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사람은 왔다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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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사람은 왔다가야지
  • 칼럼니스트 정영선
  • 승인 2017.01.27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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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정영선
소설가 정영선

며칠 전 모 신문사에서 부산작가회의 부회장으로서 설 연휴에 읽을 책 두 권을 추천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평소 독서량이 많지도 않고, 내가 읽은 책이란 게 요리로 치자면 겨우 '맛국물'을 내서 끓인 된장찌개 수준이라서 별 특별할 게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천할 만한 책이 없다고 하자 시간도 촉박하고 부산작가회의 얼굴도 있는데 곤란하다고 해서 겨우 두 권을 추천했다. 

그 중 한 권이 <나는 기억한다(조 브레이드너 지음, 모멘토)>이다. 제목만 보면 아우슈비츠와 같은 국가폭력에 대한 고발을 내용으로 하는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수백 가지 일상의 기억이 아무 맥락도 없이 나열되어 있는 책이다. 하나를 소개하자면, "나는 기억한다, 단 한 번 어머니가 우는 것을 보았던 때를. 나는 살구파이를 먹고 있었다." 이 구절을 보다 책을 놓고 멍하니 앉아 있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은 기억에 기억을 대입시켜 재생시키고 그 기억을 다시 확장시키는 묘한 매력이 있다. 그래도 설 연휴가 아니라면 굳이 추천하고 싶지 않았는데, 설이 되면 평소에 하지 않던 기억들이 떠오르는 동시에 흐릿해진 기억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많이 들기 때문이었다.

설에는 대부분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누군가를 만나러 간다. 중학교 다닐 때까지는 객지에 나간 오빠를 기다렸다. 직장에 다니면서 공부를 하던 오빠는 아버지의 담배와 엄마의 내복, 동생들의 양말과 책 한 권씩을 사왔다. 그 정도도 오빠에게 얼마나 큰 부담이었는지를 알게 된 건 대학 와서 알았지만, 어릴 때의 난 기대했던 것보다 선물이 작아 한두 시간 입을 빼물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부터는 객지 생활을 한 탓으로 만나러 가는 입장이 되었다. 오빠를 보고 배운 대로 아버지의 담배 한 봉을 사들고 시외버스 통로에 접이식 의자를 펼치고 앉아 꾸벅꾸벅 졸면서 귀향길에 올랐다. 취직을 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선물은 다양해지고 얇지만 용돈 봉투도 챙겨들었지만 귀향길은 늘 북새통이었다. 부모님에게 더 각별한 마음이 있었던 것도 가서 특별히 할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집에 가면 보통 잠만 실컷 자고 오는 편이었는데도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진 그 일을 반복했던 것 같다. 올 사람은 왔다가야지, 어릴 때 들었던 그 한 마디 때문이었다.

어릴 때는 설 준비가 굉장했다. 어머니는 읍내장이 설 때마다 분주히 장을 봐오고 집을 청소하고 옷을 손질했다. 마당의 빨랫줄엔 생선이 줄을 지어 널려있고 방앗간에 가서 쌀을 찧고. 호박떡 쑥떡 인절미 가래떡, 어떻게 다 먹었을까 싶을 정도로 많은 떡을 하고 생선을 쪘다. 술도 담고 식혜도 담고, 강정도 만들고. 닭도 잡고 꿩도 잡고. 설날이 되면 오빠들은 집밖으로 나돌게 하면서도 나는 집밖으로 못 나가게 했다. 여자가 정초부터 나다니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집에 손님이 오면 발도 디딜 수 없을 정도로 차가웠던 안청에 가서 술상을 차리는 건 내 몫이었다. 몇 집을 거쳐 오는 손님의 경우 당연히 배가 부를 텐데도 아버지는 늘 상을 내오게 했다. 나는 아버지가 상 내가라고 할 때마다 젓가락도 안 대는 술상을 왜 차리게 하냐고 속으로 투덜대면서 설이 일 년에 한 번 뿐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설날처럼 특별한 날도 해는 지고 밤은 찾아왔다. 손님이 끊기면 그제야 이불 속에서 다리를 뻗고 라디오를 들었다. 라디오 소리 사이사이로 아버지와 어머니의 말소리가 들렸다. 누가 왔다가고 누가 오지 않았는지, 오지 않은 사람의 안부를 서로 물으며 밤이 깊도록 하는 이야기가 바람벽을 타고 옆방까지 들렸다. 올 사람은 왔다 가야지. 뭐 한다고 설에도 안 와. 아버진 그 말을 하고 베개를 고쳐 베었다. 오랫동안 나의 귀향을 이끈 건 아버지의 그 말이었을 것이다.

이제 다시 설이 되면 차례를 지내러오는 사촌들을 기다리고 객지로 나간 아이들을 기다린다. 대학을 졸업한 아이들은 설이라고 꼭 오겠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때 봐서, 라고 말끝을 흐린다. 복잡하고 차 막히고 무엇보다 취직도 못했는데 친척들 얼굴 보기가 편하지 않으리라는 건 알지만 힘이 쑥 빠진다. 그래서 이번 설엔 한 달 전쯤부터 먹고 싶은 음식을 신청 받았다. 만두와 반건조 오징어라고 했다. 반건조 오징어는 대변에 가서 사면 될 일이지만 만두는 묵은 김치로 빚어야 한다. 나 혼자 할 수 없는 일이라 시어머니께 도움을 청했다. 시어머니도 손녀가 먹고 싶어 한다는 말에 부추와 두부, 돼지고기를 사러 당장 시장에 가실 듯했다. 나는 아직 이르다고 말리고 나서 아이에게 그 말을 전했다. 아이는 투덜대면서 차표를 예약하고 나는 뭔가 더 감동적인 음식을 준비하려고 여기저기 검색을 했다. 

그렇게 설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친정 마당에 널려있던 생선이며 어머니가 만들던 떡과 경건하면서도 어수선했던 설날 풍경을 떠올렸다. 막상 설날이 되면 심심하고 지루하기까지 했지만 가족과 친지를 만나는 설렘과 반가움은 변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일 년에 한 번 하는 세배가 없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허전할까. 그래서 복잡하고 차 막히고 피곤해도 올 사람은 왔다가야 하는 게 설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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