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의를 위한 희생, 유엔군들이 잠들어 있는 재한유엔기념공원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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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를 위한 희생, 유엔군들이 잠들어 있는 재한유엔기념공원을 가다.
  • 취재기자 김성범
  • 승인 2023.12.12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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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남구 대연동에 있는 재한유엔기념공원은 인근 주민들이 산책하기 좋은 산책로다. 대연동에 살고 있는 전수빈(20, 부산시 남구) 씨는 산책하려고 가끔 유엔 기념공원을 방문하곤 한다. 전 씨는 “공원이 엄청 넓어서 산책하기 좋았어요. 의자도 많았고”라고 말했다.

최근 몇 년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등으로 세계의 평화가 위협받고 있다. 현시점 국제 평화를 위해 존재하는 유엔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대한민국에 전쟁으로 인한 전사자를 기리기 위한 유엔 기념공원이 있다. 유엔 기념공원은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유엔 기념 묘지다.

유엔 기념공원은 명칭 덕분에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졌는지 쉽게 유추할 수 있다. 김현우(23, 부산시 남구) 씨는 유엔 기념공원에 대해 자세히는 모르지만 얼추 알고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유엔공원은 한국전쟁 당시에 유엔군이 참전했잖아요. 그 참전 때 돌아가신 참전 용사분들을 기르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알고있어요”라고 말했다.

유엔기념공원은 원래 ‘재한유엔기념 묘지’라는 이름으로 출발했으나, 묘지라는 이름이 사람들에게 위화감을 느끼게 할 수 있어 조금 더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해 한국어 명칭을 재한유엔기념공원으로 변경했다.

유엔 기념공원에는 대의를 위해 생명을 바친 유엔군 장병들이 잠들어 있다. 이곳 묘지는 한국전쟁이 일어난 이듬해인 1951년 1월, 전사자 매장을 위하여 유엔군 사령부가 조성하였다.

한국전쟁 당시 195만 7733명의 파병자가 전쟁에 참여했었다. 그중 4만 896명의 전사자가 있었고, 유엔 기념공원에는 2327명의 용사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다.

유엔 기념공원은 연중무휴로 10월에서 4월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5월에서 9월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입장할 수 있다. 유엔 기념공원은 크게 4개의 구역으로 나눠진다. 상징 구역, 주 묘역, 녹지지역, 기타 시설물이 그 4개의 구역이다.

유엔기념공원을 찾은 관람객이 호주 기념비 앞에서 애도를 표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성범).
유엔기념공원을 찾은 관람객이 호주 기념비 앞에서 애도를 표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성범).

주묘역은 대부분의 유해가 안장된 곳으로, 영국, 미국 등의 7개국의 묘역이 있는 구역이다. 상징 구역은 참전 22개국과 대한민국 국기, 유엔기가 연중 게양되어 있으며, 그리스, 노르웨이 등의 기념비가 있는 곳이다. 이곳에는 상징적인 의미로 11개국 유해가 있다. 이 두 개의 구역은 야외에 전몰장병을 추모하기 위한 기념비 및 묘역, 동상이 있다.

6만6115㎡(약 2만여 평)의 녹지지역은 유엔기념공원의 묘역을 정숙하고 경건하게 유지하기 위한 완충지역으로 관리되고 있다. 이 녹지지역은 추모명비와 연못, 무명용사의 길 등 자연물과 잘 어우러져 비장하고 아름다운 인상을 준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사람들은 이곳으로 산책을 온다. 박다영(21, 부산시 수영구) 씨는 이곳 호수에서 거위나 백조 같은 생물이 있어 친환경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씨는 “조류가 살고 있다는 것은 친환경적이고 관리가 잘되고 있다는 거니까 그런 점에서 되게 좋게 봤던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유엔기념공원 녹지지역에 있는 무명용사의 길이 잘 가꾸어져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성범).
유엔기념공원 녹지지역에 있는 무명용사의 길이 잘 가꾸어져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성범).

기타 시설물에는 정문과 기념관, 추모관 등이 있다.

유엔 공원에는 6·25 전쟁 전사자의 배우자가 남편과 합장된 감동적인 사례가 있다. 6.25 전쟁의 참전 용사 고 찰스 그린 중령의 아내 올윈 그린 여사가 그녀의 100번째 생일인 2023년 9월 20일 남편 묘소에 합장됐다. 그린 중령은 6.25 전쟁에 참여해 여러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위대한 전사였다. 2019년 11월 27일에 별세한 올윈 여사는 생전 남편이 있는 유엔 기념공원에 합장해달라는 유언을 남겼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4년이 미뤄져 올해 마침내 그녀의 유언이 이루어졌다.

한국전쟁 당시 리차드 위트컴 장군은 부산에서 유엔군 군수사령관에 부임해 있었다. 당시 한국은 전쟁으로 인해 집이 불타고, 먹을 것이 없어 많은 국민이 죽어가고 있었다. 위트컴 장군은 이런 한국 국민을 위해 상부의 승인 없이 미군 창고에서 천막과 입을 것, 먹을 것을 나눠줬다. 그는 부산 영도구 피란민촌에서 한 임산부가 조산소가 없어 보리밭에 뛰어가 아기를 낳는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아 조산소를 설치했다.

이러한 그의 행동으로 인해 그는 미국 국회 청문회에 불려 갔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전쟁은 총과 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나라 국민을 위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라고 말했다. 위트컴 장군은 유언에 따라 유엔기념공원에 아내와 함께 안장돼 있다. 우리는 그의 의지를 이어가야 한다.

관람객이 주묘역 앞에서 합장자세를 취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성범).
관람객이 주묘역 앞에서 합장자세를 취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성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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