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 만연한 ‘피해자 비난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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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 만연한 ‘피해자 비난하기’
  • 편집위원 양혜승
  • 승인 2014.07.14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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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건은 충격이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 이해할 수 없을 만치 비정상적임을 깨닫는 것은 충격 그 이상이었다. 오히려 슬픔이나 분노에 가까웠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외적인 성장과 물질적인 화려함만을 좇아왔다. 그러한 가운데 정작 기본적인 사회 시스템을 챙기지 못했다. 부끄러운 일이다.

세월호 사건 이후 국가개조에 대한 목소리가 높다. 대통령도 국무총리도 국가개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국민의 안녕을 위해 기본적인 것들을 챙겨내기 위한 국가개조라면 이에 반대할 국민은 없다. 정상적이지 않은 시스템을 정상적인 것으로 바꾸어내기 위한 국가개조라면 당연히 환영할 일이다. 오히려 만시지탄이다.

하지만 만의 하나라도 국가개조를 국민개조와 동일시하는 오류는 없어야 한다. 아니, 국가개조의 필요조건으로 국민개조를 언급하는 것조차도 없어야 한다. 이는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는 우에 다름 아니다. 우리 사회의 시스템의 붕괴는 ‘미개한’ 일반국민들이 그 원인을 제공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일반국민들은 붕괴된 시스템으로 인하여 피해를 당하는 피해자다. 심지어 어떤 이는 자식을 잃고 부모를 잃어야만 하는 안타까운 피해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사건 이후 일반국민들의 안전불감증을 지적하고 나오는 이들이 있다. 일반국민들이 안전불감증에 젖어있다면 물론 그것은 문제다. 하지만 그것이 사태의 본질이거나 원인은 아니다. 오히려 불합리하고 불완전한 안전시스템에 익숙해진 결과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국가개조의 한 축으로 국민개조를 들고 나오는 순간 원인과 결과가 순식간에 뒤바뀌는 오류에 빠지게 된다.

이런 오류는 사회학에서 말하는 ‘피해자 비난하기’(blaming the victim)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것은 사회적으로 그릇된 행위를 범한 행위자보다는 오히려 그 행위의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을 말한다. 한 남성이 한 여성을 성추행한 사건이 발생했다고 치자. 여성의 치마가 너무 짧았다거나 한밤중에 겁 없이 돌아다녔다는 등의 논리를 통해 피해여성의 책임을 부각시키는 경우가 ‘피해자 비난하기’의 대표적인 예다. 피해자를 두 번 짓밟는 일이다. 여성의 치마가 너무 짧으면 성추행을 해도 된다는 것인가. 밤에 돌아다니면 성추행을 당해도 된다는 말인가. 말도 안 되는 논리적 오류다.

세월호 사건 후 “가난한 집 애들이 설악산이나 경주 불국사로 수학여행을 가면 될 일이지, 왜 배를 타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다 이런 사단이 빚어졌는지 모르겠다”고 말한 한 목회자의 발언도 ‘피해자 비난하기’의 전형적인 예다. ‘피해자 비난하기’는 가해자의 잘못을 교묘하게 덮는다는 점에서 일단 문제가 있다. 그리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발생하는 사회구조적인 현실을 은근슬쩍 감춘다는 점에서 더 큰 문제가 있다.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개인화하는 ‘피해자 비난하기’는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필자가 거주하는 부산의 교통문화는 악명이 높다. 교통안전공단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운전행태나 보행행태 등 교통문화에 있어 부산은 거의 해마다 전국 최하위 수준이다. 이 뉴스를 보도하는 부산의 언론들이 내놓는 대책은 한결같다. 부산 사람들의 운전행태나 보행행태의 개선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부산은 갑자기 몰려든 피난민의 정착지였다. 도시계획 자체가 불가능했다. 지금까지도 운전자나 보행자 모두에게 불편하기 짝이 없는 도로망을 보유하고 있다. 결국 이런 악조건 속에서 생활하는 부산의 운전자와 보행자는 사회적 피해자들에 다름 아니다. 부산 사람들이 유독 저급한 교통문화를 지닌 것처럼 비난하는 것은 잘못이다. 교통문화는 교통시스템의 결과일 뿐이다.

시스템이 문제라면 시스템을 고쳐야 한다. 여기서의 시스템이란 사회의 규칙, 그 규칙이 적용되는 과정, 그리고 거기에 관여하는 관계자 등을 모두 포함한다. 시스템을 그대로 둔 채 일반국민들의 변화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노력이 피해자들의 몫으로 남겨져서는 안 된다.

세월호 사건은 부끄러운 비극이었다. 참담한 비극을 경험하고서도 사태의 원인과 결과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더더욱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 사회에서 시스템의 문제를 책임질 위치에 있는 이들은 자신들을 포함한 시스템 개조에 나서야 한다. 자신들을 향한 비난의 화살을 돌리기 위해 국민개조로 물타기를 하는 일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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