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할로윈데이를 지켜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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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할로윈데이를 지켜보며
  • 양혜승 시빅뉴스 편집위원
  • 승인 2013.11.18 1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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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로윈데이가 지나갔다. 연구년으로 미국에 머물고 있는 터라 미국의 할로윈 문화를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었다. 물론 미국에서 대학원 공부를 하던 시절에도 몇 차례 할로윈데이를 경험했다. 하지만 강산도 변한다는 세월이 흐른 뒤 미국의 할로윈 문화를 다시금 관찰하는 것은 흥미로웠다.

10여 년 전 미국에서 할로윈데이를 처음 접했을 때는 이 문화가 몹시 생소했다. 그리고 동시에 의아함이 생겼다. 기독교가 보편화된 미국 사회에서 할로윈 문화가 어떻게 번성할 수 있는지. 기독교는 본디 유일신을 숭배하는 종교다. 유일신 외의 다른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할로윈은 귀신의 존재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할로윈데이는 귀신들이 땅에서 나와 그들의 껍데기로 쓸 육신, 즉 사람을 찾아다닌다는 날이다. 할로윈데이에 사람들이 기괴한 복장으로 변장을 하는 것은 귀신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였다고 한다.

사실 할로윈은 미국의 토착문화가 아니다. 그 뿌리는 유럽에 거주하던 고대 켈트인들의 풍습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켈트인들은 모든 사물에 정령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다신교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19세기 유럽 노동자들이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켈트 풍습이 전해졌다. 할로윈은 그 풍습 중 하나다. 오늘날의 할로윈데이는 아일랜드 섬에서 행해지던 켈트의 종교적 축제이자 새해 전야 축제인 ‘삼하인’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할로윈이 기독교의 기본 신념과 충돌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런 ‘불편한 진실’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할로윈 문화는 더욱 번창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얼까. 그건 할로윈을 일종의 축제로 받아들이는 미국식 할로윈의 특수성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따라서 종교적 기원 등에 의미를 두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사람들은 유령의 집에 가서 공포체험을 하고 기괴한 복장을 입고서 기괴함 그 자체를 즐긴다. 어린이들은 할로윈 복장을 하고 이웃에 사탕을 받으러 다닌다. 어른들은 주로 술을 마시고 파티를 연다. 그야말로 축제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다.

할로윈의 축제화에는 미국식 상업주의가 지대한 역할을 한다. 미국 마트에 가보면, 일년 내내 이벤트의 연속이다. 발렌타인데이, 부활절, 성패트릭스데이, 독립기념일, 개학 시즌, 할로윈,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등이 이어진다. 마트들은 한 이벤트가 끝나기 무섭게 다음 이벤트를 준비한다. 각 이벤트에 어울리는 치장을 하고 해당 이벤트에 맞춘 선물용품과 과자들로 선반을 채운다.

할로윈데이는 시기적으로 볼 때 백투스쿨이라고 불리는 개학 시즌인 8월말과 추수감사절인 11월말 사이에 존재한다. 따라서 미국의 가을철 소비에 지대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인들이 할로윈을 위해 소비하는 금액은 80억 달러, 우리 돈으로 8조원이 넘는다고 한다. 그 중 할로윈 복장 구매에 들어가는 비용이 3조원에 가깝고 과자 소비만도 2조원이 넘는다. 그 과자의 양이 타이타닉 배 무게의 6배와 맞먹는 수준이다.

실제로 할로윈을 앞두고 미국 마트에 가보면 할로윈이 얼마나 상업주의적인지를 실감하게 된다. 미국 현지에서 체감하는 할로윈데이는 감히 발렌타인데이가 넘볼 수 없는 대형 축제다. 할로윈의 상징인 주황색과 검정색으로 포장된 각종 사탕이나 초콜릿 제품들, 기괴하고 다양한 할로윈 복장들이 마트를 뒤덮는다. 축제를 위한 소비인지 소비를 위한 축제인지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미국식 할로윈 문화의 특성은 헐리우드와의 결합에서도 볼 수 있다. 10여 년 전 미국 어린이들의 할로윈 복장은 주로 동화책에 등장하는 요정이나 공주, 혹은 여러 가지 동물에 국한되어 있었다. 소위 캐릭터 의상이라고는 스파이더맨 정도가 고작이었다. 하지만 2013년의 어린이용 할로윈 복장은 스파이더맨 일색에서 벗어나 아이언맨, 캡틴아메리카, 슈퍼맨 등 다양한 히어로 캐릭터로 진화해 있었다. 헐리우드의 힘이 할로윈의 상업주의와 결합하고 있었다.

하지만 헐리우드의 힘은 히어로 캐릭터보다는 다른 곳에서 더 극명해지고 있었다. 판매되는 할로윈 복장으로는 괴물, 마귀, 좀비, 뱀파이어, 늑대인간이 지배하고 있었다. 모두 할리우드 영화들을 모티브로 한 것들이었다.

문제는 끔찍하고 잔인한 느낌을 주는 복장들이 어린이들에게도 판매되고 있는 점이었다. 갈비뼈와 내장이 입체적으로 실감나게 만들어져 있고 그 사이를 가짜 피가 흐르도록 만들어진 의상, 뼈가 일그러지고 피가 묻은 해골 형상의 가면 등은 충격이었다. 상업주의로 점철된 미국의 할로윈, 그리고 헐리우드의 힘과 결부되어 기괴해지는 미국의 할로윈을 바라보며 씁쓸함이 밀려왔다.

그러던 중 씁쓸함을 더하는 한국발 뉴스를 접했다. 자녀들의 할로윈 복장이 부모들의 새로운 '등골 브레이커'가 되고 있다는 뉴스였다. 자녀의 유치원 할로윈 파티를 위해 200만원 짜리 드레스를 입혔다는 부모의 이야기도 있었다. 물론 일부 계층에 국한된 이야기라고 믿는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이런 내용의 뉴스가 더 잦아진다. 우리 사회의 할로윈이 미국식 상업주의를 그대로, 아니 더 심하게 답습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한국에서는 할로윈이 젊은이들의 파티 문화로 변질되고 있다는 뉴스도 있었다. 특히 올해 젊은이들 사이에서 할로윈이 유행하는 현상을 ‘할로윈 광풍’이라고 표현하는 미디어도 있었다. 할로윈데이에 10대들의 음주와 흡연 등 일탈이 비일비재하다는 소식도 있었다. 물론 모든 젊은이들이 할로윈 파티를 즐기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파티가 꼭 일탈로 이어진다고 보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씁쓸함은 어쩔 수 없다.

어떤 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할로윈이 유행처럼 퍼지는 것을 문화제국주의의 관점에서 바라보기도 한다. 미국의 문화가 우리의 문화를 지배하는 현상 중 하나라는 해석이다. 한편 어떤 이들은 국제적인 문화의 흐름과 유입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보기도 한다. 우리 것은 아니지만 서양문화라고 해서 배척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든 ‘할로윈 광풍’을 되돌려 놓기는 힘들어 보인다.

우리 명절 중에 할로윈데이와 유사한 기원을 갖는 동짓날이 있기는 하다. 귀신을 쫓는다는 의미에서 유사함이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할로윈이 더 이상 축귀(逐鬼)에 의미를 두지 않기에 우리 사회에서 할로윈데이를 동짓날로 대신하자는 것은 이상에 가깝다. 최근의 한 조사에 따르면, 초등학교 3학년 학생 중 단오와 동지의 의미를 모두 알고 있는 학생은 40명 중 2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결국은 미국처럼 축제로서의 할로윈이 우리 사회에도 유행처럼 퍼져나갈 것이다. 하지만 다행이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 할로윈에는 미국식 상업주의와 기괴한 코스프레가 완벽하게 자리를 잡은 것 같지는 않다. 동짓날로 할로윈데이를 대신할 수 없다면 우리만의 스타일로 할로윈 문화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할로윈데이를 받아들인다고해서 미국식의 상업주의나 기괴한 코스프레까지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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