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달구는 '설거지론'... 30대 유부남 심리분석 갑론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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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달구는 '설거지론'... 30대 유부남 심리분석 갑론을박
  • 취재기자 박명훈
  • 승인 2021.10.26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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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퐁남', '퐁퐁이', '설거지남' 등 신조어... 30대 유부남들 비하
풍자, 예능 프로에도 등장... '명절증후군' 등 사회 기현상도 설명

“여보, 여보는 나 사랑하지?”

이 질문에 명쾌한 답을 듣지 못하는 이른바 ‘퐁퐁남’들. 며칠 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신조어 ‘설거지론’이 화제다.

이미 결혼한 사이인데도 "나를 사랑하냐"고 묻는 질문에 명쾌한 대답을 듣지 못하는 '퐁퐁남'들과 '설거지론'이 최근 며칠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이미 결혼한 사이인데도 "나를 사랑하냐?"고 묻는 질문에 명쾌한 대답을 듣지 못하는 '퐁퐁남'들과 '설거지론'이 최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설거지론이란?

‘설거지’라는 말은 원래 주식 관련 은어로, 일부 세력이 큰 수익 실현을 위해 작전을 성공시킨 후 잔여 물량을 없애기 위해 개미(소규모 개인 투자자)들을 꼬신 후 고가의 물량을 털어내는 행위를 빗댄 말이다.

그러나 지금 인터넷상에서 쓰이고 있는 설거지는 젊었을 때 열심히 공부만 하던 ‘너드남'(사교적이지 못하며 모범생스러운 이미지를 갖고 있는 남성을 뜻하는 신조어)들이 30대 전후 경제적 여유가 생기게 되면 동년배의 예쁘고 잘 놀던 여자들이 불투명한 미래를 걱정해 과거를 청산하고 앞서 말한 너드남들과 결혼하는 것을 '닳고 닳은 접시를 설거지하는 것'에 빗대 표현하는 것이다.

일명 '너드남'들과 예쁘고 잘나가던 여자가 결혼하는 경우를 풍자한 만화(사진: 디시인사이드 캡처).
일명 '너드남'들과 예쁘고 잘 나가던 여자가 결혼하는 경우를 풍자한 만화(사진: 디시인사이드 캡처).

이러한 경우, 커뮤니티를 이용하는 네티즌들이 결혼한 남성들을 설거지할 때 사용하는 주방 도구 ‘퐁퐁’에 빗대어 ‘퐁퐁남’, ‘퐁퐁이’, ‘설거지남’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다시 말해 ‘취집'(취업과 시집의 합성어로 취업 대신 경제활동을 포기하고 시집을 가겠다는 의미의 신조어)을 원하는 여성들이 많아지는 사회를 설명해주는 새 인터넷 유행어이다.

설거지론의 발생

사실 설거지론은 꽤 오래전부터 제기됐던 이야기다. 그러나 ‘디시인사이드’라는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설거지’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다소 저급한 댓글이 많이 달리는 해당 사이트 특유의 분위기 때문에 처음엔 ‘여성의 순결을 따지는 도태된 네티즌들의 망상’ 정도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막상 해당 용어를 접한 유부남들과 곧 결혼을 앞두고 있는 30대 남성들, 그리고 특히 ‘연애 한 번 못 해본 이공계 남성’들에게 뼈아픈 현실로 다가왔고 설거지론은 해당 커뮤니티를 넘어 다른 커뮤니티와 대학생 어플리케이션 ‘에브리타임’까지 퍼지게 됐다.

사회 기현상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열쇠?

설거지론은 단순히 결혼한 30대 유부남들을 비하하거나 취집을 목표하고 있는 여성들을 낮춰보거나 조롱하는 개념에 그치지 않는다. 인터넷이나 SNS, 그리고 방송 프로의 소재로 등장하는 ‘결혼 썰’이나 ‘연애 썰’에는 종종 이해되지 않는 현상이 적지 않다.

가령, 돈은 남편 혼자서 외벌이로 벌어오는데 경제권은 아내가 쥐고 남편에게 한 달 15만 원의 용돈이 많은 것 아니냐고 질문하거나, 분명 사랑해서 결혼 한 사이일 텐데 “우리가 결혼 해주고 애 낳아주는 건 어떻게 보상해주실 건가요?”라고 시어머니에게 따지는 여성의 경우가 그러하다.

예능 방송에서 한 여성이 시어머니에게 "우리가 애 낳아주는 건요?"라고 말하며 논란이 됐던 장면을 설거지론에 근거해 분석한 한 네티즌의 글이다(사진: 디시인사이드 캡처).

후자의 경우, 사랑하는 사람의 아기를 “낳아준다”라는 표현을 쓴 것에 대해 한 네티즌은 “사랑하지도 않은 채 돈만 보고 결혼했으니 정말로 아기를 낳아 준 것, 아기라는 것도 일종의 계약 증거에 불과한 것이다”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여성들이 불합리하다고 느끼던 ‘시월드’, ‘명절증후군’ 등도 여태까지는 “감정적, 육체적 노동으로 힘이 들 수도 있겠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부모님과 가족을 위한 일인데 그렇게 힘이 드는가?”라고 넘길 수 있었으나, 설거지론이 뜨면서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의 부모와 상종함과 더불어 그들을 위해 일까지 해온 것이었으니 스트레스를 받는 건 당연한 것이었구나, 이제 모든 퍼즐이 맞춰진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안타까운 현실

설거지론, 퐁퐁남 등의 용어를 사용하며 유부남들을 조롱하던 해당 사이트의 한 네티즌은 다른 시선에서 설거지론을 바라봤다. 설거지론에 해당되는 것 같아 기분 나쁜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내 아내(남편)는 날 진심으로 사랑한다”라고 반박하면 쉽게 조롱의 대상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데 그런 게시글은 단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

해당 사이트에서 "사랑으로 결혼했다"라고 하면 기분 나쁠 이유가 없을텐데 그런 게시글은 단 하나도 올라오지 않는다며 안타까워하는 네티즌이 쓴 글(사진: 디시인사이드 캡처).
해당 사이트에서 "나는 사랑으로 결혼했다"라고 하면 기분 나쁠 이유가 없을텐데 그런 게시글은 단 하나도 올라오지 않는다며 안타까워하는 네티즌의 글(사진: 디시인사이드 캡처).

설거지론은 단순히 유부남들을 비하하고 조롱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을 감정 없이 일종의 제테크 수단으로 삼는 사회 문제’라는 불편한 진실이 감추어져 있다가 최근 수면 위로 드러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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