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시험 준비하지 말고 차라리 연애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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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시험 준비하지 말고 차라리 연애해라"
  • 편집위원 박시현
  • 승인 2014.10.20 07:0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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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나는 학생들과 함께 <족구왕>이란 영화를 관람했다. 그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이 20대로 다시 돌아간다면 공무원 시험 준비하지 않고 연애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 주인공은 당시에 정말 아름답고 천사 같은 여자를 알게 됐으면서도 공무원 시험 공부하느라 변변히 고백 한 번 못하고 멀리서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고 한다. <족구왕> 영화를 보며 마음 한 편이 내내 불편했다. “공무원 시험 준비나 해!” 이 대사가 영화 보는 내내, 그리고 영화가 끝난 뒤 지금까지도 내 가슴 속을 떠나지 않는다.

통계청의 2013년 자료에 따르면, 청년층 조사 대상자의 28.6%가 가장 선호하는 직장을 국가기관이라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조사 대상자들은 직업 선택의 중요한 요인으로 수입, 안정성, 적성, 흥미의 순으로 꼽았다고 한다. 이런 조사 결과를 종합해 보면, 젊은이들이 국가기관에 취업하는 것, 즉 공무원 되기를 희망하는 이유는 바로 안정적 수입과 고용 형태 때문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별일 없는 한 정년까지 고용되고 은퇴 후에는 연금으로 노후가 보장되는 공무원은 정말 신도 부러워하는 직장이다.

오래 전 한 TV 방송국에서 다큐멘터리를 통해 공무원 시험 준비생들이 모여 있는 서울의 노량진 고시학원가의 일상을 보여준 적이 있다. 각종 공무원 고시학원의 성지라고 불리는 노량진에는 공무원 수험서를 옆에 끼고 돌아다니는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 중 대학 재학생이 차지하는 비율은 30%가 넘는다고 한다. 전국에서 몰린 대학생들이 이곳 노량진 고시촌을 가득 매우고 있다. 학생들의 이런 취업 경향을 반영하듯, 대학들은 아예 공무원 취업을 돕겠다는 학교 조직을 만들거나 공무원 고시반을 운영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는 무언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 학생들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와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지라고 가르치는 게 아니라, 안정된 수입과 고용 형태가 보장된 공무원이 되라고 학교 차원에서 부추기는 게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이 다큐멘터리가 묘사했듯이, 해마다 공무원 지원 경쟁률은 증가하고, 노량진 학원가에는 매년 새로운 공무원 지망생들로 채워진다. 그리고 이들 중 일부만 공무원이 돼서 영욕의 노량진을 빠져 나가지만, 적지 않은 낙오자들은 다시 노량진 학원가를 빠져나가지 못하고 전전한다. 그래서 고3 때 수능을 끝내고 대학에 올라온 대학생들에게 공무원 시험은 또 하나의 수능과도 같다.

공무원 시험 준비에 드는 시간과 비용 또한 만만치 않다. 노량진 고시촌의 학원비는 대략 과목 당 15만원에서 30만원이며, 전 과목을 들을 경우는 학원비만 무려 80여만 원에 이른다고 한다. 지방에서 올라온 지방대생들에게는 여기에 숙식비가 추가된다. 보통 노량진에 들어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대학생들은 짧게는 1~2년 정도, 길게는 5년 정도를 투자할 각오를 한다고 한다. 기간도 길지만, 그들을 누르는 경제적 부담은 상상을 초월한다.

공무원 열풍은 사회 전체적인 측면에서 중대한 인력 낭비다. 능력 있는 젊은이들이 인력을 필요로 하는 중소기업은 쳐다보지 않고 모험이 필요 없는 공무원이 되려는 세태는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다.

엉킨 실타래를 풀어야 한다. 나라와 학교와 가정에서는 젊은이들에게 직업에 대한 다양성의 가치를 주지시켜야 한다. 국가와 지역 사회는 청년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이색 기업을 발굴해서 제시해 주어야 한다. 직업의 안정성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창의성이 발휘될 수 있는 직업이나 직장도 중요하다는 것을 학생들에게 일깨워주어야 한다.

젊은이들에게 진심을 다해 고백해 보라고 주문하고 싶다. 가장 두려운 순간이기도 하고, 용기를 내야할 순간이기도 하면서, 가장 소중한 순간이 고백하는 시간이다. 젊은이들은 각자 자기 인생에 대해 진심을 고백해야 한다. 영화 <족구왕> 속의 대사처럼 “남들이 싫어한다고 자기가 좋아하는 걸 숨기고 사는 것은 바보”다. 진정,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자기 자신에게 고백하자. 그리고 그 길로 가자. 그게 각자의 진로다. 모두가 공무원만 바라보고 가는 우리 젊은이들의 미래야 말로 ‘바보들의 행진’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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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현진 2016-12-20 13:17:41
맞습니다. 우리 시대 청춘들이 좀 깨달으면 좋을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