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사라진 이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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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사라진 이유 있다
  • 취재기자 임상영
  • 승인 2019.05.27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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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대부분 방과 후 학원행
시간 있어도 실내에서 스마트폰으로 유튜브 보고 PC방에서 게임 삼매경
유아들은 엄마와 카즈카페에서 즐겨
전문가들 "부족한 신체활동이 정신적 결함 야기한다" 경고

5월 날씨가 화창한 어느날 오후 2시. 아이들이 많이 뛰어놀만한 이 시간에 부산시 사하구에 있는 한 아파트 놀이터는 조용하다. 이 아파트에 살고 있는 가구 수는 500가구 이상이다. 분명 아이들이 많이 살고 있을 텐데, 이 아파트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사라졌다. 아이들은 도대체 이 시간에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5월 날씨가 화창한 어느날 오후 2시, 부산시 사상구의 한 아파트 어린이 놀이터에는 단 한 명의 아이들도 없다(사진: 취재기자 임상영).
5월 날씨가 화창한 어느날 오후 2시, 부산시 사상구의 한 아파트 어린이 놀이터에는 단 한 명의 아이들도 없다(사진: 취재기자 임상영).

아이들이 유치원이나 초등학교가 끝난 후 가장 흔하게 가는 곳은 단연 학원이다. 국무총리 산하 연구기관인 ‘육아정책연구소’의 육아정책 브리프 '영유아의 사교육 노출, 이대로 괜찮은가'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2세(만 나이) 아동의 사교육 비율은 35.5%지만, 5세 아동의 사교육 비율은 무려 83.6%에 달했다. 즉, 우리나라 만 2세 아동 10명 중 3명이 사교육을 받고 있는 반면, 5세 아동은 10명 중 8명이 사교육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초등학생도 마찬가지이다. 통계청의 KOSTAT 통계플러스 창간호에 발표된 보고서 '지난 10년 동안 사교육비의 변화 추이(2007∼2016년)'를 보면, 2016년 초등학생의 사교육 참여율은 80.0%였다. 초등학생 10명 중 8명이 사교육을 받고 있는 것이다. 한국소비자원이 밝힌 다른 자료에 의하면(그림 참조), 주 3-4회 사교육 학원에 가는 아이는 37.9%, 주 5-6회 사교육 장소에 다니는 초등학생 비율은 33.6%, 매일 다닌다고 답한 학생들은 10%에 달했다. 초등학생 이한빛(10, 부산시 사하구) 군은 “학교 끝나면 공부학원에 가야하고, 공부 학원 안 가는 날에는 태권도장을 가야해서 친구들이랑 밖에서 놀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초등학생들이 일주일에 받는 사교육 횟수의 비율(자료: 한국소비자원)
초등학생들이 일주일에 받는 사교육 횟수의 비율(자료: 한국소비자원)

방과 후 학원에 다녀와서 아이들은 놀이터말고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노는 것일까? 그 대답은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가지고 노는 거였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의 '2017년 인터넷 과의존 실태조사'를 보면, 만 3-9세 유·아동의 스마트폰 중독 비율은 2015년 12.4%에서 2016년 17.9%, 2018년에는 19.1%로 늘어났다. 주부 윤미옥(38, 부산시 강서구) 씨는 “아이들한테 스마트폰만 쥐어주면 조용해져서 좋다”고 말했다. 어머니들도 아이들이 스마트폰으로 조용히 노는 것을 방관하고 있다는 얘기다.

초등학생 정서빈(9, 부산시 강서구) 양은 “스마트폰으로 주로 유튜브에 재미있는 만화를 본다. 보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로 주로 하는 일은 유튜브 동영상 시청과 게임이다. 앱/리테일 분석업체 와이즈앱이 2018년 11월 한 달 동안 국내 안드로이드 앱 총 사용 시간을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 국민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앱은 317억 분으로 유튜브였다. 그리고 우리 국민이 유튜브를 사용한 317억 분 중 10대가 사용한 시간이 86억 분으로 전 세대 중 가장 많았다. 초등학생 이찬영(10, 부산시 사하구) 군은 “친구들이랑 모여서 유튜브를 보거나 유튜브에서 본 것을 서로 얘기하는 시간이 가장 즐겁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사진: 유튜브 캡처).
아이들이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사진: 유튜브 캡처).

아이들의 게임 과의존 현상도 놀이터에 아이들이 없는 이유 중 하나다. 아이들은 게임하려 주로 PC방에 간다. 유튜버 ‘위키즈’가 어린이들이 PC방에 가는 이유에 대해서 영상을 올렸는데, 여기에 따르면, 많은 아이들이 집의 컴퓨터 사양이 게임하는 데 안 좋아서 PC방에 간다고 했다. 초등학생 최지우(13, 부산시 사하구) 군은 “학원 안가는 날이면 PC방에 친구들과 가서 게임을 한다”고 말했다. 같은 초등학생 손승훈(11, 부산시 사하구) 군은 “요즘 친구들이 모이면 당연히 게임하러 PC방 가는 게 일이다. 친구들과 밖에서 뛰면서 노는 것보다 게임 하는 걸 좋아해서 학교 마치면 PC방으로 우르르 몰려간다”고 말했다.

초등학교나 아파트 근처에 있는 PC방일수록 아이들이 많이 몰린다. 초등학교가 끝나는 시간 직후나 주말에는 초등학생이 PC방에 더 몰린다고 한다. PC방 알바 한상훈(24) 씨는 “주말이나 초등학교 하교 시간에는 초등학생 아이들이 많이 몰린다. 그래서 그 시간대가 알바하는 데 가장 힘들고 바쁘다”고 말했다.

유아들이나 유치원생들은 요즘 놀이터 대신 ‘키즈카페’를 간다. 키즈카페는 놀이시설이 마련된 카페로 부모들은 키즈카페 한 곳의 별도 공간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쉬고 아이들은 놀이시설에서 즐기면서 부모와 아이가 시간을 같이 보낼 수 있는 공간이다. 고용노동부 아빠넷의 조사에 따르면, 2018년 키즈카페 수는 전국에 약 2300여 곳으로 나타났다. 취학 전 아이들은 혹시 뛰어 놀 시간이 나면 이렇게 부모와 같이 키즈카페를 찾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럴까? 키즈카페에는 다양한 놀거리가 있다. 등산 스포츠의 한 형태인 클라임 체험을 할 수 있는 장소도 있고, VR공간에서 아이들의 오감을 자극시키는 카페도 있다. 끈적끈적한 점액질 장난감인 슬라임을 가지고 노는 카페도 있다. 그 밖에도 엄청나게 다양한 종류의 게임과 놀이기구를 갖춘 카페들이 많다. 주부 최하나(32, 부산시 강서구) 씨는 “주말에 친구들이랑 만나서 놀고 싶어도 아이들 때문에 힘든데 키즈카페에서 만나면 친구들도 아이를 데리고 와서 애들은 애들끼리 놀고 엄마들은 엄마들끼리 이야기하면서 쉴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키즈카페의 내부 모습. 다양한 놀이기구가 아파트 놀이터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사진: 취재기자 임상영).
키즈카페의 내부 모습. 다양한 놀이기구가 아파트 놀이터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사진: 취재기자 임상영).
키즈카페에는 장난감 종류가 엄청나게 다양하다. 그래서 아이들이 키즈카페에 오면 정신 없이 놀기 마련이다(사진: 취재기자 임상영).
키즈카페에는 장난감 종류가 엄청나게 다양하다. 그래서 아이들이 키즈카페에 오면 정신 없이 놀기 마련이다(사진: 취재기자 임상영).

키즈카페가 활성화되다보니 아파트 놀이터의 획일화된 놀이기구가 아이들에게 전혀 호기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아파트 놀이터에는 기본적으로 미끄럼틀, 시소, 그네 등이 있는데, 이런 정도의 놀이기구는 키즈카페에 비해서는 재미가 많이 떨어진다. 그래서 아이들은 더욱 아파트 놀이터에 가지 않는다. 최동훈(5, 부산시 사하구)군은 “아파트 놀이터의 미끄럼틀은 너무 낮고 키즈카페에 비해서 낡고 재미없어서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파트 놀이터에 아이들이 사라지자 놀이시설은 그냥 방치되기 일쑤다. 그래서 아파트 놀이시설은 노후화가 빨리 진행된다.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는 환경안전관리기준에 적합한지 월 1회 이상 검사받아야 한다. 이 안전기준에 적합하지 못한 놀이터는 아이들을 위해서 폐쇄시키고 보수해야한다. 만약 안전기준에 적합하지 않은 곳에서 아이가 놀다가 다치면 아파트가 배상해야 되기 때문에 자금이 없는 아파트는 놀이터를 아예 출입금지시키고 방치하기도 한다.

그래도 가동 중인 아파트 놀이터에 아이들이 가지 않는 이유는 부모들이 안전사고나 성추행 등 때문에 아이들을 놀이터에 보내기를 꺼려하기 때문이다. 주부 김성이(35, 부산시 사하구) 씨는 “하도 세상이 흉흉해서 아이 혼자 놀이터에 보내기가 꺼려진다. 놀이터에 나가면 같이 나가고, 내가 못 나가면 아이를 차라리 집에서 놀게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우리나라 아이들은 방과 후에 학원과 PC방 등 주로 실내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7 청소년종합실태조사’에 따르면, 9-12세 어린이들은 운동이나 야외 신체활동을 일주일에 4시간 정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약 25.4%는 운동이나 야외 신체활동을 일주일 동안 단 1분도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아이들이 뛰어놀지 못하면 성장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우리 아이들이 허약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텔아비브대학 케런 샤할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운동을 한 아이들이 안한 아이들보다 자기 조절, 자기 관찰, 문제 해결, 만족 지연 등 모든 분야에서 일반 수업을 받은 학생들보다 높은 성장을 보였다. 신체 활동이 적으면 정신적 문제를 낳을 수 있다는 얘기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신체활동 건강지침에는 만 5-17세 어린이 및 청소년은 매일 최소 60분 신체활동을 해야 하고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그 시간에 격렬한 강도의 신체활동을 하는 게 좋다고 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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