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고 견고한 3D 프린터 연구에 온 몸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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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고 견고한 3D 프린터 연구에 온 몸 던졌다
  • 취재기자 김다빈
  • 승인 2015.02.17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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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구할' 기술 개발에 몰두하는 26세 벤처사업가 김태영 씨의 24시

 부산시 기장군 철마면 안평리에 사는 김태영(26) 씨는 오늘도 아침 일찍 일어나 부산 해운대구 센텀시티에 있는 국비 지원 직업 전문학교로 간다. 그는 그곳에서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3D 프린터 제작에 필요한 컴퓨터 프로그래밍 수업을 듣는다. 수업이 끝나고 햄버거로 간단히 끼니를 해결한 김 씨는 바로 동래구 사직동으로 향한다. 그는 일주일에 세 번 사직동 ‘하얀 나비’라는 라이브 바에서 밤 8시부터 자정까지 라이브 공연 아르바이트를 한다. 아르바이트가 없는 날은 금정구 서동에 있는 연구실에서 자정까지 3D 프린터에 관한 연구에 몰두한다. 그는 모든 것이 끝난 뒤 힘든 몸을 이끌고 기장군 집으로 돌아간다.

김 씨는 3D 프린터를 만들고 그 프린터로 고객이 주문하는 제품을 출력, 제작해주는 ‘Creplay(크리플레이)’ 라는 이름의 3D 프린터 기반 벤처를 운영하는 청년 사업가다. 3D 프린터는 사물을 입체 모양 그대로 찍어내는 기계를 일컫는다. 3D 프린트로 사물을 찍어낼 때 플라스틱, 고무, 금속, 세라믹 등 150여 개의 소재가 사용된다. 사업은 아직 이윤을 남기는 단계가 아니라, 라이브 공연 알바는 바로 생계를 위해서 그가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다.

▲ 김태영 씨가 그라피티 아트 앞에서 크게 웃고 있다(사진: 김태영 씨 제공).

김 씨는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이라는 한비야 씨의 책을 어릴 적에 읽었다. 그 책에서 한비야 씨는 홍보회사 직원에서, 세계 오지 여행가로, 그리고 국제 난민 운동가로 끊임없이 변신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김 씨는 평범하고 안정적인 삶이 아닌, 한비야 씨처럼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의 삶을 구할 수 있는 새로운 도전을 하기로 결심했다.

김 씨의 도전이 구체화된 것은 대학을 졸업할 즈음부터였다. 김 씨는 2007년 부산대 환경공학과에 입학하여 2014년 8월에 졸업했다. 보통 환경공학과를 졸업하는 김 씨의 동기들은 취업하거나 대학원에 들어갔다. 김 씨는 작년 여름 대학 졸업을 앞두고 지도교수와 면담에서 누군가를 위한 기업을 창업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씨의 지도교수는 “교수 생활 10년 동안 너 같은 학생은 처음이다. 열심히 한 번 해봐라”며 격려해줬다.

김 씨는 오랜 꿈인 남을 돕는 가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대학 시절부터 누군가를 도우며 기업 활동을 하는 사회적 기업에 관심이 가지기 시작했다. 사회적 기업은 어려운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기업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는 기업이다. 사회적 기업은 제품을 팔기 위해서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하기 위해서 제품을 판다는 말도 있다. 김 씨는 사회적 기업에 대해 자세히 알기 위해 대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고등학교 동창인 송병근(27) 씨와 함께 1주일 동안 전국을 기차로 무제한 돌아다닐 수 있는 코레일 ‘내일로’ 기차표를 끊어 서울, 강원도, 충청도 등 전국 방방곡곡에 있는 사회적 기업가들을 만났다. 김 씨는 그들을 만나 사회적 기업의 방법과 그 가치에 대해서 몸소 배웠다.

김 씨와 송 씨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사회적 기업이 어떻게 이윤을 창출하고 그 이윤을 어떻게 사회에 환원하는가를 배웠다. 그들은 사회적 기업에 대해 긍정적인 사람도 있지만 부정적인 사람이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김 씨는 “다른 나라 사회적 기업은 자립을 기본으로 하지만, 우리나라 사회적 기업들은 국가 지원정책에 의존하기 때문에 사회적 기업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인 시선이 생겼음을 알았다“고 말했다.

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김 씨는 송 씨와 함께 부산대 경영학과에서 만든 일종의 석사 예비과정인 준석사 사회적 기업 리더 과정에 입학했다. 김 씨와 송 씨는 2013년 9월 13일부터 졸업 직전인 2014년 6월 14일까지 사회적 기업 리더 과정을 밟을 수 있었다.

김 씨는 사회적 기업 리더 과정을 통해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얻었고, 기업을 경영하는데 필요한 지식도 습득했다. 또한, 사회적 기업에 관심 있는 많은 사람들과 만나 인적 네트워킹도 만들 수 있었다. 김 씨는 “가장 좋았던 것은 많은 기업의 사례를 통해서 확실한 동기를 가질 수 있었다는 것과 초기 위험 요소들을 피해갈 수 있게 해준 것이었다”고 말했다.

▲ 윗줄 송병근(27), 아랫줄 왼쪽부터 최현승(26), 김태영(26), 김진완(27) 씨가 새로운 3D 프린터 연구실에 앉아있다(사진: 김태영 씨 제공).

드디어 김 씨는 마음 맞는 친구 세 명과 함께 Creplay라는 이름의 팀을 만들었다. Creplay는 창의적이라는 뜻의 크리에이티브(creative)와 놀이라는 뜻의 플레이(play)라는 두 단어가 합쳐져서, 창의적인 놀이를 한다는 말이다. 김태영 씨는 “Creplay는 무모한 도전을 일삼는 못난 사람들이 꿈을 실현하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이름처럼 그들의 시작은 무모했다. Creplay 팀은 처음부터 3D 프린터를 이용해 창업할 생각은 없었다. 그들은 무작정 한 달 동안 현 시대의 흐름을 주도하는 책을 ‘1인 1일 1독’하기로 했다. 한 달 동안 책을 읽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그들 네 명은 모두 합쳐 총 120권의 책을 읽었다.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했다. 그들은 120권의 책 속에서 3D 프린터가 미래 유망 산업이면서 인간을 무한정으로 도울 수 있는 사업 아이템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실제로 각종 언론들은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13년 연두교서 연설에서 3D 프린터가 “거의 모든 제품의 제작 방식을 혁신할 잠재력을 가졌다”며 극찬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3D 프린터라는 창업 아이템을 선정한 Creplay 팀은 즉시 창업 자금을 지원하는 사회적 기업 진흥원의 사회적 기업 육성 사업 공모에 지원했다. 그들은 초콜릿을 소재로 3D로 사물을 찍어내는 3D 프린터를 생각했다. 무엇이든 초콜릿으로 사물을 찍어낼 수 있는 3D 프린터가 있다면, 어린이는 물론 모든 어른들도 좋아할 여지가 무궁무진해 보였다. 그들은 이런 내용을 담은 기획서를 진흥원에 제출했고, 약 2000여 만 원을 지원받는 데 성공했다.

▲ (왼쪽) 작년 김태영 씨의 5평 남짓한 좁은 자취방에서 Cre-play 팀이 3D 컴퓨터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사진: 김태영 씨 제공).

드디어 Creplay팀의 초콜릿 3D 프린터 연구가 작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당시 팀원들은 서동 근처에 있는 김 씨의 5평 남짓한 좁은 자취방에서 숙식을 같이 하며 연구에 돌입했다. 그들은 천신만고 끝에 초콜릿 3D 프린터 시제품을 완성하는 단계까지 갔다. 하지만 초콜릿이라는 식품을 사용하는 만큼, 그들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승인을 얻어야 했고, 의외로 이 제품에 대한 승인받는 게 어려워지면서, Creplay 팀은 초콜릿 3D 프린터 개발을 보류할 수밖에 없었다.

▲ 김태영 씨와 Creplay는 2014년 11월 27일 부산 BEXCO에서 열린 교육박람회에서 스마트 e-러닝 전시관에 부스를 차리고 ‘3D PLUS’라는 이름의 3D 프린터 제품을 소개했다.

한 번의 좌절을 맛본 김 씨는 부산 디자인센터에서 3D 프린터 제작 기술 중 하나인 모델링 수업을 들었다. 김 씨는 모델링 강사의 소개로 ‘3D PLUS’라는 방과 후 교육 관련 회사와 만났고, BEXCO에서 열린 교육박람회에 함께 참여하자는 제의를 받았다. 그렇게 2014년 11월 27일부터 29일까지 BEXCO에서 열린 교육박람회 스마트 e-러닝 전시관에서 부스를 차리고 ‘3D PLUS’라는 이름의 3D 프린터로 참여했다. 김 씨는 박람회를 찾은 신덕, 화정, 덕양 초등학교 관계자들로부터 체험학습 교육신청을 받았다. 김 씨는 이들 학교를 방문해서 아이들에게 3D 프린터의 사용 방법을 가르치고 흥미로운 제품 제작 과정을 체험시켰다.

김 씨는 3D 프린터에 관심이 많은 교수의 연락을 받고 부산 해양대 창업 관련 수업에 강사로 초빙되어 특강을 하기도 했다. 김 씨는 학생들에게 제조업으로 창업하는 것을 기피하지 말라고 역설했다. 김 씨는 “특별한 ‘소비자의 것’을 만들어줄 수 있는 3D 프린터의 미래상을 초등학생들과 대학생들에게 알려 준 것은 보람있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다사다난했던 Creplay 팀의 2014년이 지나고, 이들은 올해 1월 좁은 자취방을 나와 서동에 있는 한 건물에 입주했다. 현재 그들은 과거 자취방의 약 5배 정도 되는 넓은 공간에서 3D 프린터를 연구하고 있다.

▲ 연구실 한 쪽에 있는 서재에는 그들이 공부하고 있는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빼곡히 꽂혀있다 (사진: 취재기자 김다빈).
▲ Creplay 팀이 만든 3D 프린터의 모습. 주변에는 프린터에 필요한 도구들이 잔뜩 널려 있어서, 연구의 열기를 느끼게 한다(사진: 취재기자 김다빈).
▲ 김태영 씨가 3D 프린터의 온도를 설정한 뒤 작동시켜 3D 프린터가 움직이고 있다. 3D 프린터는 약 260도의 고온에서 움직인다(사진: 취재기자 김다빈).

Creplay 팀은 현재 교육용 3D 프린터 키트(조립용 세트라는 뜻)를 개발 중이다. 3D 프린트 키트는 사람들이 키트를 사서 조립한 후 3D 프린터로 사용하게 하는 일종의 조립용 3D 프린터를 가리킨다. 시중에 나와 있는 3D 프린터들은 가격이 비싼 편이다. 싼 것도 100만 원을 호가하고, 비싼 것은 1억 원이 넘는다. Creplay 팀은 사람들이 싸게 구입해서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3D 프린터 키트를 만들고 있다. 김 씨는 “앞으로 3D 프린터도 일반 프린터나 컴퓨터처럼 모든 가정에서 사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1년 동안 연구 성과도 있었고 가야 할 방향도 잡았으나, 아직 본격적인 상품 수준에 이를 정도의 제품을 만들지는 못했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별다른 수입이 없다. 하지만 김 씨는 “3D 프린터의 가능성을 믿고 꾸준히 개발 중인 현재, 우리는 행복한 과정을 밟고 있다”고 말했다.

Creplay 팀의 연구실 이곳저곳에는 ‘실패할 것을 알아도 끝까지 해봐야 안다’는 좌우명과 각종 미래 계획들이 붙어 있다. 김 씨는 끝이 보이지 않는 연구와 공부를 계속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자신의 3D 프린터 기술로 아프리카와 같은 가난한 나라나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는 날이 올 거라고 믿는다.

3D 프린터는 가까운 우리나라의 교육에서부터 먼 아프리카 땅의 도움의 손길까지, 그 효용성이 크다. 김 씨는 자기 기술로 남을 돕는 것을 남과 소통하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김 씨는 “실패할 수 있는 도전이지만, 3D 프린터의 가능성을 믿고, 전 세계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해서 연구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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