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 옆 공터 확보 의무, 유명무실한 사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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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 옆 공터 확보 의무, 유명무실한 사례 많다
  • 취재기자 김영훈
  • 승인 2015.11.30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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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공지(公開空地) 제도, 건축주 무성의로 제 역할 못해...전문가, "제도보완 필요"

공개공지(公開空地)란 말 그대로 열려있는 공간이다. 고층빌딩이 숲처럼 빽빽하게 들어선 도시에서 시민들이 쾌적한 열린 공간에서 휴식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든 것이 바로 공개공지 제도다. 그러나 공개공지를 사유화하거나 허술하게 만들어 놓고 혜택만 챙겨가는 건물들이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공개공지 제도는 미국 뉴욕 시에 1958년 세워진 시그램 빌딩에서 비롯됐다. 시그램 빌딩을 설계한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는 건물을 지을 공터의 반에만 건물을 세우고 나머지 공터의 반은 시민들을 위한 자연친화적 공간으로 내놓았다. 당시 건축가들은 집 지을 최대 공간을 확보해 건축 후 이윤을 최대로 남기기 위해 노력했다. 때문에 반 데어 로에의 건축을 보고 다른 건축가들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시그램 빌딩의 공개공지는 시민들에게 호평을 받았고, 이후 공개공지라는 이름으로 제도화되면서 시그램 빌딩은 공개공지의 시초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공개공지는 1991년 개정 건축법 제61조에 처음으로 관련 조항이 신설됐다. 공개공지 제도는 면적 합계가 5,000㎡ 이상인 문화 및 집회시설, 종교시설, 판매시설, 운수시설, 업무시설, 숙박시설, 그밖에 여러 사람이 이용하는 시설들은 건축조례로 정하는 건축물 대지에 공개공지를 확보해야 하는 제도다. 공개공지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표지판을 1개 이상 설치해야 한다. 그리고 공개공지에는 물건을 쌓아놓거나 출입을 막는 시설을 하면 안 된다. 또한 시민들이 편하게 쉴 수 있도록 긴 의자 또는 파고라를 설치해야 한다.

▲ 부산 대연동 한 빌딩 앞의 쾌적한 공개공지(사진: 취재기자 김영훈).

개인의 이익보다 공공의 이익을 위한 이 제도는 건물주에게 강제적인 부담을 주는 제도가 아니다. 공개공지를 만들었을 때 혜택이 있기 때문이다. 건축주가 공개공지를 만들면, 건축법 제27조의 2, 제4항에 따른 건축기준을 완화해준다. 즉, 원래 규정보다 어느 정도 높게 건물을 지을 수 있게 해준다는 뜻이다.

그러나 공개공지를 영업장으로 사용하거나 주차장으로 사용하는 곳도 있고, 출입구를 폐쇄하거나 무단 설치물을 두어 시민들이 이용하는 것을 제한하는 경우가 많다.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규모의 공개공지를 마련하거나, 좁은 공간에 단순하게 의자만 놓아두고 공개공지라고 하는 곳도 있다. 심지어 공개공지를 알리는 표지판 앞에 가판대를 두어 표지판을 가리는 경우도 있다.

이런 식의 공개공지 이용 때문에 시민들은 주변의 공개공지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지저분하거나 단순 흡연 장소가 되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시민들의 쾌적한 휴식공간을 마련하고자 만들어진 제도가 오히려 건물주들의 이익을 챙겨주는 제도가 되어버린 것이다.

▲ 부산 대연역 앞 빌딩의 공개공지, 가판대 뒤에 가려진 공개공지 표지판과 허술한 휴식 공간(사진: 취재기자 김영훈).

그렇다면 공개공지 규정을 위반한 경우 처벌은 어떻게 될까? 공개공지법을 위반한 건축물은 자치구별로 이행 강제금을 부과하도록 되어 있지만, 건축법 시행령의 이행 강제금 산정기준에 공개공지 위법사항에 대해 따로 명시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처리과정도 복잡해 이행 강제금을 최종적으로 부과하는데 약 3개월 정도 걸린다. 현행 규정으로는 이행 강제금에 대한 기준만 적용 가능해 이에 대한 대응 수단과 근거가 부족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울산의 행복도시 디자이너 류길현(44) 씨는 “바른 공개공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적합한 공개공지 질적 관리 매뉴얼과 정확한 점검항 목표를 만들어야 하며, 위반 시 적절한 대응 수단을 법제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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