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스트레스 안 받고 싶어" ...‘명절도피족’ 급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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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스트레스 안 받고 싶어" ...‘명절도피족’ 급증
  • 취재기자 최영민
  • 승인 2016.02.06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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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부담, 친지 잔소리 피해 해외여행, 단기 알바 등으로 설 연휴 보내

직장인 송윤주(30, 서울시 송파구 잠실동) 씨는 지난 5일 4박 5일 일정으로 해외여행을 떠났다. 이번 설 명절에도 어김없이 들을 결혼에 대한 잔소리 폭격을 피하기 위해 피난처를 해외로 잡은 것이다. 송 씨는 “친척 또래 언니들은 다 결혼했다”며 “명절 때마다 친척 어른들로부터 결혼에 대한 잔소리를 듣는 것도 이젠 지겹다”고 말했다.

민족 최대 명절인 설날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송 씨와 같은 처지의 젊은이들은 명절 연휴가 마냥 반갑지 않다. 최근 이런 잔소리, 경제적인 부담 등에서 오는 명절 스트레스 때문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명절을 피하려는 사람들, 이른바 ‘명절 도피족’들이 늘고 있다.

▲ 직장인들의 SNS ‘팀블라인드’에서 설문 조사한 명절 스트레스의 주원인(사진: 팀블라인드 공식 페이스북)

1. 직장 및 아르바이트 도피

공무원을 준비 중인 최영운(29, 부산시 서구 암남동) 씨는 이번 연휴에 일할 택배 단기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연휴라서 돈을 더 받을 수 있는 이유도 있지만,  사실 최 씨가 일을 구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그는 "명절 때 조부모님이 친척 어른들에게 내 취직에 대해 하소연하시는 게 너무 싫어 차라리 일하는 게 훨씬 편하다”고 말했다.

연휴 기간에 일할 단기 아르바이트를 찾는 사람은 최 씨뿐만이 아니다. 최근 구인·구직 사이트 ‘알바천국’이 1,26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 연휴 알바계획’ 설문조사 결과, 조사대상자의 50.4%가 설 연휴에 ‘알바를 계획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알바천국은 아예 설 연휴에 일하기 좋은 알바 자리를 소개해 주는 ‘설날 단기알바 채용관’까지 오픈하여 일자리들을 광고하고 있다.

▲ 알바천국에서 오픈한 설 연휴 단기알바 채용관(사진: 알바천국 홈페이지)

연휴 기간에 대형마트 진열 단기 알바를 지원한 김창수(21, 부산시 중구 보수동) 씨는 “사촌들이 다들 좋은 대학에 다니고 있어 매번 명절 때마다 비교당하는 기분이다”며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게 아쉽지만, 이번 설에는 큰집에 가기 싫다”고 말했다.

단기알바 말고도 직장에서 당직근무를 지원하는 방법도 인기다. 직장 일이 바쁘다는 핑계는 명분이 좋으므로 명절을 피하려는 방법으로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직장인 박모(35) 씨는 곧 다가올 설 명절에 경제적 부담을 피하고자 당직근무를 지원했다. 박 씨는 경제적 상황이 안 좋아 명절 때마다 부모님께 드리는 용돈도 부담스러운데 6명이나 되는 조카들 세뱃돈마저 챙겨줘야 한다. 그는 “부모님과 할머니 용돈에다 조카들 세뱃돈까지 챙겨주는 건 너무 부담이라 차라리 일하는 게 속 편하다”고 말했다. 한 중소기업에서 부장직을 맡고 있는 최모(56) 씨는 “일반 휴일에는 사원들이 당직근무를 피하려 애를 쓰지만, 명절 때는 이상하리만치 당직근무를 지원하는 사원들이 많다”고 말했다.

2. 해외여행 도피

‘해외도피’는 흔히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쓰는 방법이라고 인식되지만, 명절 연휴에는 얘기가 다르다. 2년째 공무원을 준비 중인 김규호(28, 울산시 중구 복산동) 씨는 이번 설 연휴에 필리핀으로 떠나는 비행기 표를 끊었다. 아직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김 씨는 매번 명절 때마다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기분이다. 그는 “이번 연휴에는 홀로 해외여행을 떠나 뜻깊은 휴일을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교통연구원에선 이번 설 연휴 동안 하루 평균 해외 출국자가 10만 5,727명에 달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이는 지난해보다 18%를 웃도는 수치다. 5일 동안의 긴 연휴가 흔치 않아 여행객 수가 늘어났기도 했지만, 명절 스트레스를 피하고자 김 씨와 같이 해외여행을 떠나는 ‘해외 도피족’도 적지 않다. 직장인 양지연(27, 서울시 서대문구 영천동) 씨는 운전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 설 연휴에 고향에 가는 대신 베트남행을 택했다. 양 씨는 “명절 때마다 온종일 차 안에 있는 게 너무 싫다”며 “엄마에게 혼나긴 했지만 이미 비행기 표를 끊어서 말리진 못하셨다”고 말했다.

3. 도서관, 학원 도피

올해로 고3이 되는 이모(19) 씨는 명절에 독서실에만 있겠다고 부모님에게 선언했다. 이 씨는 작은 아버지가 고등학교 교사인데 명절 때마다 모의고사 점수를 보고하고 잔소리를 들어야 한다. 이 씨는 친구와 피시방에 갈 계획이다. 이 씨는 “세뱃돈을 못 받는 게 아쉽긴 하지만 무서워서 명절에 큰집에 가기 싫다”고 말했다. 

취업과 공부에 대한 잔소리는 수험생과 취업준비생에게 단연 공포의 대상이다. 취업포털 ‘잡코리아’에서 명절 스트레스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 취업준비생 10명 중 6명이 명절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응답했다. 두둑한 세뱃돈까지 마다하고 명절을 피하는 수험생과 취업준비생들이 늘고 있다. 그들의 피난처는 도서관, 학원 등이다. 작년 대학을 졸업한 김영민(28, 부산시 중구 남포동) 씨는 “부모님도 이번 설은 도서관에서 공부나 하라고 했다”며 “나도 명절에 친척 어른들에게 취업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돼서 좋다”고 말했다.

수험생과 취업준비생들에게 아예 명절 피난처를 제공해주는 학원도 있다. 국내 유명 외국어 학원인 ‘파고다 아카데미’는 명절 스트레스를 피하려는 학생들을 위해 연휴 간 이용할 수 있는 자습 공간을 마련했다. 행사 이름도 ‘명절 대피소’다. 파고다 학원은 이 행사 기간에 대형 강의실과 자습실 등을 학생들에게 무료로 개방한다.

▲ 파고다 학원에서 시행하는 ‘명절대피소’ 행사(사진: 파고다 학원 사이트)

파고다 학원 관계자는 현재 많은 학생들이 명절대피소 이용을 신청한 상태라며 “명절을 즐길 여유가 없거나 명절을 피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많이 이용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파고다 아카데미는 설 연휴 기간에 전국 8개 지점에 명절대피소를 마련한다. 명절대피소는 강남, 종로, 신촌, 부산서면, 부산대연, 부산대 등 전국 8개 지역의 파고다어학원에서 개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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