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변이 창궐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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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변이 창궐하는 사회
  • 편집위원 양혜승
  • 승인 2014.10.06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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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들(sophists)에 대해 배운 적이 있다. 기원전 5세기 무렵 고대 그리스를 주름잡던 지식인이자 교사. 하지만 돌이켜보면, 왜 그들에 대해 공부해야 하는지, 도대체 그들이 현대에 어떤 의미를 주는지에 대해 어떤 선생님도 명확한 설명을 해주신 기억이 없다. 물론 그들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양철학을 훑어야만 하고, ‘지식이란 무엇인가’를 비롯해서 철학적인 이야기에 발을 담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중고등학교 교실에서 그런 ‘고민거리’를 차분하게 다루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내 머리 속엔 ‘소피스트 = 궤변론자(詭辯論者)’ 라는 아주 단순하고 이상한 공식만 덩그러니 남았다.

갑자기 학창시절에 배운 ‘궤변론자’들이 뇌리를 스친 건 순전히 이 ‘궤변(詭辯)’이라는 단어 때문이다. 요즘 들어 이 단어가 심상치 않은 느낌으로 와 닿는다. 세상이 온통 궤변으로 넘실대는 인상이다. 신문과 방송을 통해 접하는 많은 소식들 속에서 밑도 끝도 없는 어이없는 궤변들이 창궐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국가정보원 직원들에게 선거 개입을 지시한 혐의 등으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기소된 바 있다. 그리고 원 전 원장의 혐의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얼마 전에 있었다. 국정원의 정치 관여 행위를 금지하고 있는 국정원법 위반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공직자의 선거 개입 행위를 금지하고 있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는 무죄 판단을 받았다. 국정원의 직원들에게 지시하여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지지 또는 비방하는 댓글과 트위터 활동을 하게 한 것이 정치 관여 행위이긴 하지만 선거 개입 행위는 아니라는 것이다. 일반인의 경우 선거 과정에서 자칫 댓글을 잘못 달거나 리트윗을 하는 행위만으로도 쇠고랑을 찰 수가 있다. 그런데 더욱 엄격한 기준을 적용받아야 할 공무원들이 선거 과정에서 조직적인 활동을 했음에도 단죄하지 않는 것은 상식을 벗어나도 한참을 벗어난 일이다. 법원의 판단은 이러했다. 공무원의 지위를 이용한 선거법 위반에 해당하려면 특정 후보자의 당선이나 낙선을 위한 행위라는 점이 입증돼야 하는데 원 전 원장으로부터 그런 지시는 없었다는 것이다. 정치에만 개입하고 선거에는 개입하지 않도록 지시를 내리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도무지 잘 모르겠다. 정치개입은 했지만 선거개입은 아니다? 멋지다. 멋진 궤변이다.

하긴 이것보다 최소 동급 혹은 역대급 궤변이 최근 속출했다. 새누리당 상임고문인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 얼마전 골프장 경기진행요원(캐디)을 성추행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입법부의 수장을 지낸 사람의 수준이 이 정도인가 싶어 허탈감을 감출 수 없었다.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여성의 경찰 진술에 따르면, 홀을 돌 때마다 계속 성희롱과 성추행을 당했고 성적 수치심을 느낄 정도의 신체접촉이 있었다고 한다. 여기에 반해 박 전 의장은 자신이 딸 둘을 가진 사람이라 여성들을 보면 자신의 딸처럼 귀엽고 손녀처럼 정답고 해서 그런 것이라고 했다. 손가락 끝으로 가슴 한 번 툭 찔렀는데 무슨 문제가 되느냐는 것이다. 박 전 의장의 성추행이 실제로 어떤 수준의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경악스러운 것은 그의 반응이다. 딸이나 손녀 같아서 가슴을 찔렀지만 성추행은 아니다? 멋지다. 역대급 궤변이다.

정부가 담뱃값, 주민세 등을 인상할 방침이다. 특히 담뱃값은 2500원짜리 담배를 4500원으로 올리는 파격적인 안을 내놓았다. 서민들의 주머니를 터는 서민증세로 이어진다며 반대의 목소리가 드높다. 민주국가에서 국가 운영의 근간은 국민들의 세금이다. 따라서 국민들의 합의가 바탕이 되고, 나라 살림의 투명한 집행이 보장된다면 증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문제는 대선 당시 박근혜 당시 대선후보의 공약 때문이다. 당시 대선후보 토론회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박근혜 대선후보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증세 없이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복지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증세하지 않고 복지재원을 어떻게 충당하느냐는 야당후보의 반론에 “그러니까 제가 대통령 하겠다는 거 아니겠어요?” 라고 강력하게 대응한 바 있다. 말 뒤집기라는 비난을 우려하는 때문인지 ‘증세’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반응은 원천봉쇄 수준에 가깝다. 청와대 경제수석이 증세에 대해 내놓은 개념정의는 실로 가관이다. 엄밀한 의미의 증세는 세율 인상이며, 담뱃값 인상 등으로 세수(稅收)가 늘어나는 것은 증세가 아니라는 것이다. 세수입이 늘어나도 증세는 아니다? 멋지다. 이것도 멋진 궤변이다.

공교롭게도 위의 궤변들을 나열하고 보니 사법부, 입법부, 행정부에서 각각 등장한 것들이다. 우리사회의 권력이 이런 궤변을 늘어놓는 현실이 한없이 서글프다. 권력의 궤변은 서글픔을 주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권력층의 이런 궤변들은 사회 전반에 궤변의 창궐을 낳는다. 휴대폰 무한요금제가 사실은 무제한이 아니라는 기가 막힌 현실, 국내산이라고 표기된 먹거리가 꼭 국산은 아니라는 이해하기조차 난해한 규정, 술 마시고 운전은 했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라는 어이없는 말장난까지, 세상은 궤변으로 몸살을 앓는 느낌이다. 도대체 무슨 짓인가.

사실 기원전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들을 뭉뚱그려 궤변론자로 칭하는 건 다분히 문제가 있어 보인다. 현재 이들의 사상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어떤 저술도 완전히 남아있지는 않다. 그래서 학자에 따라서는 그들의 직업이 교사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어떤 공통점도 없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초기의 소피스트들은 말 그대로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뜻했지만, 이후 ‘말빨’로 상대를 제압하는 기술 중심의 변론술을 주로 가르치다보니 궤변론자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그들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자신들의 말빨을 훨씬 능가하는 2014년 한국사회의 말빨들을 보며 이렇게 놀라지 않을지 모르겠다. “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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