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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증후군과 프랑스식 식사/ 소설가 정인
소설가 정인

지난 여름, 남프랑스 여행 중에 프랑스인 가정에 식사 초대를 받았다. 2년 전, 우리 집에 와서 며칠 숙식한 것에 대한 보답의 의미였다. 수영복을 준비해야 한다는 뜻밖의 조건이 붙어 있었다. 이유는 여행 끝 무렵이니 피곤할 테고, 그 피로를 풀기 위해선 사우나가 최고인데, 다행히 집에 자쿠지(뜨거운 욕조)가 있으니 그곳에서 와인파티를 한 후에 식사를 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겨우 두 번째 보는 사람들과 수영복 차림으로 좁은 자쿠지 안에 함께 있다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키지 않았다.

설득하기는 쉽지 않았다. 우선 그곳에서 30년 넘어 생활한 친구부터가 의아해했다. 왜 그러지 못하냐며, 우리를 생각해서 특별 이벤트를 하는 건데 몹시 섭섭해 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실랑이 끝에 우리는 동방예의지국 사람들이라 낯선 남자들과 수영복 차림으로 무릎을 맞대고 앉아 있을 수 없다고, 문화의 차이를 내세운 끝에 겨우 난처한 상황을 모면했다.

여행을 하면서 번번이 느끼지만 각 나라마다 문화적 차이가 크다. 그동안 남프랑스의 여러 해변을 거치면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도 가린 둥 만 둥 수영복을 갈아입는 모습들을 워낙 봐온 터였다. 그들은 벗은 몸을 훔쳐보는 것은 당신들의 죄라는 듯 어디에서도 스스럼없었다. 친구도 오랫동안 서구문화권에 살다보니 그에 익숙해져 그예 사양하는 우리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어쨌건 자쿠지 안에서의 와인파티는 없던 것으로 하고 식사만 하기로 했다. 그동안 집에 사람을 초대하기보다 외식으로 해결하는 일에 익숙해진 터라 프랑스 인의 식사초대에 기대가 컸다. 친구의 말로는 프랑스인들은 주말이면 친구나 친지들을 불러 자주 식사를 한다고 했다. 프랑스인들의 식사시간이 기본 두 시간이란 풍문은 이미 들은 터이고, 네 시간도 예사라고 했다. 그렇게 번거로운 일을 성가셔하지 않고 한다니, 외식문화가 서구의 것이라 생각했던 나로선 의외였다.

소설가라고는 하지만 주부 이력도 만만찮은데 손님을 초대하는 일은 늘 부담스럽다. 그래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될 때는 할 수밖에 없는데 그때마다 손님을 한 번 치르고 나면 피로가 이만저만 쌓이는 게 아니다. 늘 음식준비가 문제다. 우리나라만큼 음식 하나하나에 정성과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음식도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어떨 때는 좀 편하고 싶어 먹을 만한 음식을 사보기도 하지만 값에 비하면 맛이 미흡해서 꼭 후회가 따랐다. 그러다보니 손님을 집에서 맞는 일을 차츰 꺼리게 되고 이젠 손님맞이도 식당에서 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프랑스 가정의 상차림이 궁금했다. 식사시간에 손님을 초대한 걸 보면 음식준비는 당연할 것인데, 긴 시간을 식탁에 앉아 있으려면 그에 걸맞는 준비가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도대체 어떤 상차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베르나의 집으로 갔다. 만나는 순간, 2년 전에 처음 만났던 반가움이 되살아나 왁자하게 인사를 나눈 후 거실로 가니 샴페인이 준비되어 있었다. 우리는 그간의 안부를 물으며 샴페인으로 목을 축였다. 술에 약한 친구들은 샴페인 한 잔에 벌써 얼굴이 붉어졌다. 삼사십 분쯤 담소를 나눈 후 베르나가 우리를 식당으로 안내했다.

커다란 테이블 위에 6인분의 접시와 포크와 나이프, 커다란 전기프라이팬이 달랑 놓여 있었다. 우리가 자리에 앉자 베르나의 남편이 고기가 담긴 접시를 내왔다. 오리고기, 쇠고기, 돼지고기 3종류였다. 뒤이어 야채볶음 한 접시가 나왔다.

우리가 고기를 먹을 때면 으레 준비하는 야채와 막장, 참기름, 마늘, 고추 따위는 일절 없이 굵은소금과 후추뿐이었다. 베르나가 후라이팬에 굵은 소금을 뿌리고 그 위에 고기를 올려놓았다. 우리는 각자 먹을 만큼의 고기를 가져와 야채볶음을 곁들여 먹었다. 사이사이 빈 글라스에 와인이 채워졌다. 모두 맛이 다른 와인이었다. 와인의 나라라 그런지 그동안 먹었던 와인과는 다르게 깊고 그윽한 맛이었다.

고기를 먹고 나자 베르나가 네 종류의 치즈와 바케트를 썰어서 갖고 왔다. 그 중 냄새가 제일 고약한 치즈가 최고급 치즈라는데 의외로 맛은 구수했다. 치즈와 빵을 다 먹고 나자 이번엔 베르나의 남편이 일어나 접시를 거둬가더니 아이스크림과 후르츠칵테일이 든 커다란 볼을 들고 왔다. 마지막 코스였다. 우리의 그것을 각자의 접시에 덜어먹었다.

친구의 말에 의하면 그게 일반적인 상차림이라 했다. 가끔 카나페 등 한두 가지 더 추가될 수는 있지만 그 이상 넘지는 않는다고 했다.

우리에 비하면 너무 간단한 상차림이었다. 그래선지 우리는 먹는 일보다 대화에 더 집중했다. 잔이 빌 때마다 채워주는 와인을 한 모금씩 마시며 나누는 대화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일어설 때쯤 시간을 보니 어느 새 네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우리에 비하면 너무나 간소한 상차림이었지만 전혀 옹색하지 않았다. 그 정도의 준비만으로 손님을 맞을 거 같으면 지인을 만나는 기쁨은 크고, 음식준비에 대한 부담은 적을 게 분명했다. 그들은 음식을, 술을, 먹거나 마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사람과 만나기 위해 식사를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음식은 그것을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먹기 위해 만난다는 느낌이다. 그러니 가짓수와 양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다. 특히 명절에는 가족이 다 모이기에 가짓수와 양이 더 늘어난다. 때문에 주부는 종일 부엌에서 헤어날 수가 없다. 나중엔 지쳐서 음식냄새도 싫고,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것도 지겨워진다. 그래서 명절이 오면 주부들은 지레 우울해진다. 그것이 명절증후군이다. 요즘은 여행을 떠나는 사람도 많지만 여전히 많은 주부는 부엌이 일터가 된다.

이번엔 나도 프랑스식 상차림을 따라 한번 해보련다. 주 요리 하나만으로 아주 간단하고 간결하게. 생각만으로도 어깨가 가볍다. 그러면 다들 놀라겠지만, 우리 인제 먹기보다 사람과 만나는 일에 더 마음을 기울여보자고 제안하리라.      

소설가 정인  reporter1@civic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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