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후 찾아든 대인기피증, 정신력 하나로 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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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 후 찾아든 대인기피증, 정신력 하나로 극복
  • 취재기자 김승수
  • 승인 2014.11.25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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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밖만 나서면 가슴 떨리고 식은 땀..."살아야겠다" 정상 되찾아

한 사내가 하루 종일 어두운 방안에 누워있다. 방 밖을 나와 보려 문고리를 잡지만, 심장과 손 떨림이 멈추지 않는다. 그는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낸 뒤,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방문을 열어보려 하지만, 이내 주저앉고 만다. 높아만 보이는 문고리를 한 번 쳐다본 뒤,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킨 채, 그 사내는 결국 다시 침대에 눕는다. 누구보다도 활달한 대학생이었다가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한 뒤 바깥 세상을 향해 눈물겨운 몸부림을 치고 있는 조현근(23) 씨의 이야기다.

지난 5월 5일 어린이날은 현근 씨에게는 잊을 수 없는 날이 됐다. 그는 여느 대학생과 다를 바 없이 조별 과제를 위해 휴일인 데도 학교를 가고 있었다. 그는 “그날따라 이상하게 약속 시간에 늦어, 다른 지름길로 가는 중이었다”고 했다. 그 때였다. 그는 급출발하던 자동차에 부딪혔고, 그의 몸은 2m 가량을 날아 땅에 떨어졌다. 현근 씨는 당혹감에 아픈지도 모르고 일어나려 했지만, 몸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고, 그는 그대로 땅바닥에 쓰러졌다. 신고를 받은 119와 응급차가 달려왔고, 그는 그 상태로 해운대 백병원으로 이송됐다.

병원의 진단은 무릎 뼈에 금이 가고 인대가 파열됐다는 것. 그는 아버지 지인이 있는 울산대병원으로 병원을 옮겨 입원했다. 수술 후 한 달이 지나고, 조 씨는 다리가 회복되어 다시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별 탈 없이 학교생활을 하던 그의 몸에 이상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침실에서 잠을 자던 현근 씨는 공연히 심장이 떨리고 식은땀이 나서 잠에서 깼다. 그가 몸의 이상을 식구들에게 알리려 방을 나가려는데, 방문이 그의 눈에 보이지 않았다. 일단 그는 방에서 가만히 서있었다. 그의 부모가 달려와 무슨 일이냐고 묻었다. 조 씨의 몸에 교통사고 후유증이 온 것이다.

부모들은 정신 치료사를 집에 불렀다. 치료사는 대인기피증의 초기 증상인 불안증이 왔다고 했다. 그 때부터 조 씨의 ‘방 생활’이 시작됐다. 그는 모든 의식주를 방안에서 해결했고 그림치료, 상담치료, 심지어 최면치료까지 받았다. 지루하고 지겹도록 반복되는 치료와 밖에 나가려면 떨리는 심장과 손 때문에, 점점 지쳐간 조 씨에게 때마침 밖을 나서 볼 기회가 생겼다. 예비군 훈련이 바로 그것이었다. 예비군 훈련이 기회라고 생각한 조 씨는 밖에 나가 걷는 연습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긴장된 마음으로 밖으로 나온 조 씨는 버스를 타기위해 버스 정류장을 향했다. 그는 도로 위에서 달리는 자동차를 보자, 아니나 다를까 식은땀과 함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도저히 길 건너편 버스정류장을 갈 자신이 없었던 그는 택시를 잡아타고 예비군 훈련장으로 향했다.

예비군 훈련장에서도 식은땀과 불안한 마음은 계속됐다. 그런데 현근 씨는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사고 상황과 당시 감정을 공유하다 보니, 손 떨림이 멎고, 땀도 멈추기 시작했다.

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밖을 계속해서 나가보기로 결심했다. 처음은 너무 힘들었다. 차 소리만 들어도 다리가 떨리고, 사람들을 보는 것도 무서웠다. 그러나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현근 씨는 점점 걷는 범위를 넓혀나가기 시작했다. 밖을 나서는 것에 조금씩 자신감을 얻은 그는 마침내 횡단보도에 섰다. 그는 첫 발을 내딛으려다 주춤했다. 도저히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현근 씨는 “횡단보도를 건너려는 일이 이렇게 힘든 일인 줄 몰랐다. 내일을 기약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다음 날이 되고 반드시 건넌다는 생각으로 횡단보도에 선 그는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같이 건너기 위해 사람들을 기다렸다. 사람들이 하나 둘 씩 횡단보도에 늘어서고, 마침내 신호등이 바뀌었다. 다리가 떨리긴 했지만, 조 씨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그들과 같이 섞여 자신도 행인의 한 사람으로 길을 건넌다는 생각으로 그들에게 정신적으로 의지하며 조금씩 다리를 움직여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했다. 부상에서 회복된 몸은 문제가 아니었다. 오로지 사람에 대한 정신적인 태도가 문제였다. 마침내 현근 씨는 길을 건넜다. 그는 “막상 건너보니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옆에 있고 같이 횡단보도를 건넌다는 것에서 그들이 나에게 의지가 됐다”고 말했다.

이후 현근 씨는 계속해서 여러 사람 속에서 행인의 한 사람이 되어 모르는 사람들을 정신적으로 의지해서 길을 걷기 시작했다. 평범한 사람들에겐 아무것도 아닌 일이지만 조금씩 조 씨는 그만의 도전을 계속해나갔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그는 잃어버린 시간도 많았지만 반면에 얻은 것 또한 많았다. 조 씨는 그냥 길에서 지나치는 사람도 자신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 그는 “안 된다고 하면 진짜 안 된다. 만약 안 되는 일이 있다면, 꼭 해보고 후회해라”고 덧붙였다.

현재 현근 씨는 평범한 대학생활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아직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를 보면 떨림이 있다. 그는 “이제는 내가 자동차를 몰고 운전하는 것이 사고 이후 가장 큰 목표다”고 말했다.

▲ 이제 자유롭게 밖을 다닐 수 있는 조현근 씨의 다음 목표는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이다. 사진은 최근의 조현근 씨 모습(사진 : 취재기자 김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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