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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먼 남한의 '국민'과 북한의 '인민' 사이/ 편집위원 박시현

우리 사회에서 가장 정치적이고 논쟁적 단어 중 하나는 아마도 ‘국민(國民)’과 ‘인민(人民)’이 아닐까.

송호근 교수의 저서 <인민의 탄생>에서 인민이란 말은 통치 객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조선의 왕과 대신들은 국가의 안위와 정책의 정당성을 논할 때 그 대상으로서 인민이란 용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인민은 “국가나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 대체로 지배자에 대한 피지배자를 이른다”는 정의와, 법률 용어로는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자연인”이라는 정의가 소개돼 있다. 여기까지는 인민이란 말은 정치학적으로 피지배자를 뜻하는 자연스런 단어처럼 보인다.

하지만, 인민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돌아오기 힘들고 잃어버리고 만 금기어가 되어버렸다. 인민의 개념이 급격히 정치화된 시기는 해방 직후였다. 당시 전국에서 좌파 계열 정치 단체인 인민위원회 활동이 활발했고, 좌파 정치인 여운형이 조선인민공화국(인공)의 출범을 선언하자, 인민이라는 개념이 좌익사상을 대표하는 단어가 되면서 반대 정치세력의 거부감을 확산시켰다.

인민이나 국민이나 대상 자체가 다른 사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다른 뜻인 것처럼 생각할 뿐이다(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대한민국 헌법이 제정될 당시 초안을 작성했던 유진오 박사는 자신의 저서인 <헌법기초회고록>에서 원래 초안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인민’에게 있다”고 기술했지만 논의 과정에서 인민이 국민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유진오 박사는 제헌 헌법을 기초하면서 인민을 포기하고 국민을 사용한 것을 뼈저리게 후회한다고 했다. 말인즉슨, 인민이란 단어는 순수한 백성의 의미였는데 이념적으로 좌파에서 사용되면서 논의 과정에서 국민으로 대체된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의 <조선말대사전>에는 인민이란 “나라를 이루고 사회와 력사(역사)를 발전시켜나가는 데서 주체로 되는 사람들로 혁명 대상(자본가, 기업가, 지주 등)을 제외하고 로동자 농민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모든 사람들이 다 포괄된다”고 정의하고 있다. 역시 북한은 인민을 혁명 주체라는 이념적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인 링컨이 게티즈버그에서 한 유명한 연설의 일부인 “government of the people, for the people, by the people”의 ‘people을 우리는 원래 “인민의, 인민을 위한, 인민에 의한 정부”라고 번역했으나 언제부터인가 “국민의,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정부”로 바뀌었다. 아마도 인민이란 말의 이데올로기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이란 단어도 문제가 있다. 사실 국민이라는 표현은 일본 제국주의가 만들어낸 전체주의적 용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국민학교를 버리고 초등학교로 개명한 이유도 일제의 잔재를 바로잡자는 의미였지 않았을까.

오늘날도 국민과 인민 사이의 거리는 먼 것처럼 보인다. 인민이 국어사전에 피지배자를 의미하는 평범한 단어이면서도 우리가 거의 쓰지 않는 단어가 된 것을 보면, 국민과 인민이란 단어 사이의 거리는 곧 남과 북의 언어적 거리 그 이상을 의미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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