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들도 보편적 문화 즐길 권리 있어요"
상태바
"장애인들도 보편적 문화 즐길 권리 있어요"
  • 취재기자 장윤혁
  • 승인 2014.10.27 10: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애인을 위한 장애인의 삶' 사는 장애인 영화감독 윤한민 씨

문화는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전달돼야 한다. 올해 19회를 맞은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모든 사람들이 영화를 볼 수 있게 하자는 나눔의 프로그램이 있었다. 이는 평소 영화를 관람하기 어려운 장애인과 소외된 이웃을 배려하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그래서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한국 영화 12편, 외국 영화 6편 등 총 18편의 영화들이 배리어 프리(barrier-free) 영화라는 이름으로 준비돼 장애인들에게 상영됐다. 이를 주도한 단체는 부산의 민간단체인 ‘배리어 프리 영상포럼’이었다. 부산 시청자미디어센터 건물에 입주해 있는 배리어 프리 영상포럼의 사무국장을 맡고 있으면서 영상제작자 겸 작가이기도 한 윤한민(54) 씨가 부산국제영화제 배리어 프리 영화 프로그램의 산파면서 주역이었다.

▲ 윤한민 씨(사진: 윤한민 씨 제공)

한민 씨는 그 자신이 고등학교 시절 갑작스러운 병으로 하반신을 사용하지 못하게 된 장애인이다. 그는 그 누구보다도 문화생활을 즐기기 힘든 장애인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명량>이나 <관상> 등 1000만 명 이상의 관객이 본 국민 영화라도 우리 장애인들은 관람자로서 당연한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라고 말했다.

한민 씨는 부산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영상 제작 강사를 맡고 있으며 배리어프리영상포럼의 사무국장 일을 겸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그의 역할은 장애인들을 위한 화면 해설 작가로 활동하는 것이다. 화면 해설 작가란 시청각 장애인들에게 영화 장면을 말이나 글로 전달해 줄 때 필요한 원고를 작성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는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배리어 프리 영화 한 편의 화면 해설을 직접 작성했다. 한민 씨는 “화면 해설은 시청각 장애인들이 영화를 보게 하고 듣게 하는 작업이라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이번에 맡은 영화는 윤종빈 감독의 <군도>였는데, 러닝타임이 2시간 17분이라 작업 시간이 많이 걸리는 대신, 저에게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시빅뉴스에 소개된 바 있는 배리어프리 영화(시빅뉴스 10월 7일자)란 장벽(barrier)으로부터 자유로운(free) 영화를 말한다. 본래 이 말은 건축용어로써 고령자나 장애인들도 편리하게 살 수 있는 주택이나 공공시설을 만들기 위해 문턱을 없애자는 운동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런데 영화 관람을 위해 가장 중요한 시각과 청각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영화를 제대로 즐길 수 없다. 그래서 들을 수 없는 사람에게 영화의 사운드를 자막으로 표시해주고, 볼 수 없는 사람들에게 영화의 장면을 나레이션으로 제공해주는 것이 바로 배리어프리 영화다.

한민 씨는 고등학생 시절인 1977년 건강했던 몸에 병마가 찾아와 그 후유증으로 하체를 못 쓴 지 근 40년이 가까이 됐다. 학창시절 때 찾아온 장애는 그에게서 모든 꿈들을 빼앗아갔고, 그는 장애인이 된 자신의 몸을 인정하지 못하고 세상과 단절하며 지냈다. 그렇게 10년의 세월이 지나고 이대로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가까스로 마치게 됐다. 그후 그는 회사도 다녔고 이런 저런 사업을 하기도 했다.

그는 10여 년의 칩거 기간 동안 주로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면서 지냈다. 그런데 그 때 접한 책과 영화가 지금의 한민 씨 삶과 직업에 많은 도움을 주게 됐다.

2005년 어느날, 부산의 한 대학 장애인 단체에서 주관하고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미디어 강좌가 있었다. 한민 씨는 그 강좌를 통해서 컴퓨터 그래픽을 배우면 장애인으로서 직업 선택에 도움이 될 것 같아 그 강좌에 신청했다. 그런데 그 강좌는 컴퓨터 그래픽은 부수적이었고 캠코더를 이용한 영상 촬영과 편집이 주를 이뤘다. 그 강좌 실습의 일환으로 그는 직접 다큐멘터리 한 편을 만들게 됐는데, 이것이 부산시민영상제 대상의 영광을 안겨줬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2005년 여름, 장애인 아빠와 아들은...>이란 작품으로 일종의 자전적 다큐멘터리였다. 여기서 한민 씨는 장애인 아빠인 본인이 아들과 방학을 보내면서 아들이 아빠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그렸다. 그는 “짧은 강좌 수강 기간 내에 빨리 제출해야 되는 상황 때문에 쉽게 접근하고 잘 그릴 수 있는 내 이야기를 그렸는데, 그게 상을 받게 될 줄은 몰랐어요. 그 작품을 통해 내 삶을 뒤돌아보니, 내가 가족으로부터 얼마나 사랑을 많이받고 있는지를 새삼 느꼈습니다”라고 말했다.

▲ 장애인 미디어 교육 중 촬영하는 윤한민 씨(사진: 윤한민 씨 제공)

큰 상까지 받게 된 그의 첫 다큐에 등장인물로 나오는 아들은 그와 아내 사이의 소중한 사랑의 결실이다. 그가 고등학교 1학년이던 시절, 그는 친구 집에서 우연히 아내를 처음 만났고,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그 인연이 이어져, 두 사람은 1989년 결혼식을 올렸다. 한민 씨는 장애를 얻기 전부터 지금까지 그의 버팀목이 돼 준 아내에게 각별한 사랑을 느낀다. 가족들에 대해 그는 말을 많이 아꼈지만, 그의 눈빛은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으로 가득했다. 그는 “지금까지도 제일 고맙고 미안한 사람이 아내와 아들이에요. 장애인 아내로 살아가고, 아들로 살아가야 된다는 것은 평범한 삶은 아니지요”라고 말했다.

2007년 부산장애인영화제에서 그의 세 번째 작품 <독립만세>가 폐막작으로 선정됐다. 그의 영화에는 대부분 장애인이 등장한다. 그러나 한민 씨는 다른 장애인 영상물에 비친 장애인이 지나치게 슬프거나 장애를 극복하는 영웅으로 과도하게 묘사되는 것에서 탈피하고 싶었다. 그는 그냥 장애인의 일반적인 삶을 정상인들의 삶처럼 다루고 싶었다. 그리고 실제 그는 그렇게 장애인들의 일상을 평범하게 그리고 있다. 이렇게, 그의 영상 제작과 감독의 삶에는 나날이 전진과 발전이 이어졌다.

▲ 윤한민 씨가 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노인들에게 영상교육을 실시하고 있다(사진: 윤한민 씨 제공).

현재 그는 부산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화면 해설 교육 강사로, 그리고 배리어프리 영상포럼에서 화면 해설 작가와 사무국장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는 영화감독이다. 그는 지금까지 총 18편의 단편과 장편 영화를 만들었다. 그는 영상 제작을 통해 장애인들의 삶을 일반인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한민 씨는 “저의 작은 움직임으로 일반인들이 장애인을 이해하고, 장애인들도 일반인들과 똑같이 문화를 향유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