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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 소모적인 ‘남남 갈등’은 안 된다강동수의 자투리시사인문(29) 남북단일팀 구성을 둘러싼 논란을 푸는 올바른 방법 / 편집국장 강동수

1.

편집국장 강동수

2월 9일 개막되는 평창 겨울올림픽에의 북한 대표단 참가를 위한 남북한 협상의 얼개가 짜였다. 북한은 선수 22명, 임원(코치 포함) 24명 등 46명의 선수단을 파견하기로 했다. 선수단 22명엔 남북이 단일팀을 구성하기로 한 여자아이스하키 팀 12명이 포함돼 있다. 북한은 이 밖에도 자력으로 출전권을 따낸 피겨스케이팅 페어 부문에다 IOC로부터 와일드카드를 얻은 쇼트트랙, 알파인 스키, 크로스컨트리 등 모두 5개 부문에 출전한다.

남북한은 개·폐회식에서 한반도기를 앞세우고 공동 입장한다. 평창올림픽 공동 기수는 남북에서 1명씩 나선다. 단일팀이 출전하는 여자 아이스하키 역시 한반도기를 공동 국기로, ‘아리랑’을 공동 국가로 사용한다. 팀명은 프랑스어에서 따온 ‘COR.' 개별적으로 출전하는 다른 종목에선 각각 태극기와 인공기를 사용한다.

한반도기(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북한은 이 밖에도 서울과 강릉에서 연주회를 가질 천지연관현악단 단원 140여 명과 태권도 시범단, 응원단, 기자단 등을 합쳐 모두 500명 안팎의 대규모 대표단을 보낼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미 천지연관현악단 단장 현송월이 이끄는 북한 점검단이 며칠 전 강릉과 서울의 공연시설을 점검하고 돌아갔고, 남북 선수단이 공동 훈련하기로 한 북한 마식령 스키장과 남북한 합동 문화행사가 열릴 금강산 지역을 둘러 볼 우리 측 점검단도 북한으로 갔다.

지난 1월 1일 북한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평창올림픽에 북한선수단을 파견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지 3주 정도 만에 속전속결로 이렇게 상황이 진전됐으니 국민들로선 어리둥절할 수도 있을 터. 그도 그럴 것이 지난 연말까지만 해도 한국과 미국이 북한의 핵 도발을 놓고 제재와 압박의 강도를 높여 왔고, 비록 빈말일지라도 미국이 북한에 대한 무력 사용 가능성까지 제기해 전쟁에 대한 불안까지 일어났던 마당이니 말이다.

어쨌거나 우리는 평창에서 파란색 한반도가 그려진 깃발을 들고 남북한 선수단이 함께 개회식에 입장하는 모습을 지켜보게 됐다. 북한 여성 응원단이 스탠드에 줄지어 앉아 ‘짝짝이’를 두드리는 장면을 볼 수도 있게 된 것. ‘상전벽해(桑田碧海)’란 말이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급히 먹는 밥이 체하더라고 부작용도 없을 수는 없다. 시간이 급박했던 탓이겠지만, 여자 하키를 단일팀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정부가 협회나 선수단과 사전 조율이 부족했던 탓에 이런저런 뒷말이 나오고 있다. 북한과의 단일팀이 중요하다손 치더라도, 올림픽을 바라보고 그동안 땀 흘려 온 선수 일부에게 출전 기회가 돌아가지 않는다면 공정하지 못한 처사라는 여론이 비등했다. 특히, 공평과 공정함의 훼손에 민감한 20~30대의 반대 여론이 높자 정부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더구나 일부 보수층을 중심으로 개·폐회식 등에서 태극기 대신 한반도기를 드는 것에 거부감을 보이는 사람도 적지 않다. 다른 대회도 아니고 우리가 개최국인데, 어떻게 국가의 상징인 태극기를 들지 못하느냐는 거다.

2017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아이스하키 여자 세계선수권대회 디비젼 2그룹 A(4부리그) 다섯째 날인 6일 저녁 강원도 강릉시 작년 4월 7일 강릉하키센터에서 열린 대한민국과 북한의 경기에서 한국이 3:0 으로 승리했다. 경기를 마친 뒤 양팀 선수들이 기념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북한 선수단의 남한 입국은 2014년 10월 인천 아시안게임 이후 2년 6개월 만이다(사진: 거 팩트 제공).

글쎄, 일이 너무 빨리 돌아가다 보니 국민들의 정서에도 약간의 혼선이 일어난 모양이다. 몇 년을 두고 남북한의 교류 협력 분위기가 쌓여 가는 와중에 시간을 두고 협상이 차근차근 진행됐더라면 국민들도 마음의 준비를 했을 텐데 말이다. 북한 핵개발의 시간벌기에 우리가 말려드는 게 아니냐, 자칫 ‘죽 쒀서 개 주는 꼴이 아니냐’는 경계 의식과 거부감이 보수 야당과 보수 세력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모양새다.

그렇다고, 남북한이 언제까지나 소모적인 대치만 해야 하느냐, 어차피 대화와 협상의 테이블을 차려야 한다면 이참에 올림픽을 그 지렛대로 삼을 필요가 있지 않느냐, 평창올림픽을 그 마중물로 삼아서 나쁠 게 뭐 있느냐는 주장 역시 강력하게 대두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2.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유구한(?) 남북한 체육 교류의 역사부터 짚어보기로 하자.

최초로 남한과 북한 간의 체육 교류 필요성이 제기된 건 1957년 6월 10일 북한 올림픽위원회가 1960년 로마올림픽에 남북이 단일팀을 구성해서 출전하자고 제의한 것이 시작이다. 1960년엔 김일성이 ‘8・15해방 경축대회 연설’을 하면서 남북연방제를 제의하면서 그 중간 이행 방법의 하나로 남북 체육 교류를 언급했다.

그때는 북한이 적극적으로 체육 교류를 제의한 반면, 한국은 매우 소극적·부정적 자세를 취했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라 북한에 대한 불신과 적대감이 가시지 않았기 때문. 당시만 해도 북한의 전반적인 국력이 한국보다 우위에 있었던 때라 한국 정부는 더 소극적인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남북체육회담’이 이루어진 것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요청 때문이었다. 1963년 1월 23일 국제올림픽위원회는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동·서독의 전례에 따라 1964년 도쿄올림픽에 남북한이 단일팀을 구성할 것을 요청했다. 그래서 스위스 로잔에서 남북체육회담이 열렸다. 그 후 13차례의 회담이 열렸지만, 남한과 북한은 의견차를 좁히지 못한 채 결렬되고 말았다. 하지만, 도쿄올림픽에선 그 유명한 ‘신금단 부녀 상봉’이 이뤄져 전 국민에게 분단의 통한을 되씹게 한 계기가 된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신금단(辛今丹)은 북한이 낳은 전설적인 여자 육상선수였다. 1938년 함경남도 리원군에서 태어난 그는 선반공이었다가 1958년 9월부터 운동선수 생활을 시작했다는데, 1960년 7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즈나멘스끼형제상’ 국제육상경기대회 800m경기에서 세계신기록을, 평양에서 열린 북한·중국·몽골 3개국 육상대회 400m경기에서 또다시 세계신기록을 수립했다. 1963년 11월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에서 열린 제1차 가네포에서도 2개의 세계신기록을 수립했다. 북한의 주장에 따르면, 그는 무려 11번이나 세계기록을 경신했다고.

신금단 부녀의 극정 상봉을 보도한 동아일보 1964년 10월 10일 자 신문(사진: 동아일보 뉴스 라이브러리 캡처).

그런데 신금단이 도쿄올림픽에 출전하자 1·4 후퇴 때 홀로 월남했던 아버지 신문준(辛文濬)이 대한올림픽위원회를 찾아가 신금단이 자기 딸임을 호소했다. 그의 사연이 널리 알려지자 남북이 부녀 상봉에 합의했다. 우여곡절 끝에 단 10분 간의 만남이 이뤄졌다. 그때 중앙정보부가 신문준에게 딸을 설득시켜 남한으로 오게 하라고 지령(?)을 내렸다는데, 신문준이 남한으로 오라는 말을 꺼내는 순간, 입회했던 조총련 관계자가 신금단을 끌고 나가버렸다고. 헤어지는 순간 딸이 “아바이!”라고 외친 사연이 한국 매스컴을 장식하며 전 국민의 심금을 울렸다. 당시 인기가수 황금심은 <눈물의 신금단 부녀>라는 대중가요를 만들어 부르기도 했다. 이런 가사다.

"그리움에 몸부림에 십사 년 간 맺혔던 사연/ 피눈물이 앞을 가려 말문이 막히누나/ 금단아 내 딸이야 내 품에 오라/ 말 한마디 채 못하고 헤어진 이별의 동경//눈물마저 말라붙어 울 수 없는 이국땅에서/ 그 누구나 끊어 놓은 부녀의 정이더냐/ 금단아 잘 가거라, 살아 생전에/ 언젠가는 만나겠지 한 많은 이별의 동경."

물론 두 사람은 신문준이 1983년 사망하기까지 다시는 재회하지 못했다.

남북의 체육회담은 그 뒤로 쭉 이어졌지만 결실을 맺지는 못했다. 1979년 2월 제35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1984년의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등에서의 단일팀 구성을 위한 접촉이 있었고 1985년부터 2년간 1988년의 서울 올림픽의 공동개최를 논의하기 위해 남북 체육회담이 열렸지만 양자 간의 소모적인 논쟁이 오갔을 뿐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하고 모두 결렬되고 만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에 걸쳐서 남북한 단일팀 구성을 위한 분위기가 조금씩 무르익기 시작했다. 1990년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에 남북한 단일팀을 구성·파견하기 위한 체육회담은 총 9차례나 열렸는데도 불발로 그쳤지만 남북한 공동응원팀을 결성하는 성과를 얻었다. 공동 응원에 처음으로 '한반도기'가 등장한 것도 이때다. 또, 아시안게임 중인 1990년 9월 베이징에서 남북체육 정상회담이 열려 ‘남북통일축구대회’ 개최에 합의해 그해 10월엔 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한 체육 교류인 통일축구대회가 평양과 서울에서 번갈아 열렸던 것.

남북한이 처음으로 단일팀을 구성한 것은 1991년 4월 일본 지바에서 열린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 대회였다. 단일팀의 명칭은 ‘코리아(korea), 단일기는 한반도기였다. 다들 아는 대로, 남한의 현정화, 북한의 이분희를 복식조로 내세운 코리아 팀이 세계 최강 중국을 꺾고 단체전 우승을 차지함으로써 국민을 열광케 했다.

남북의 단일팀은 그 이후에도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꾸준히 성사됐다. 1999년 12월 남북통일농구대회가 서울에서 개최됐다.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인 2000년 9월 15일 시드니올림픽 개회식에서 남북이 동시 입장하게 된다. 남북한 선수단 180명이 한반도기를 앞세우고 입장하자 12만여 명의 관중들은 기립하여 손뼉을 쳤다. 이후,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과 2003년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북한 대표단과 응원단이 참가했는가 하면,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선 다시 한 번 남한과 북한 선수단이 동시 입장했다.

하지만 이후 한국에서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서 남북 교류가 끊기자, 체육 교류도 쇠퇴의 길을 밟기 시작했다. 2006년 도하 아시아경기대회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단일팀 구성 문제를 두고 남북은 단일팀 구성 문제에 원론적으로 합의했지만, 세부 사항에 들어가서는 큰 견해차를 보이며 합의에 실패했다. 2007년 10월에 개최된 노무현-김정일 남북정상회담에서 베이징 올림픽에 경의선 열차를 이용해 남북 공동응원단을 파견하기로 합의했지만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이후인 2008년 박왕자 씨 피격 사건이 일어나자 결국 무산돼 버렸다.

박근혜 정권 때인 2014년 인천하계아시안게임에 북한은 선수와 임원, 취재진 등 273명에 이르는 대표단과 당시 북한 정권 서열 2~4위를 차지하고 있던 최고위급 대표단까지 파견해 큰 주목을 받았다.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 최룡해 노동당 비서 겸 국가체육지도위원장,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 등이 그들.

하지만, 이후 북한의 핵 도발을 이유로 박근혜 정부가 개성공단을 폐쇄하는 등 대북 강경조치에 나서자 남북 관계에도 다시 찬바람이 일었고 지금까지 그 상태가 지속되다 이번 평창겨울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공동 입장과 단일팀 구성이 성사된 것.

 

3.

분단국가에서 단일팀이 구성된 건 우리나라 뿐만은 아니다. 통일 전 동서독도 올림픽 등에서의 단일팀 구성을 통해 교류와 협력의 벽돌을 차근차근 쌓아올렸고, 그게 통일의 디딤돌 중의 하나가 된 것은 어김없는 사실이다.

동서독이 처음 단일팀 구성에 합의한 건 1955년. 이에 따라 1956년 이탈리아 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1956년 호주 멜버른 하계올림픽, 1960년 로마 하계올림픽, 1964년 도쿄 하계올림픽에 동서독 단일팀이 참가했다. 단일팀 국호는 '독일', 국기는 오륜 마크가 들어간 흑·적·황 3색기, 국가는 베토벤 교향곡 제9번이었다. 선수 선발 원칙은 '실력 위주'였다고.

1959-1968년 사이에 동서독 올림픽 단일팀이 사용한 국기(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메달 수확도 만족스러웠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뒤로 독일이 처음 참가한 대회는 1952년 핀란드 헬싱키 대회다. 동독이 참가하지 않은 이 대회에서 서독은 금메달은 하나도 획득하지 못했다. 그에 비해 단일팀이 참가한 1956년 멜버른에서는 금 6, 은 13, 동 7로 종합 5위, 1960년 로마에서는 금 12, 은 19, 동 11로 종합 3위, 1964년 도쿄에서는 금 10, 은 22, 동 18로 종합 3위를 기록했다.

물론 동서독이라고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단일팀 구성 과정에서 서독이 동독에 금전적 지원을 한 것, 서독 선수들의 출전 엔트리가 감소한 데 따른 비판 여론이 일어나기도 했던 것. 마치 지금 평창올림픽을 두고 남한 내에서 일고 있는 일부 여론의 불만과도 비슷하다. 그래도 이런 논란을 잠재운 것은 멜버른 대회 4년 전인 1952년 '스포츠 정치 평화 조약'(일명 1952 베를린 조약)을 체결하고 이를 바탕으로 체계적으로 체육 교류를 활성화했을 뿐 아니라, 실력 위주로 단일팀을 선발함으로써 양쪽 선수들이 승복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 등이 주요인이 됐다고.

동서독 단일팀이 거둔 성과는 남북한에도 자극이 된 건 사실이다. 불발로 그치긴 했지만 1957년 12월에 북한이 1960년 로마올림픽에 단일팀을 내보내자고 제안한 뒤로, 남북한은 올림픽이 열릴 때마다 거의 매번 단일팀 문제를 논의했다. 하지만 독일에 비해 성과가 적었던 것도 사실. 2000년 호주 시드니 올림픽 때처럼 개회식 공동 입장은 성사시켰어도, 단일팀 구성에는 끝내 실패했다.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는 올림픽 사상 최초로 단일팀이 구성되지만, 이것도 전체 종목이 아닌 일부 종목에 그친 것이다.

 

4.

일부 여론이 지적하듯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 협상 과정에서 못마땅한 대목도 없지는 않을 거다. 글쎄, 우리가 십여 년에 걸쳐 스포츠 외교전에 총력을 다하고 엄청난 돈을 쏟아 부어 잔칫상을 차렸는데 북한이 대회 한 달 전에야 숟가락 하나 들고 나타나선 ‘주인 행세’를 하려는 게 아니냐는 불만도 있을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개최국인데 개·폐회식에 선수단이 태극기도 들지 않는 게 마뜩찮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가 북한에 너무 경도되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생길 법하다. 벌여놓은 잔칫상에 북한을 요란하게 불러들였는데, 올림픽이 끝나고 나서 남북한 화해 분위기가 계속되지 않고 ‘원점 회귀’할 수도 있지 않느냐는 걱정을 할 수도 있겠다. 이게 보수층 국민들의 일반적인 정서일일 테고, 젊은이들은 젊은이들대로 여자 아이스하키팀 구성 과정에서 정부가 정치 논리로 지나치게 개입해 ‘공정의 원리’를 훼손했다며 눈을 흘기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국민 일부에 이런 정서가 있다는 것은 문재인 정부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가뜩이나 예민한 남북문제가 아닌가. 국민 일반의 의구심을 불식시키고, 국민의 자존심이 손상되지 않도록 너무 과속하지 말고 매사에 신중을 기할 일이다.

한편으론, 국민들도 너무 단기적인 손익계산에만 매달리지 말고, 대국적인 견지에서 봐 줄 필요가 있다. 가뜩이나 살얼음판 걷듯 아슬아슬한 한반도인데 올림픽 기간 중에 북한이 미사일이나 쏘아올리고 해서 안보 위기가 고조돼선 좋을 게 없지 않은가. 북한을 올림픽에 참가시키는 건 한반도 평화에 도움이 되면 됐지 나쁠 건 없다. 또, 이번 일이 한반도 평화를 위한 남북, 북미 협상의 디딤돌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짧은 기간에 일을 성사시키려다 보니 정부도 이런저런 실수를 범할 수도 있다는 정도로 양해해 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남북 아이스하키 팀에 북한 선수가 엔트리로 들어오면서 땀 흘린 선수들이 피해를 입는 것도 무시할 일은 결코 아니지만 작은 공정성에 골몰하다 보면, 대국을 놓칠 수도 있다는 걸 살필 필요도 있다는 생각이다.

야당과 일부 언론에도 한 마디. 제발 반대를 위한 반대는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훈수하는 정도는 몰라도 판을 깨려고 나서는 건 나라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이 일단은 성사되도록 도와야지 정부의 작은 실수, 그리고 일부 보수층의 불만을 부풀려 ‘남남 갈등’을 불러일으키려는 태도는 결코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

까놓고 말해,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때 270여 명의 북한 대표단과 응원단, 그리고 황병서, 최룡해, 김양건 같은 북한 실세들을 줄지어 초청한 것은 누구였던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는 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위하여 남한과 북한 간의 체육의 교류에 관한 정책을 수립하고 남북교류협력법에 의하여 이를 시행할 수 있다’거나 ‘남북단일팀의 구성에 관하여 북한과 협의할 수 있다, 이에 대하여 재정적·행정적 지원을 할 수 있다’ 등 ‘평창올림픽법’을 주도적으로 국회에서 통과시킨 정당은 과연 어딘가. 바로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이 아닌가. 비판할 땐 하더라도 태도에 일관성을 가져야 할 일이다.

북한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논쟁이 필요하면 벌이더라도 우리 내부적으로 그 논쟁이 지나치게 소모적인 양상으로 흘러가는 것은 피해야 하지 않겠나. 정부는 물론 국민 모두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어쨌든 주사위는 던져졌다. 대차대조표를 결산하는 건 올림픽 이후에 얼마든 할 수 있다. 함께 힘을 모아 이왕 유치한 올림픽을 잘 치르고 볼 일이다.

편집국장 강동수  reporter1@civic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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