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택시 운전사'에 숨어 있는 신발 세 켤레의 상징성
상태바
영화 '택시 운전사'에 숨어 있는 신발 세 켤레의 상징성
  • 부산광역시 김연수
  • 승인 2017.08.02 23:12
  • 댓글 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부산광역시 김연수

영화 <택시운전사>에는 신발이 세 차례 나온다. 제각기 다른 신발이다. 영화는 일단 관객을 택시에 태우고 광주로 내달리는 탓에, 작은 소재들이 번뜩 지나가 기억에 남지 않는다. 나는 며칠이 지나서야 영화를 곱씹어봤다. 여러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너울대며 지나갔고, 기억에 진하게 번진 것은 신발 세 켤레였다. 나는 '만섭(송강호 扮)'이 따로따로 보고 만졌던 그 신발들을 떠올렸다.

영화 <택시운전사>의 한 장면(사진: 네이버 영화 캡처).

"렛츠 고, 광주!” 서울 택시기사 '만섭'은 10만 원을 준다는 말에, 독일 외신 기자 힌츠페터를 태우고 광주로 달린다. 만섭은 이번 지방행 운행으로 밀린 사글세 10만 원을 한 방에 해결할 생각이다. 전날 밤, 만섭은 "사글세는 대체 언제 줄거냐"는 집주인의 핀잔에 우물쭈물했는데, 그 모습을 딸 은정이 보고 만다. 만섭은 주인집 여자에게 열없이 고개 숙인 자신의 모습을 딸에게 들킨 것이다. 그런 만섭은 괜히 뒤축이 구겨진 딸의 신발을 보고 딸을 꾸짖는다. 공허한 그 꾸중은 딸에게 진정 아버지이고픈 만섭의 발버둥에 가깝다.

딸은 도리어 무덤덤하게 대답한다. 발이 자라서 이제 신발에 안 들어간다고. 그 순간 만섭은 자신의 지난한 밥벌이를 생각하지 않았을까. 딸을 집에 혼자 남겨둔 채 늦은 밤까지 도시를 유랑하며 돈을 벌어야하는 삶, 그럼에도 신발 하나 제대로 사주지 못하는 수입, 신발을 살 수 없다는 걸 일찍 깨달은 딸. 하루 벌어서 늦저녁에 들어오는 아버지 만섭과 단칸방 한 가운데 아무일도 하지 않고 누워있는 딸 은정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어린 딸 은정과 시원찮은 반찬에 밥을 먹으며 만섭은 먼 훗날을 생각했을지 모른다. 10년이 지나도 지금과 한 치도 다르지 않을 삶. 만섭은 그것을 자신의 운명이라 여겼을까. 일단 만섭은 광주로 달려갈 수밖에 없다.

대조적인 장면이 나중에 나온다. 광주 택시기사 '태술(유해진 扮)'의 집에서 만섭이 밥을 얻어먹는 장면이다. 태술에게는 만섭의 딸 은정만한 아들이 있다. 또 태술의 집에는 아내가 차려주는 밥상이 있다. 군대가 장악한 광주에서, 저녁이면 이불로 창문의 불빛을 가리는 태술의 집은 서울에 있는 만섭의 집보다 오히려 더 생기있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그날 밤 만섭은 힌츠페터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다. 만섭은 제 밥벌이로 지나온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중동에서 돈을 벌어 와서 아내 병치레로 돈을 다 털고 택시를 산 이야기까지. 힌츠페터는 만섭의 한국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만섭은 겨우 받아 낸 10만 원으로 딸에게 선물할 신발을 산다. 만섭은 분홍색 구두를 들어 본다. 신발상은 비싼 신발이라 하지만, 만섭은 기어코 분홍색 구두를 산다. 만섭에게 사글세를 완납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딸에게 예쁘고 비싼 구두를 선물하는 일이다. 만섭은 딸에게 “아빠가 이렇게 좋은 신발을 사줄 수 있어”라며 돈앞에 무기력했던 자신의 모습을 씻어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구두는 만섭이 스스로에게 건내는 위안이기도 하다.

신발은 가여운 구석이 있다. 여타 옷처럼 몸을 감싸는데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신발은 밑창으로 지면과 온전히 맞닿으며 마모된다. 발자취는 신발이 땅에 찍은 흔적이면서 은유적으로 내가 지나온 과거의 역정이다. 일찍이 박목월 시인이 “십 구문 반(十九文半)의 신발이 왔다”고 노래한 것처럼, 신발은 사람 사는 일을 꾸밈 없이 드러내서 저마다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만섭은 시위에 나가는 광주 대학생 '재식'을 철없는 대학생이라 여긴다. 만섭은 이미 서울에서 학생 시위대를 많이 봤다. 만섭은 도로를 막는 시위대가 운전에 방해될 뿐이었다. 만섭은 그저 돈 좀 벌어서 평범하게 살고 싶은 어른이었다. 평범함은 만섭이 살아가며 본능적으로 터득한 생존 강령이었다. 만섭은 괜히 모난 짓해봤자, 세상이 바뀌지 않을 것이란 걸 경험칙으로 알고 있었다. 만섭은 "왜 하지 말라는 짓을 해?"라고 재식에게 말한다. 만섭은 이념이 없고, 오로지 밥벌이를 위해 몸으로 세상과 부딪히다가 광주까지 왔다.

만섭은 군부대가 광주 시민을 닥치는 대로 제압하고 폭행하는 것을 본다. 게다가 자신조차 쫓기고, 두드려 맞는다. “저는 아무 것도 몰라요”라며 발버둥치는 만섭은 한순간 ‘빨갱이’가 된다. 이념, 사상 그런 게 문제가 아니다. 만섭은 재식의 벗겨진 신발을 신겨주며 눈물을 쏟는다. 만섭은 재식의 신발을 손에 쥐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 동질감을 느꼈을 것이다. ‘나같은 놈이구나’ 생각했을 것이다. 만섭은 손에 쥔 재식의 신발을 다시 신겨주며 위로한다. 만섭은 그 순간이 가슴에 도장처럼 찍혀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광주민주화운동 기록관의 사진 일부(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아마도 내가 영화를 보고 유독 신발이 마음에 깊게 남은 건 영화를 보기 며칠 전 우연히 읽은 시 한 편 때문인 것 같다. 제목은 <상가(喪家)에 모인 구두들>. 유홍준 시인이 쓴 시다.

“저녁 상가(喪家)에 구두들이 모인다. / 아무리 단정히 벗어놓아도 / 문상을 하고 나면 흐트려져 있는 신발들 / 젠장, 구두들이 구두를 짓밟는 게 삶이다 / 밟히지 않는 건 망자의 신발 뿐.”

산 사람은 별 수 없이 짓밟고 짓밟히며 난장판 위에서 산다. 만섭이 당장 딸을 보러 갈 수 있는데 다시 광주로 가는 것은 굳은 신념 때문이 아니다. 그래서 만섭은 영웅이 아니다. 만섭은 단지 자신처럼 짓밟고 짓밟히며 사는 보통 사람들을 외면할 수 없어서 핸들을 꺾는다. 만섭은 <제3한강교>를 부르면서 광주로 달려간다.

이제야 밝힌다. 사실 신발은 세 켤레만 나오지 않는다. 더 많은 신발이 광주 도심을 뒹군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4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뾰로롱 2017-08-22 14:07:40
잘 보고가요 저도 신발의 의미가 궁금해서 찾아보다가 이 기사를 보았네요

운다 2017-08-07 17:06:52
저도 택시운전사를 보면서 신발의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ㅎㅎ 좋은 글 공감하고 갑니다

하오하오 2017-08-04 00:04:50
'신발은 가여운 구석이 있다'는 단락이 마음을 뭉클하게 만드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소시민 2017-08-03 22:41:21
너무 가슴에 와닿는 글이네요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