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남의 생각이 멈추는 곳]6.3항쟁 66주년, 그때 그 친구들 어디서 뭘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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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남의 생각이 멈추는 곳]6.3항쟁 66주년, 그때 그 친구들 어디서 뭘하고 있을까?
  • 김민남
  • 승인 2019.06.04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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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했던 한일국교정상화 반대 시위에 참여했던 친구들은 66년이 지난 지금 어디에서 뭘하고 있을까?(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치열했던 한일국교정상화 반대 시위에 참여했던 친구들은 66년이 지난 지금 어디에서 뭘하고 있을까?(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어제 6월 3일은 '6.3항쟁' 66 주년이다. 1963년 6월 3일 전국 대학가에서 굴욕적인 한일(韓日) 국교정상화 회담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시위에 참가한 전국 대학생 중, 대학별로 차이는 있지만, 구속, 제적, 정학 등 희생이 적지 않았다. 내가 다니던 동아대학교에서는 제적 및 구속 11명, 무기정학 8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희생을 냈다. 

나는 6월 13일 아침 부산시 경찰국 형사들에게 검거, 투옥됐고, 며칠만에 포승줄에 묶여 부산지검 곽모 검사 앞에 앉았다. 당시 경찰국 유치장은 지금 부산 관세청 옆 바닷가 지하로 기억된다. 마침 곽모 검사실에는 사법시험에 합격, 갓 검사시보로 와있던 대학동기가 있었다. 덕분에 조금은 후하게 조사를 받은 것 아닌가 싶다. 그 친구는 훗날 부산지법과 고등법원장을 거쳐 지방대학 출신으로는 드물게 대법관까지 역임했다. 곽 검사는 뒤에 부장검사가 됐으나 고향인 청주에서 검사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되어 생을 마치는 불운을 겪었다. 그가 청주지검에 있을 때 한 번 찾아가서 회포라도 풀은 게 그나마 내 인생길에서 조금은 다행인 것 같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소소한 그런 일들은 여기서 굳이 들먹일 필요조차 없다. 6, 70년대를 가파르게 살아온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으로 산업화, 민주화의 바탕을 이루어 다음 세대에 부(富)와 풍요와 더높은 국가 자긍심을 물려줬다는 것이다. 절친한 대학동기 두 사람은 60년대 열사의 중동 건설 현장에서, 또 한 친구는 서독 탄광 지하 수천 미터 막장에서 목숨을 건 산업역군으로 땀을 흘렸다.

그해 6월 하순 다행히 정부가 관대한 조치를 지시해 기소유예(起訴猶豫) 처분을 받고, 지금의 부산 서구 동대신동 삼익아파트 자리에 있었던 부산형무소에서 풀려났다. 한여름 뙤약볕이 아스팔트를 녹이던 7월 어느날, 무기정학, 제적을 당한 19명 동료와 후배들은 남포동 향촌다방에 모였다. 의논 끝에 각자 도생(圖生)의 길을 찾기로 결정했다. 서울, 대구, 강원도로, 또 고향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나는 서울 성북구 돈암동 은사댁에서 교수님 책 저술 원고를 손질하고 정리해 드리면서 혹독했던 그해 서울 겨울을 견뎌냈다.

이듬해 1964년 봄, 학교에서 제적, 무기정학 징계가 해제되어 복학했다. 우리는 모처럼 대신동 캠퍼스에서 무탈하게 재회(再會), 서로 얼싸안고 활짝 웃었다. 그로부터 어느듯 66년, 모두가 백발이 성성한 칠순 팔순 노인이 됐다.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안부조차 모르는 친구 후배들이 19명 중 절반을 넘는다. 

세월과 삶이 우리 한테서 너무 많은 걸 앗아갔다. 하지만 단 하나 우정과 그때 젊음의 열정은 그대로 우리들 가슴에 남아 지금 이 순간도 동행(同行)하고 있다. 역사의 뒤안 길에서 사위어가는 촛불이면 어떤가. 적어도 그때는 밤 하늘 별빛보다 더 밝았으니까.

친구야, 이러저런 사정으로 안부는 주고받지 못해도 몸 만은 늘 무탈하거라. 역사에 한 줄 기록이 없다한들 그게 뭐 그리 대수인가.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6.25 동족 상잔(相殘)의 비극적 전쟁으로, '이름모를 비석'에 녹쓴 철모 하나로 댕그러니 남은 병사들, 이 땅 어디엔가 아직도 잠들지 못하고 구천을 떠도는 우리 아들 딸들의 '워낭소리'가 들리지 않은가. 거기에 비하면 우리는 큰 행복을 누렸고 누리고 있다.

2019년 6월 3일, 묵혜(默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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