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 갓바위에 구름 인파 몰리는 까닭은?
상태바
팔공산 갓바위에 구름 인파 몰리는 까닭은?
  • 취재기자 김동욱
  • 승인 2014.02.26 13: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소원 빌면 이뤄진다" 소문...전국서 매일 수백 명 씩

때는 수능을 며칠 앞둔 11월 초 새벽이다. 형형색색 등산복을 차려 입은 등산객들이 기대에 찬 얼굴로 어둡고 차가운 새벽 공기를 뚫고 대구 북쪽에 위치한 1193m의 팔공산을 오른다. 그 수는 족히 수백 명은 돼 보인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팔공산 봉우리 중 하나인 관봉(冠峰)이다. 관봉은 우리말로 갓을 쓴 바위란 뜻으로, 이는 관봉 정상에 자리잡은 갓바위 부처에서 유래됐다. 엄밀히 말하면, 등산객들이 찾는 곳은 관봉이 아니라 갓바위 부처다. 갓바위 부처가 자리 잡은 관봉 정상은 100여 평이 넘는 마당이 있고, 부처 앞에는 수백 명의 기도댁이 저마다의 방석 위에 앉거나 서서 쉼 없이 절도 하고 손이 닳도록 비비며 소원을 빌고 있다. 그들 머리 위에는 수백, 아니 수천 개는 될 듯한 연등이 깃대 위에 매달려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그 안에 각자 누군가의 소중한 소원이 담긴 채로...

보물 제431호로 지정되어 있는 갓바위 부처는 대구시 동구 공산동 팔공산 남쪽 봉우리 관봉 정상에 자리하고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불 좌상이다. 높이가 4m에 이르는 거대한 석불이다. 갓바위 부처의 본래 이름은 ‘관봉석조여래좌상’인데, 머리에 마치 갓 같은 판석(板石)이 올려 있어 사람들에게 ‘갓바위 부처’로 불린다. 최근에는 팔공산 봉우리인 관봉을 일컫는 갓바위가 갓바위 부처와 혼용된다. 갓바위 부처를 줄여서 갓바위로 부르기도 하는 것이다. 하긴 갓바위(관봉)을 찾는 사람은 100% 갓바위 부처를 찾는 사람들이므로, 갓바위 간다고 하면 갓바위 부처를 찾는 거나 다름없기도 하다.

신라시대부터 영남 지역의 명산(名山)이었던 팔공산은 신라 불교의 성지로 알려져 있다. 아마도 신라에 불교가 수용되면서부터는 자연스럽게 팔공산에도 신라 불교의 전통이 이어지고, 사찰과 불상, 그리고 탑들이 세워져 융성한 불교문화가 이곳에 꽃피우게 되었으리라. 실제로 팔공산에는 신라, 고려, 조선 왕조를 달리하면서 불교문화가 이어졌고, ‘선본암 3층석탑’을 비롯하여 ‘수도사 노사나불괘불탱’, ‘은해사’ 등 도처에 불교문화들이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다.

팔공산 관광객은 산을 타는 ‘진짜’ 등산객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갓바위 부처를 찾는 사람들이다. 갓바위 부처에 소원을 빌면 한 번의 소원은 꼭 이루어진다는 미신이 언제부턴지 퍼지면서 ‘전국구’ 유명세를 탔기 때문이다. 팔공산관리소의 한 직원에 따르면, 1994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생긴 이후부터 그 소문이 급격히 퍼져 기도객이 급증했다고 증언한다. 누가 어떤 효험을 봤는지 확인할 길은 없으나, 갓바위는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용한’ 부처로 그 명성을 날리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매년 250만 명의 방문객이 갓바위 부처를 찾고 있으며, 수능을 앞두고는 하루 1만 명 이상이 방문한다는 관리사무소 기록이 그 증거다.

효험을 봤다는 기도객은 갓바위를 상시 찾는다. 그 중 한 명의 기도객인 김호영(48) 씨는 일주일에 한 번씩 꼭 갓바위에 오른다. 김 씨는 “몇 년 전, 건강이 너무 안 좋을 당시 지인의 추천으로 갓바위를 알게 되었다. 반신반의하고 소원을 빌었는데 얼마 안 되서 거짓말처럼 병이 다 나았다”며 “그 이후로 마음이 불안할 때면 항상 갓바위를 찾는다”고 말했다.

김 씨는 지난 해 고3인 아들을 위해 갓바위에서 100일 기도를 했다. 김 씨는 "그 당시에 갓바위는 다른 학부모들도 많이 있어서 발 디딜 틈이 없었다"며 "아들이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다. 이번에도 소원이 이루어졌다"며 미소를 지었다.

이정심(62) 씨 역시 갓바위에 ‘필’이 꽃인 기도객이다. 이 씨는 무려 20년째 갓바위를 찾는 '베테랑‘ 기도객이다. 그녀는 "갓바위에 오면 마음이 확 트인다. 그동안 싸였던 근심도 다 날아가는 기분이다"라며 "이제 나이 들어 등산이 만만치 않지만 갓바위를 보는 순간 피로가 싹 풀린다. 오늘은 가족건강을 빌 것이다"라고 말했다.

팔공산 공원관리사무소는 음력 정월에 해당하는 요즘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기도객의 행렬이 이어진다고 한다. 공원관리소 백남철 씨는 "새해가 밝아 기도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며 "팔공산 공원관리소 직원 26명 대부분이 갓바위 등산로 관리에 신경을 쓴다"고 말했다.

백 씨는 "등산객 대부분이 갓바위를 보기 위한 사람들인데 '가족건강'과 '수능대박'을 가장 많이 빈다"며 "사람들이 불안한 마음을 해소하기 위해 많이 찾아주시는 것 같다. 나도 가끔 갓바위에 소원을 빈다"며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용하다는 갓바위의 효험은 과연 그 뿌리가 어디서부터 연유된 것일까?

갓바위 부처는 신라 선덕여왕 때 원광법사의 제자인 의현대사가 어머니의 명복을 빌기 위해 만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의현대사의 효심에 감동한 그 어머니의 은혜가 갓바위 부처에 투영되어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힘이 있는 것일까? 믿거나 말거나, 사람들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갓바위 부처에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고 믿고 있다.

▲ 팔공산 산봉우리에 있는 갓바위 부처의 정면과 측면 모습(사진: 취재기자 김동욱).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갓바위 부처는 근엄한 얼굴 표정을 갖고 있으며, 높이 4m에 이르는 거대한 체구에 유려한 옷 주름선이 아름다운 9세기 불상의 대표 걸작품으로 꼽힌다. 갓바위 부처는 오른손을 풀어서 오른쪽 무릎에 얹고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의 모습을 하고 있다. 특히 머리에 마치 갓 같은 판석(板石)이 올려져 있어 다른 부처상과 차별화된 모습을 하고 있다.

서울 서초구에 사는 윤철주(49) 씨는 가족들과 함께 처음으로 갓바위를 찾았다. 윤 씨는 “갓바위 부처를 보는 순간 말문이 막힐 정도로 존엄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그 근엄함으로부터 소원 성취의 염력이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밤 10시가 지난 시간임에도 갓바위 부처 앞에는 60여 명의 기도객들이 각자의 소원을 빌고 있다. 부처님은 수험생들의 기도를 모두 접수한 다음, 성적순으로 그 소원을 들어 준다는 개그도 있지만, 누가 뭐래도, 기도객들은 각자 삶의 무게와 번민을 내려놓으려 갓바위 부처의 효험을 믿고 팔공산을 또 오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