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그리고 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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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그리고 국어
  • 박시현 시빅뉴스 편집위원
  • 승인 2013.06.03 09: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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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자네, 역사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네. 저,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입니다.”
“자네는 더 이상 내가 가르칠 것이 없네. 하산하게..허허허..꺄르르.”

20여 년 전 필자가 수강했던 대학의 경제학원론 수업에서 실제 있었던 에피소드이다. 필자는 당시 신입생으로 아직 뭐가 뭔지를 모르고 철없던 대학 1학년 2학기생였다. 경제학원론 교수가 맨 앞에 앉아있던 신입생인 나에게 질문했던 것이다. 느닷없이 날아온 질문이라 당황했지만, 이내 내 입에서는 대학입시를 치르고 난 뒤 읽었던 단재 신채호 선생의 저서 <조선 상고사>에 기술된 한 구절을 그대로 얘기해버린 것이다.

요즘 다시 생각해 본다. 역사란 과연 무엇인가? 그 교수께서 다시 나한테 질문한다면 그때처럼 거침없이 대답할 수 있을까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최근 다시 논란이 되고 있는 일본의 침략전쟁 만행과 종군 위안부에 대한 일본 권력자들의 망언은 우리를 아연실색케 하고 있다. 나라 밖에서의 이런 역사왜곡 논란에 이어, 국내 일부 종편 TV의 5·18광주민주화운동 왜곡은 역사교육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한다. 현재 우리 역사 교육은 제고할 사항이 많다. 특히 국사가 선택과목이라는 것이 문제다. 우리가 역사 교과목을 선택한다는 논리는 마치 내가 태어나고 싶은 가정을, 또는 부모를 내가 선택할 수도 있고 선택 안할 수도 있다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말이다.

지난 2011년부터 개정된 교육과정이 새로 적용되었다. 그러면서 근현대사 교육 비중이 더욱 줄어들었다. 개정 이전 7차 교육과정 때까지만 해도 '한국 근현대사'가 '국사', '세계사'와 함께 고등학교 역사 선택과목으로 엄연히 존재했었다. 그러나 개정된 교육과정부터는 고등학교 역사 과목이 '한국사', '동아시아사', '세계사'로 나뉘어지면서 근현대사를 자세하게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배움의 기회를 접할 경우의 수마저도 학생들로부터 교육과정이 스스로 앗아간 셈이다.

이러한 가운데 역사 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한 텔레비전의 한 프로그램이 눈에 띤다. MBC 예능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은 일부 종편 TV가 왜곡한 5.18광주민주화 운동을 정확하게 짚어주었다. 특히,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가치는 신군부의 집권에 저항한 민주화 운동 과정과 모든 자료들이 중요한 역사적 자료라는 사실임을 2011년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로 설명될 수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주었던 것이다. 중고등학생들에게 영향력이 있는 아이돌들을 대상으로 한 역사 TV 특강이라 그 의미는 더하다. 적어도 역사 과목에 대해 관심이 덜했던 아이들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역사에 대한 관심도를 높일 수 있다면, 이는 이 프로그램의 큰 성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는 과거의 산물이며, 미래의 거울이기도 하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는 김구 선생의 말씀이 있다. 적어도 내일의 역사에서 주인공이 될 우리 청소년들이 역사를 모르는 민족의 구성원으로 전락하기보다는 제대로 된 역사 인식으로 현재를 다져나가고 미래를 준비할 기회가 많이 주어졌으면 한다.
 

<국어>

최근 어떤 걸 그룹 멤버 중 한 명이 라디오 방송에서 사용한 ‘민주화’라는 단어를 두고 어떤 특정한 사이트와 잘못 적용된 뜻이 회자되고 있다. 보통 일반인들의 ‘민주화’라는 단어에 대한 이해는 이렇게 풀이될 수 있을 것이다. 민주화의 사전적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는 뜻으로 ‘민주화’는 민주주의적으로 되어 가는 상태, 또는 민주주의가 되게 하는 과정으로 군사 독재 정치와 같은 비민주적인 정치 체제에 저항하여, 민주주의 확립을 달성하기 위해 벌이는 모든 활동 등으로 포괄하여 이해된다. 그러나 요즘 회자되고 있는 특정 사이트에서 '민주화'라는 단어는 '자신과 생각이 다른 소수를 집단으로 억압·폭행하거나 언어 폭력을 휘두르는 행위'란 뜻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즉, 상대의 글에 대해 동의하지 않거나 반대의 뜻을 나타내기 위해 쓰인다는 것이다.

엄연히 사전적인 뜻이 분명한 단어들이 왜 이렇게 잘못 사용되고 있는 것일까?

언어라는 것이 물론 말을 쓰는 무리들, 즉 언중의 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언중의 힘은 30여 년 전 표준어였던 ‘상치’가 지금은 ‘상추’로 바뀌어 표준어가 되었고, 일반인들이 비표준어였던 '냄비'란 말을 '남비'보다 더 많이 사용하여 현재는 '냄비'가 표준어가 됐다. 이렇듯 언중의 힘은 막강한 것이다.

요즘 단어들의 오남용 사례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인터넷 상에서 쓰고 있는 누리꾼들의 언어 오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 중에서 가장 문제시되고 있는 것이, ‘민주화’와 같이 원래 단어 뜻을 잘못 사용한다거나 무리하게 축약어들을 남발하는 경우이다. 특정 지역을 비하하는 ‘홍어’라는 단어처럼 왜곡되어 사용되는 경우도 자주 등장한다.

축약어 남발은 일대 다수의 감염에서 다수 대 다수의 감염으로 확산되고 있다. ‘버카충’이 무엇일까? ‘팸레’, ‘검스’, ‘답정너’, ‘뻐정’, ‘웃프다’ 등의 뜻을 우리가 가늠할 수 있을까? ‘버카충’은 버스 카드 충전의 줄임말이란다. ‘팸레’는 ‘패밀리 레스토랑’, ‘검스’는 ‘검은 스타킹’의 축약어이다. 필자는 ‘답정너’를 한참을 바라보았지만, 그 뜻이 떠오르지 않아 단어를 검색하여 보았다. ‘답정너’는 ‘답은 정해져 있고, 넌 말하기만 하면 된다’라는 뜻이었다. ‘뻐정’은 ‘버스 정류소’를 줄인 말이고, ‘웃프다’는 ‘웃기면서 슬프다’를 하나로 묶은 단어라고 한다.

이러한 단어들을 사용하는 세대는 주로 10~20대이다. 이들은 자신들만의 인터넷 언어를 만들고, 그 언어의 사용을 통해 동질감을 느끼며, 소속감 또한 부여받고자 하는 경향을 가진다. 앞서 열거한 단어들을 세대를 달리하는 40~60대들에게 제시한다면 그 누가 그 뜻을 짐작이라도 하겠는가? 아마 대화를 시작한 지 1분도 채 되지 않아 대화는 중단될 것이다. 이렇듯 인터넷 상의 축약어들은 제대간의 소통 단절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역사, 그리고 국어>

서로 달리 사용하는 언어와 역사 인식으로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서로 다른 역사 인식과 서로 다르게 사용하는 언어는 세대 간의 갈등, 지역 간의 갈등, 이념 간의 갈등을 부추기는 결과만을 가져오리라. 공통 분모를 가지고 역사와 언어를 함께 논할 수 있는 공간의 다양성, 기회의 다양성이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필요하리라. 공간과 기회의 다양성을 마련해 주는 몫은 기성세대가 짊어져야 한다. 그 책임의 무거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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