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을 밝히는 이바구길의 푸른 낮과 우암동 도시숲의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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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을 밝히는 이바구길의 푸른 낮과 우암동 도시숲의 야경
  • 취재기자 김정원
  • 승인 2023.10.17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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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피난민들의 슬픔이 담긴 초량 이바구길 168계단 전망대에서 바라본 부산의 푸른 낮 풍경
달이 뜨는 어두운 밤에 신비로운 기운이 감도는 우암동 도시숲에서 찾은 숨겨져 있던 부산의 야경
부산 동구 초량 이바구길 168계단을 올라 전망대에 서면 푸른 하늘 아래 빼곡한 집들과 바다 위 부산항대교까지 멋진 풍경이 보인다(사진: 취재 기자 김정원).
부산 동구 초량 이바구길 168계단을 올라 전망대에 서면 푸른 하늘 아래 빼곡한 집들과 바다 위 부산항대교까지 멋진 풍경이 보인다(사진: 취재 기자 김정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는 도시이자 고향, 부산의 숨겨진 구석구석 풍경이 멋진 장소들을 찾아봐야겠다라는 생각으로 출발하게 됐다.

부산에서 나고 자랐기에 웬만큼 유명한 장소들은 대부분 방문해봤다. 그래서 덜 알려진 장소를 찾다가 가게 된 곳이 부산역 근처에 있는 동구의 초량 이바구길이다. 도착하자마자 설립한지 100년이 훌쩍 넘은 초량 교회가 반겨줄 정도로 근현대 역사를 품고 있는 곳이다.

초량 교회는 1892년에 설립된 교회로 한강 이남과 부산 최초의 개신교회이다. 일제강점기엔 독립운동 배후 지원, 신사참배 거부 운동, 최초의 근대식 병원 건립 등 단순히 하나의 종교기관만이 아니라 근현대 역사에 깊숙이 뿌리 내린 교회다.

벽에 새겨진 옛날 동구의 풍경들과 인물들이 그려진 담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어느새 아찔한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피난민들의 애환이 담긴 168계단이 모습을 드러낸다.

'168계단'이란 이름이 붙은 이유는 계단의 개수가 168개이기 때문이다. 맨몸으로 오르면 금세 숨이 가빠질 정도로 경사가 가파르다. 6.25 전쟁을 피해 온 사람들이 양철통을 지고 계단 아래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오르내린 길이며, 부산항에 도착한 물자를 받기 위해 뛰어 내려가던 길이었던 이 계단은 과거 초량 사람들에게 없어서 안 될 삶의 큰 요소였다.

168계단을 보고 있으면 힘들었던 사람들의 감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나도 계단을 걸어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모노레일이 설치되어 운영해왔으나 현재는 잦은 고장으로 인해 안전검사 결과 부적합을 판정을 받아 철거 후 2024년 6월경 경사형 엘리베이터로 교체 개통 예정이다. 어쩔 수 없이 한 계단씩 밟아 올라갔다. 손잡이를 잡고 양옆의 집과 건축물들을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으며 끝까지 올라갔다.

조금전 저만치 멀어 보이던 윗동네에 마침내 오르면 아랫동네를 내려다볼 수 있다. 날씨가 좋아 파란 하늘과 함께 멀리 바라본 부산은 아름다웠다. 탁 트인 시야로 동구의 산복도로와 빼곡한 집들, 저 멀리 바다까지 넓은 풍경을 한눈에 담는다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힘들었던 계단은 경치 하나만으로 충분한 보상이 된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그곳에 잠시 서서 아름다운 부산의 낮의 모습을 기억으로 남겼다.

부산 남구 우암동 도시숲의 전망대에서 달빛과 신비한 숲의 기운, 도시의 네온사인들이 어우러져 부산의 밤이 빛나고 있다(사진: 취재 기자 김정원).
부산 남구 우암동 도시숲의 전망대에서 달빛과 신비한 숲의 기운, 도시의 네온사인들이 어우러져 부산의 밤이 빛나고 있다(사진: 취재 기자 김정원).

밝은 곳을 돌아봤으니 이번엔 부산의 숨겨진 야경 명소의 차례다. 그렇게 도착한 장소가 남구에 있는 '부산의 라라랜드'라고 불리는 우암동 도시숲이다. 이곳은 올라갈 수 있는 산책로가 많다. 그러나 현재 재개발 지역으로 주변에 폐가들이 많아 어두울 땐 위험할 수 있으므로 차를 타고 입구까지 가는 것을 추천한다. 숲의 입구는 주변의 조명들로 인해 신비한 느낌이 피어나 마치 동화 속으로 들어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켜 홀린 듯이 입장하게 만든다.

전망대까지 걸어 들어가면 감탄이 나올법한 야경을 만날 수 있다. 빛이 나는 숲과 도시의 네온사인들, 영도 바다와 부산항대교까지 어우러져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바라보던 야경보다 더 아름답다고 느껴진다. 정자 위에서 바라보면 한국적인 느낌도 받을 수 있고, 동항성당의 예수상을 배경으로 내려다보면 마치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처럼 이국적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이곳을 해가 진 뒤에 가는 이유는 보름달 포토존이 마련돼 있어서다. 저녁엔 달에 불빛이 켜져 연인들과 함께 매력적인 실루엣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다. 차례를 기다리며 사진을 찍고 숲을 거닐다 보면 숨겨진 부산의 색다른 모습을 찾아낼 수 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잊고 지내던 고향의 새로운 얼굴을 발견한 것처럼 시간이 날 때 멀리 떠나는 것이 아닌 무작정 근처를 돌아다녀 보는 건 또 다른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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