희 기자).
산청 덕산서원 앞 덕천강가에 세워진 남명 조식의 시비(사진: 박창희 기자).

세심정은 남명 사후 덕천서원에서 공부하는 제자들이 강학 틈틈이 쉬기 위해 세운 정자다. 남명이 생전에 세심정을 드나든 기록은 없으나, 남명의 뜻은 후학들에게 이어졌을 터. 그런 남명의 정신이 덕천강에 실려 남강으로, 더 큰 낙동강 정신으로 흘러내린다.

덕천강을 따라 산청군이 조성한 ‘남명의 길’이 나 있다. ‘세심’의 의미를 새기며 발걸음을 옮긴다. 멀리 아슴푸레하게 지리산 천왕봉이 보인다. 천왕봉은 말없이 천 가지 이상의 말을 한다. 

다시 읽는 단성소

‘전하의 나랏일이 이미 잘못되고 나라의 근본이 이미 망하여 하늘의 뜻이 이미 떠나갔고 인심도 이미 떠났습니다. 비유하자면 마치 1백년 된 큰 나무에 벌레가 속을 갉아먹어 진액이 다 말랐는데 회오리 바람과 사나운 비가 언제 닥쳐올지를 전혀 모르는 것과 같이 된 지가 이미 오래입니다. …소관(小官)은 아래에서 히히덕거리면서 주색이나 즐기고, 대관(大官)은 위에서 어물거리면서 오직 재물만을 불립니다. …자전(慈殿)께서는 생각이 깊으시지만 깊숙한 궁중의 한 과부에 지나지 않으시고, 전하께서는 어리시어 단지 선왕의 한낱 외로운 후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천백 가지의 천재(天災)와 억만 갈래의 인심을 무엇으로 감당해 내며 무엇으로 수습하겠습니까?’

1555년 11월 남명이 임금에게 올린 단성현감 사직소(일명 단성소)의 일부다. 고향인 합천의 삼가로 이주해 후학 양성에 전념하던 남명에게 조정이 관직을 제수하자 몸을 낮춰 거절하면서 국정 전반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는 내용이다. 서슬퍼런 칼날 위에 붓길이 휘갈겨진 것 같다. 목숨을 걸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비판이다.

합천 용암서원 앞에 세워진 남명의 '단성소' 비석. 남명은 임금에게도 직언을 서슴치 않았다(사진: 박창희 기자).
합천 용암서원 앞에 세워진 남명의 '단성소' 비석과 흉상. 남명은 임금에게도 직언을 서슴치 않았다(사진: 박창희 기자).

상소는 당시 권력을 좌우했던 왕의 어머니(문정왕후)를 궁중의 과부로, 왕이었던 명종을 고아(孤兒)에 비유했다. 조정이 발칵 뒤집어졌다. 명종은 대노하여 처벌하려 했으나 대간들과 여러 신료들이 간곡히 만류한다. 무례하나 직언하는 선비의 충정을 높이 사야 하고 언로는 터놓아야 한다는 진언이 잇따랐다. 국정혼란 와중에서도 조선시대의 유교적 정치는 이렇게 작동했다.

이 글을 지은 자리인 합천 삼가면 뇌룡정 옆 용암서원 앞에는 사직소 원문과 해석을 적은 육중한 돌비석이 서 있다. 다시 읽어도 간담이 서늘해지는 글이다. 무릇 펜을 든 지식인이라면 읽고 깨우치는 바가 있어야겠다. 

상소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엎드려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반드시 마음을 바로 하는 것으로써 백성을 새롭게 하는 요점으로 삼으시고, 몸을 수양하는 것으로써 사람을 쓰는 근본으로 삼으셔서, 왕도(王道)의 법을 세우십시오. 왕도의 법이 왕도의 법답지 않으면 나라가 나라답게 되지 못합니다. 밝게 살피시길 엎드려 바라옵니다. 신은 떨리고 두려운 마음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죽음을 무릅쓰고 전하께 아룁니다.’

남명 조식이 만년에 기거한 산청군 덕산의 산천재. 뒤쪽에 지리산 천왕봉이 보일듯 말듯하다(사진: 박창희 기자).
남명 조식이 만년에 기거한 산청군 덕산의 산천재. 뒤쪽에 지리산 천왕봉이 보일듯 말듯하다(사진: 박창희 기자).

#직언 실종 시대? 

21세기 초반의 한국정치판은 거의 시계제로다. 국제정세는 살얼음 위를 걷는 듯하고 여전한 코로나 위기 속에서 민생은 먹고 살기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집권 여당은 내분에 휩싸여있고 대통령의 리더십은 정체가 보이지 않는다. 국정지지율이 20%대로 떨어졌는데도 마땅히 헤쳐나갈 길이 보이지 않는다.

총체적 구조적 국정 위기라는 진단이 나왔건만, 현 정부는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지도 않다. 대통령 주변엔 소위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과 ‘윤핵관 호소인’, ‘정치검찰’ ‘육상시’들이 설치는 것 같다. 취임 100을 갓 넘겼는데 일각에선 탄핵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더 큰 문제는 여권내에서 직언하고 간언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대통령실의 비서실장과 수석들은 어디서 무엇하고 있는가. 

‘시사저널’은 윤 대통령 지지율에 치명적 영향을 미친 요인으로 ①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 관련 논란 ②비선 논란 ③편중된 인사와 부실한 검증 ④윤 대통령의 태도 ⑤참모의 무능력 등 5가지를 꼽은 바 있다(2022. 7. 15). 이런 요인들은 윤석열 정부가 줄곧 내세운 ‘공정과 상식’의 가치를 흔든다.

이런 문제점을 고치려면 직언하는 공직자가 있어야 하고, 대통령이 귀를 열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이 둘 다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의 태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다. 직언하는 참모가 있어도 대통령이 귀를 열지 않으면 헛방이다. 직언에 버럭 소리를 지르거나 깔아뭉개는 태도는 직언을 막는 요인이다. 반복되는 실수의 근저에는 교만이 깔려 있는 것도 같다. 교만은 공감 능력을 떨어뜨린다. 국민과의 감정 괴리가 지금의 지지율일 것이다. 

남명이 유품인 성성자(방울)와 경의검. 늘 깨어있으라는 가르침을 던져 준다(사진: 박창희 기자).
남명이 유품인 성성자(방울)와 경의검. 늘 깨어있으라는 가르침을 던져 준다(사진: 박창희 기자).

직언의 DNA는 이어져

'삼국지'에 나오는 유방이 항우를 이긴 비결은 늘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何如)’ 하고 의견을 구한 데 있다. 반면 항우는 ‘내가 어떤가(如何)’ 하며 어깨에 힘을 주었다. ‘정관의 치’를 이끈 당태종도 신하들 의견을 적극 수용한 군주다. 그의 재위 시절 모든 신하가 적극적으로 간언을 해 서류가 책상에 넘쳤다고 한다.

우리에게도 직언의 전통이 있다.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가 그렇고, 사육신과 내암 정인홍, 매월당 김시습, 다산 정약용이 그렇다. 남명은 역사적 직언의 꼭지점에 자리한다. 남명은 실천이 수반되지 않는 학문은 배운 바의 의미가 없다고 했다. 임진왜란 때 남명의 문하에서 정인홍 곽재우 김면 등 50여명의 의병장이 나온 게 우연이 아니다.

‘효경’에 이런 말이 있다. “천자(天子)에게 직언을 하는 신하 일곱 명이 있으면 비록 자신이 도가 없다 할지라도 천하를 잃지 않는다.” 한 조직에서 쓴소리하는 사람 5명만 있으면 그 조직은 망하지 않는다고 한다.

많은 국민들이 현 '검찰정권'에 불만을 표하거나 두려워하는 것 같다. 이 서슬의 와중에 검찰 내 내부고발자로 활동해온 임은정 검사가 ‘계속 가보겠습니다’(메디치)라는 책을 냈다. 악바리 내부 고발자가 정의의 길을 찾기 위해 달려온 10년 투쟁의 기록이다. 언론인 김중배 씨는 추천사를 통해 “국민 앞에 검찰의 전횡과 타락을 고발하고, 그 반정(反正: 본디의 바른 상태로 돌아감)을 이루어 내자고 호소하는 국민검사를 주목해 달라"고 강조한다.  

임 검사의 이야기는 검찰 내부에서 터져나온 목소리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검사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검찰 내부 고발자는 아무나 할 수 없다. 검찰 내의 갖은 핍박과 질시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이 소신껏 말하고 행동하는 임 검사에게서 남명의 면모를 본다. 남명이 뿌린 직언의 DNA가 알게 모르게 임 검사에게 이어져 있음이다.

할 말을 하고 행하는 직언이 소통되는 사회가 선진사회다. 잠자는 직언들을 깨우자. 도처에서 직언들이 깨어나 가슴속 함성으로 솟구칠 때 국가도 일상도 정상 작동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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