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MZ세대는 ‘깻잎 논쟁’ ‘블루투스 논쟁’ 중...지나친 ‘과몰입’보다는 ‘재미’로 소비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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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MZ세대는 ‘깻잎 논쟁’ ‘블루투스 논쟁’ 중...지나친 ‘과몰입’보다는 ‘재미’로 소비해주길
  • 취재기자 김연우
  • 승인 2022.06.21 10: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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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 대화방식 ‘MBTI’ 가고 찾아온 ‘OO논쟁’
“애인이 내 친구 깻잎 떼어준다고?”,.. ‘절대 안된다’ VS ‘그 정도야’
“애인 차에 다른 이성이 블루투스 연결을 한다고?”... ‘기분 나쁘다’ VS ‘노래 듣고싶나 보지’
심리학자, "잠재적 경쟁자로 오해해 생기는 '성적과잉 지각편향' 현상"... ‘경쟁’ 만연 사회도 영향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구경은 ‘싸움 구경’ 이란 말이 있다. 주먹다짐하는 싸움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논쟁, 토론 등의 말싸움을 구경하는 것도 꽤 흥미롭다. 특히 우리나라는 웅변학원 열풍이 불었을 정도로 말하고 설득하는 것에 진심인 민족이다. 본인의 의견을 말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상대방을 설득해 주제에 대한 결론을 내려야 쾌감을 느낀다. 제 3자 입장에서는 이만큼 흥미로운 대화가 없다. 누가 이기나 지켜보다가도 함께 열을 내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KBS 예능프로그램 ‘신상출시 편스토랑’ 126회에서 MC들은 패널 이찬원에게 ‘깻잎 논쟁’에 대한 생각을 물어봤다(사진: 편스토랑 화면 캡처).
KBS 예능프로그램 ‘신상출시 편스토랑’ 126회에서 MC들은 패널 이찬원에게 ‘깻잎 논쟁’에 대한 생각을 물어봤다(사진: 편스토랑 화면 캡처).

작년까지만 해도 대화의 물꼬를 트기위해 던지는 주제는 ‘MBTI'였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최근, MZ세대 대화방식은 ‘논쟁’이다. 인터넷을 가장 뜨겁게 달궜던 논쟁은 ‘깻잎 논쟁’. 나와 애인과 나의 동성친구가 셋이 밥을 먹으러 갔다. 동성친구는 나와 애인의 사이를 아주 잘 아는 친한친구다. 마침 맛있는 깻잎 장아찌가 나오면서 사달이 났다. 내 친구가 여러 장이 붙은 깻잎 장아찌를 떼지 못하자 내 애인이 젓가락으로 깻잎을 잡아준 것이다. 애인의 친구니까 배려하는 마음으로 떼준 깻잎 한 장이 큰 화를 불러일으켰다. “그걸 네가 왜 떼어주냐.” “내 친구이기 전에 다른 여자다.”

하지만 ‘논쟁’인 만큼 애인이 화내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파도 있다. “답답하니까 떼어준 거다.” “모르는 여자도 아니고 애인 친군데 그 정도는 배려다.” 깻잎 한 장으로 이런 논쟁이 생긴 것이 이해가 안 된다는 입장이다. 대학생 안소민(22, 청주시) 씨는 내 친구 깻잎을 안 떼어주고 자기 밥만 먹는 게 더 보기 싫다고 말했다. 사실 깻잎 떼어주는 일은 정말 사소한 행위다. 안 씨는 이런 사소한 행위를 도와주지 않는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나에게 닥칠 사소한 어려움도 공감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의 연장선 때문이다. 이 논쟁은 커플들 사이에서 생각보다 중요한 화두다. 심각한 경우 이 논쟁의 결과는 ‘헤어짐’이다.

한국인은 왜 이렇게까지 ‘깻잎 논쟁’에 몰두할까?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각종 ‘경쟁’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웠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문구를 유머로 소비할 정도로 누군가를 앞지르는 게 중요했다. 조기 교육을 열심히 받은 결과, ‘지는 게 이기는 것’이란 말이 무색하게도 경쟁사회에서 살아남는 게 중요해졌다. 그래서 우리가 각종 ‘논쟁’에 과몰입하는지도 모르겠다. 깻잎을 떼어주는 이유에 초점을 맞추기보단 내 의견이 옳으니까 너도 내 말에 따라야 한다는 기조가 강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사람들이 논쟁에 열을 올리는 이유도 내 의견이 다른 사람을 설득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러니 이 논쟁으로 자꾸만 다투게 되는 것이다. 가치관 차이에 따른 행동인데 무조건 ‘내 의견이 옳아’라고 결론을 내어버리니 의견 차이를 좁힐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한편, 단순한 경쟁심리의 문제를 넘어 남녀차원에서 따져봐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 세 사람이 모두 동성 친구였다면 이런 논쟁 자체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 경성대 창의인재대학 심경옥 교수(심리학)는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동성 친구는 연애 시장에서 나의 잠재적 경쟁자가 된다고 말했다. 의식적으로 안다기보다는 무의식적이고 본능적으로 동성 친구에게 위협을 느끼는 상황으로 볼 수 있다. 깻잎을 잡아주는 행위가 애인의 입장에서는 친절을 베푼 것일 수 있지만 상대방은 내 친구에게 이성으로써 관심이 있으니까 그런 행동을 한다고 오해할 수 있다. 심리학적 용어로는 이런 현상을 성적 과잉 지각편향(sexual overperception bias)이라 한다.

‘깻잎 논쟁’이 관심을 받자 재미를 붙인 한국인은 계속해서 새로운 논쟁을 끄집어낸다. 이번 논쟁은 ‘블루투스 논쟁’. 내 애인 차에 나와 동성인 사람이 탄다고 가정해보자. 여기서 동성인 사람은 애인의 회사 사람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내 애인에게 이성이라는 점이다. 그 사람이 내 애인 차에 블루투스를 연결한다면 기분이 어떨까? 내가 아닌 다른 이성이 내 애인 차에 흔적을 남겨도 괜찮을까? 이게 ‘블루투스 논쟁’ 핵심이다. ‘깻잎 논쟁’과는 조금 다른 결이다. ‘내가 없는 자리’에서 일어난다는 점과 ‘흔적’을 남긴다는 점에서다. 이 또한 두 가지 입장이 있다. “듣고 싶은 노래가 있었나보지” 라는 입장과 “나 아닌 다른 이성의 이름으로 등록된 블루투스는 기분이 나쁘다” 라는 입장이다.

어찌 됐든, 앞으로도 한국인의 ‘논쟁’은 계속될 것이다. 제 3자 입장에서는 재밌기도 하고 분위기를 띄우는 데에는 이만한 대화 주제가 없기 때문이다. 나의 몇몇 행동 때문에 애인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수도 있고 반대로 내가 기분 나쁜 상황을 겪을 수도 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말 그대로 ‘논쟁’이지 옳고 그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논쟁거리가 될만한 행동을 했다고 해서 애인을 사랑하는 마음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가치관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의 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논쟁’은 가벼운 웃음으로 지나갈 수 있다. ‘논쟁’을 즐길 수 있는 여유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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