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 칼럼④]정치가 싫다. 하지만 그래서 투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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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 칼럼④]정치가 싫다. 하지만 그래서 투표한다
  • 경성대 커뮤니케이션학부 4학년 이창호
  • 승인 2016.04.06 14: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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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층의 적극 총선 참여를 호소하는 한 젊은 유권자의 격정 토로
▲ 경성대 커뮤니케이션 학부 4학년 이창호

며칠 전이었다. 나는 친구와 함께 차를 타고 있었다. 신호등에 걸려 차를 세운 친구는 횡단보도 가편에서 박스 차를 끌고 나와 점퍼 차림으로 선거 유세 중인 사람들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저 사람들 진짜 정치에 관심 있어서 저러는 거냐? 저거 어디서 콩고물 먹은 것 아냐?”

나는 별로 할 말이 없었다. 친구의 질문에 담긴 의미는 간단했다. 정치에 관심 가지는 게 옳긴 하지만 정말 그러는 사람이 있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정치에 순수하게 관심 가지는 것, 그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 친구도 나도 평소에 신문이나 TV 뉴스를 챙겨보는 편이다. 당쟁에 대해서, 혹은 정치 인물에 대해서 둘이 토론을 나누기도 한다. 가끔은 최소한 이마저도 안 하면서 헬조선을 외치는 바보들은 도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며 같은 나이 또래를 향해 혀를 끌끌 차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다가도 정말 희망이 안 보이는 사회 시스템에 노출될 때면 한숨을 내쉰다.

이번에 선거가 치러진다. 20대 총선이다. 전국 각 지역 선거구마다 각양각색의 후보들이 출마했다. 내가 사는 마을은 경남 양산이다. 이번 총선부터 이례적으로 양산갑, 그리고 양산을로 나뉘어져 무려 국회의원이 두 명이 나온다. 예전 같으면 생각도 못했을 일이다.

나는 일전의 친구에게 선거에 대해 물어보았다. 후보 누구누구 나왔는지 아느냐고 했다. 친구는 답했다. “어 글쎄, 누구 나왔더라?” 그는 모르고 있었다. 친구에게 물어볼 것도 없었다. 나 역시 국회의원 후보들이 뭐하는 사람들인지 잘 몰랐다.

나는 이대로 정치적 무관심에 빠지는 게 싫어 인터넷을 뒤져보았다. 후보들의 약력이라든가 정치 이력이 소개되어 있었다. 그러나 한 시간 남짓 글들을 탐독하고 나니 드는 생각은 하나였다. “이거 그냥 다 그 밥에 그 나물이구나.” 나는 당장에 컴퓨터를 끄고 침대에 누워 폰이나 매만졌다.

나만 무기력한 게 아니었다. 요 근래 인터넷에선 선거 홍보 때문에 몇몇 논란이 일었다. 한 후보자는 총을 들고 포스터에 등장했다. 그녀의 포스터엔 “박근혜 잡을 저격수, XXX지 말입니다”라고 나와 있었다. 그녀를 향한 누리꾼들의 댓글 내용은 간단했다. “너도 그냥 그 밥에 그 나물이구나.”

나를 포함한 젊은 세대들은 모두 정치에 무관심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리는 정치라는 것에 이미 무기력해졌다. 연일 언론에 소개되는 정치인들의 모습은 하나 같이 부패와 타락, 혹은 의미 없는 정쟁이나 당쟁을 펼치며 뒷전에선 자기들끼리 이익을 조율하는 그런 모사꾼들처럼 보인다.

정치인들을 보고 있으면, 드는 생각은 하나다. 결국 누구를 뽑으나 정치는 타락하는데, 뭐 하러 힘들게 투표에 열의를 보여야 되느냐는 거다. 그들은 이러나저러나 그저 ‘그 밥에 그 나물’인데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옳지 않다. 하루는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정치가 싫다고 해서 권리를 포기하면 기득권은 더 큰 악이 돼서 우릴 덮친다. 우리 국민이 알아야 할 사실이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포기가 문화가 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아버지 말의 골자는 간단했다. 다 같이 포기하면 그냥 다 같이 죽는다는 거다. 살기 위해선 우리 손으로 직접 무언가를 해야 한다. 역사는 직접 움직이는 자들에 의해 바뀌어왔다.

1875년 프랑스에서는 계속 왕정을 행하느냐, 아니면 왕이 없는 공화국 체제로 돌아서느냐를 두고 의회에서 선거를 치렀다. 그 결과, 찬성 353에 반대 352로, ‘단 한 표 차이’로 인해 프랑스는 공화국이 되었다. 뿐만 아니다. 1649년엔 영국의 왕 찰스 1세가 법원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는데, 이 또한 한 표 차이였다. 왕이 합법적인 투표를 통해 유죄 판결을 받고 목이 달아난 건 이것이 처음이었으며, 그것은 또한 세계 최초의 시민혁명이 남긴 결과라는 놀라운 역사적 사례로 남아 있다. 투표 용지 한 장이면, 왕의 목도 날아갈 수 있는 것이다.

“투표는 총알보다도 강한 것이다(The ballot is stronger than the bullet).” 에이브러햄 링컨이 한 말이다. 이 말은 투표(ballot)와 총알(bullet)의 음을 빗댄 것이다. 투표 용지 한 장은 단 한 방의 총알과 유사하지만, 나중에 어마어마한 핵폭탄이 될 수도 있음을 많은 역사적 사례들이 이렇게 보여주고 있다.  

나는 정치가 싫다.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나를 포함한 청년 세대 대부분은 정치를 싫어한다. 언론에 비춰지는 정치인들의 모습은 마치 인간의 추악함을 모두 대변하는 듯 혐오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기 때문에 정치에 관심을 가진다. 그리고 매 선거마다 후보들의 약력을 살피며, 비록 그것이 ‘그 밥에 그 나물’에다가 ‘그 고추장’을 갖다 찍어 바르는 행위일지라도 나는 그것을 행한다. 왜냐면,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썩어가는 병을 고치고 싶으면 그것을 직접 내 손으로 도려내야 한다. 불편해하고 외면한다 해서 세균이 멈추진 않는다. 오히려 고름은 더 깊고 진해져 내 뼛속 골수까지 모두 파먹어버릴 것이다. 그때 가서 아차하면 늦는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는 바로 여기, 지금 우리 손에 달려 있다.

나는 이번 총선에서도 무조건 투표할 것이다. 그리고 나 외의 다른 젊은 청년들도 투표로 그들의 마지막 의지를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무기력하게 지낸다고 해서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맘에 안 드는 게 있으면, 우리가 직접 나서야 된다. 그래야 나중에 우리 자식들한테도 당당하게 할 말이 있다. 그래도 네 아빠 엄마가 세상 헛살진 않았다고. 하고픈 말이 있으면 직접 투표 용지로 보여주어라. 그러지 않으면 우리의 외면과 무관심이 부메랑이 되어 우리 뒷목을 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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