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 4000만 원 對 1000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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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 4000만 원 對 1000만 원
  • 칼럼니스트 정장수
  • 승인 2019.04.11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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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니스트 정장수
칼럼니스트 정장수

1억 4000만 원 대 1000만 원. 국회의원과 시인의 연봉입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2017년 기준 618개 직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에서 돈을 가장 많이 버는 직업은 국회의원으로 연봉이 1억 4000만 원입니다. 여덟 명의 보좌진과 의원회관 사무실과 온갖 특혜와 특권은 별개입니다. 반면에 시인은 연봉이 1000만 원으로 돈을 가장 못 버는 직업입니다. 우리나라 국민이 가장 신뢰하지 않는 직업 부동의 1위인 국회의원이 돈을 가장 많이 번다는 것도 아이러니하지만, 연봉을 비교하는 직업군에 ‘시인’이 들어가 있다는 사실은 더욱 아이러니합니다.

시인이 직업일까? 직업이 될 수 있을까?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보면 직업은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계속적 소득활동’이라고 합니다. 일이라고 다 직업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죠. 첫째, 최소한의 먹고 살만큼의 돈벌이는 돼야 합니다. 최저생계비 정도는 벌어야 직업이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일정한 지속성을 가져야 합니다. 일회성 날일을 직업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셋째, 사회적 규범이나 도덕에 부합하는 일이어야 합니다. 도둑이나 청부업자가 직업이 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적어도 이런 몇 가지 요건을 충족할 때 비로소 직업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돌아가 시인이 직업이 될 수 있는가의 얘기를 계속해 보겠습니다. 지속성이나 도덕성의 측면에서야 시인만큼 분명한 직업도 없을 테니 문제는 소득의 수준입니다.

올해 보건복지부가 정한 1인 가구 최저생계비는 170만 원입니다. 60%만 인정하는 법원의 기준으로 따져도 월 100만 원이 넘습니다. 결국 시인의 연봉 1000만 원은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셈이니 소득의 기준으로 보자면 시인을 직업이라고 하기는 무리가 있습니다.

이제 두 가지의 문제가 남습니다. 시인의 평균 연봉은 1000만 원이지만 수천만 원을 버는 시인도 있고 심지어 억대의 돈을 버는 시인도 있습니다. 똑 같이 시를 쓰지만 소득의 수준에 따라 시인이 되기도 하고 단지 시를 쓰는 일을 하는 사람에 그칠 수도 있다는 말이 되어버립니다.

두 번째는 생활의 기본적 수요에 있습니다. 소득이 최저생계비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스스로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소득 수준에 맞게 줄이면 적어도 헌법재판소가 결정한 직업의 요건은 충족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직업으로서의 시인이라는 타이틀을 얻기 위해서는 돈을 많이 벌거나 가난에 내 몸을 맞추거나 둘 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가난과 술과 결핵이 한국의 근대시를 키워온 이래 줄곧 가난은 시인의 숙명이었습니다. 생계를 위해 양계(養鷄)에 뛰어들었던 시인 김수영이 사료 값을 벌기 위해 번역 일에 매달리며 했던 말은 “시와는 반역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고백이었습니다.

그래도 7, 80년대까지만 해도 서점에 가면 서가의 한쪽 면에 시집이 당당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눈에 아주 잘 띄는 목 좋은 자리에 말입니다. '창작과비평', '문학과지성'의 시선집 앞에는 언제나 시의 세례를 기다리는 독자들이 있었지만 먼 옛날의 영광이 되어 버린 지 이미 오래입니다. 인문학의 몰락이라는 경고등이 켜진 이후 동네 주민센터에도 인문학 강좌가 개설되는 요즘이지만 시의 광장은 여전히 적막합니다. 소설가도, 화가도, 음악가도, 평론가도 다 집이 있는데 시인은 집이 없다고 하던 어느 시인의 넋두리가 현실이 되어버렸습니다.

‘무항산(無恒産)이면 무항심(無恒心)’이라 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바른 마음을 견지하기 어렵다 했는데, 이 땅의 가난한 시인들에게는 참으로 혹독한 시절입니다. 내년에도 연봉을 비교하는 직업군에 시인이 남아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꽃 진 자리에 잎 돋아 흰색과 초록이 경계를 허무는 봄의 절정에 동네서점에라도 가셔서 시집 한 권 사보시길 권합니다. 이왕이면 알려지지 않은 무명작가의 시집이나 난생 처음 ‘시인의 집’을 마련한 신인의 첫 시집이라면 더욱 좋겠습니다. 그보다 환한 등불이 이 세상 어디에 있겠습니까.

“방 두 칸과 마루 한 칸과 말쑥한 부엌과 애처로운 처를 거느리고 외양만이라도 남과 같이 살아간다는 것이 이다지도 쑥스러울 수가 있을까” 했던 김수영의 고백처럼 힘겹게 시인이라는 직업을 감당하고 있는 이들에게 봄소식 한 번 전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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