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대한민국의 추석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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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대한민국의 추석나기
  • 편집위원 박시현
  • 승인 2015.09.21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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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 다가온다. 추석날 밤을 비추는 둥그런 보름달은 수천 수만 년 동안 변함이 없다. 온누리를 저리도 오래, 어김없이 제때에, 같은 장소에서 비추고 있으니, 달은 참 위대하고 인자하다.

하지만, 대한민국 추석을 보내는 국민들의 마음과 행동은 변화무쌍하다. 추석 차례는 송편 차례라 해서 밥대신 송편을 차례상에 올린다. 그러나 온 가족이 추석 하루 이틀 전에 한 집에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며 오손도손 송편을 빚는 풍습은 요즘 보기 드물다. 다들 떡집에서 제조한 송편으로 차례를 지내기 때문이다. 그해 수확한 햅쌀로 송편을 빚어 조상에게 고마움을 고한다는 추석의 의미도 더불어 퇴색했다. 떡집에서 송편을 햅쌀로 지었는지 묵은 쌀로 지었는지 확인이 불가능하다. 사람들은 송편 재료가 미국 쌀이 아니면 다행이라고 여긴다.

떡집에서 사온 송편에서는 솔 냄새가 나지 않는다. 송편의 어원이 소나무 송(松)자에 떡 병(餠)자를 쓴 송병인 이유는 송편이 솔잎을 깔고 그 위에 떡을 얹어 쪄냈기 때문이다. 송편은 그 모양이 반달처럼 예뻐서 정겹지만, 자연의 그윽한 냄새인 솔향기가 나서 더욱 한국적이었다. 요즘 떡집 송편에서는 그런 솔향기가 사라졌다.

어디 변한 것이 송편의 솔 냄새뿐일까. 1990년대부터 명절 때 귀향보다는 여행을 떠나는 젊은이들이 나타났다. 도시의 대학생, 취업준비생, 고시낭인 들은 출세와 성공이라는 일생의 엄명을 다그치는 집안 어른들의 잔소리를 피해 서울 노량진 고시촌과 대학가 원룸촌에서 명절에도 귀향을 건너뛰기 시작했다. 장가 ‘안 간’ 샐러리맨들과 시집 ‘안 간’ 노처녀 커리어 우먼들은 대한민국 저출산의 원흉으로 찍힐 게 뻔해서 명절 때 고향보다는 인천국제공항의 출국장에서 긴 줄을 서기 시작했다. 명절 때마다 반복되는 기나긴 차량행렬과 교통체증은 시골 부모가 도시 자식을 찾는 역귀경 현상을 낳기도 했다.

2000년대부터는 그나마 고향에 모인 가족들을 긴장시키는 신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니, 그게 바로 명절증후군이란 거였다. 신세대 며느리들은 “추석은 며느리에게만 스트레스를 쌓이게 하는 명절”이라고 푸념하기 시작했다. 명절 직후에 이혼신청이 증가한다는 믿지 못할 뉴스도 나타났다. 당시 어떤 신문 기사에서는 “시집 나들이엔 소금 맞은 배추 같던 아내가 친정 나들이 할 때는 이슬 맞은 풀처럼 싱싱해졌다”는 한 남편의 넋두리가 인용됐다. 명절용 깁스가 출시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이것은 명절 직전에 피치 못할 부상을 당한 것처럼 감촉같이 연출하는 것을 도와주는 ‘신상’ 깁스였다. 가격은 1-2만 원 정도고, 온라인 쇼핑몰에 들어가면, 누구나 그 구매 열기를 쉽게 느낄 수 있다.

세상 며느리들이 다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세상 모든 집안 어른들이 명절을 쇠면서 남자들은 놀게 하고 여자들만 죽도록 일하는 것을 방치하지는 않을 것이다. 추석을 맞이해서 가족이 모여 벌초, 성묘, 차례와 같은 명절 행사를 같이 하는 전통은 아직도 추석의 중심에 가족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추석 1-2주 전부터 주말마다 전국의 고속도로가 여전히 막힌다.

다만, 가족이 모여서 가족의 뿌리인 조상을 기리는 추석의 중심은 지키되 그 구체적인 행태는 조금씩 세태에 맞게 조절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관혼상제의 모범이 되는 <주자가례(朱子家禮)>는 우리 것이 아니라 중국 것이다. 중국 송대에 만들어져 고려말에 우리나라에 전해졌다는 이 책은 이미 중국에서도 그 존재를 일반인들은 잘 알지도 못하고 그 내용대로 지키지도 않는다고 한다. 우리가 말하는 추석의 전통이 중국적일 필요는 없다.

그밖에도, 추석은 가족이 함께 기쁨을 나누는 가족 축제가 되어야지, 추석을 어느 한 사람, 혹은 여자들에게 짐을 지우는 명절이 되도록 방치하면 곤란하다. 가족의 위계질서에 따라서 웃어른이 아랫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생겨도 안 된다. 격의 없는 사이가 오히려 마음의 부담을 주는 언행을 함부로 주고받는 이유가 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이청준의 <축제>라는 소설은 집안 어른이 죽고 장례를 치르는 과정에서 얽히고설킨 가족들의 애증과 화해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장례식을 인간관계의 축제로 상징화한 이청준 선생의 지혜처럼, 추석이 가족의 고통과 갈등의 각축전이 아니라 가족 간 사랑을 나누는 장이 되어야 한다.

한세대 상담대학원 최광현 교수는 <가족의 발견>이라는 책에서 우리 마음에 생긴 가장 깊은 상처는 가족과 연결되어 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또 부모들은 자녀들의 성공과 독립을 동시에 바라는 이중 잣대를 지녔기 때문에, 자식들의 선택을 두고, 자녀들과 갈등에 빠진다고 진단했다. 최 교수는 가족 중 누구라도 먼저 가족 간 갈등을 풀 마중물이 되어 용서의 손을 내밀어 보자고 제안하고 있다. 좋은 말이다. 그러나 더 좋은 것은 평소 대화로 갈등의 폭을 줄이고 이해의 깊이를 더하는 것이다.

이번 추석에는 모든 가족들이 모여 각자의 짐을 나눠지는 ‘힐링의 축제’를 즐겼으면 좋겠다. 그것도 휘영청 밝은 보름달 아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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