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게 장’으로 오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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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게 장’으로 오이소!"
  • 취재기자 이정은
  • 승인 2014.12.05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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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노포역 장터엔 인정 넘치고, 사람 냄새 물씬 난다
▲ 부산 금정구 노포동 노포역 1번 출구에서 ‘오시게 장’을 가기 위해 사람들이 횡단보도에서 기다린다(사진: 취재기자 이정은).

부산 도시철도 1호선 노포행 열차 종점인 노포역 주변이 유난히 붐빈다. 사람들이 빈 장바구니를 들고 그곳 건널목 앞에 빼곡히 서있다. 신호가 바뀌자, 가득한 장바구니를 든 사람과 빈 장바구니를 들고 있는 사람들이 교차하며 지나간다. 장바구니가 가득한 사람은 장을 보고 나오는 사람들이고, 빈 장바구니를 든 사람들은 그 바구니를 채우러 장에 가는 길이다. 그들이 오고 가는 곳은 부산의 5일장 ‘오시게 장’이다.

매달 2일, 7일, 12일, 17일, 그리고 22일과 27일에 열리는 ‘오시게 장’은 노포역 1번 출구 바로 맞은편에 있어 사람들이 접근하기가 쉽다. 오시게 장은 원래 조선 후기에 동래 읍내 장이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상설 동래시장이 생겨나면서 오시게 장은 그 자리에서 밀려나 부곡동으로 옮겨졌다. 오시게 장은 현재 부곡4동의 옛 지역 이름인 오시게 마을에서 유래됐다. 이 마을은 까마귀가 많은 까마귀 고개(烏峴, 오현)라는 이름으로부터 오시게 마을이라고 불리게 됐다고 한다. 물론 오시게란 이름이 오현 마을에서 유래됐다는 것도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신빙성이 있음직하다. 오시게 장은 주민들과의 마찰 때문에 부곡동에서 다시 구서동으로 옮겼다가 일부 상인들이 노포역 앞의 터를 임차하면서 지금 위치에 이르렀다.

아무튼, 어수선하고 시끌벅적한 이 장터에 이름 말고 또 어떤 매력이 있어 이 많은 사람이 찾는 것일까?

“아이고 늦게 와가, 다 팔리고 없을 줄 알았더니, 쌔삐릿다(아직 많네)!” 일반적인 5일장은 새벽부터 열리고, 오전 9시께부터 사람들이 빠지면서, 정오가 되면 거의 파한다. 그러나 오시게 장은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장이 열린다. 딱, 해 떠서 해 질 때까지이다. 그래서 이런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시장에 온 사람들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느지막이 와도 장 구경도 할 수 있고 여러 물건도 살 수 있다.

▲ 현대식 마트에서 보기 힘든 여주, 우슬뿌리, 오갈피, 돼지감자가 오시게 장에는 지천이다(사진: 취재기자 이정은).

오시게 장을 많이 찾는 이유는 대형마트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것들을 파는 데 있다. 어릴 적 할머니 할아버지 시골집에서 맛봤던 옛날 과자나 옛날 사탕들도 즐비하다. 오갈피, 돼지감자, 여주, 우슬뿌리 등은 대형마트에서는 보기 힘들고, 재래시장 골목 어귀에 있는 약재 방에서도 값비싸게 구할 약재인데, 오시게 장에는 흔하다. 약재의 이름도 적혀 있고, 어디에 좋은지 설명도 휘갈겨 적혀 있다. 무심한듯한 글씨지만, 혹시 필요해서 찾는 사람들이 있을까 봐 자세히 적혀 있는 약제 설명문엔 상인들의 ‘정(情)’이 느껴진다. 상인들은 “단디 해라(제대로 해라)”라고 약제를 사가는 사람들에게 까먹을까 염려되어 달여 먹는 법을 다짐받다시피 알려주고 또 알려준다. 최현경(48, 부산 연제구) 씨는 “무릎같은 관절에 우슬뿌리를 달여 마시면 좋다고 해서 구하러 왔다. 우슬뿌리가 구하기가 힘들었는데 여기에는 있어서 다행이다. 달여 먹는 법도 알고 간다”고 말했다.

▲ 덤을 더 달라고 말하는 손님들과 덤을 더 챙겨주는 상인들이 어울려 있다(사진: 취재기자 이정은).

한 움큼 더 쥐어 주는 덤이나 흥정은 오시게 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요즘 사람들이 쉽게 이용하는 마트나 백화점에는 흥정과 협상이 통하지 않는다. 이런 곳에서 구매자는 판매자가 일방적으로 제시해놓은 정찰제 가격에 따라 물건을 말없이 살 수밖에 없다. 오시게 장의 가격 흥정과 덤을 주는 훈훈한 마음이 사람들을 끄는 이곳의 매력이다. 싸거나 비싸거나 손님들은 지켜야 할 의례처럼 깎아달라고 성화다. 장사꾼들도 으레 하는 말쯤으로 받아들이는 듯하지만, 흥정이 벌어지면 결국은 값이 깎이거나 덤이 건네진다. “고마 세 개에 오천 원으로 하자.” “에헤이! 그라믄 우리 남는 것도 없다카이. 알았다, 그래 가져가라.” 흥정 속에 정겨운 사투리가 오간다. 때로는 흥정 없이 주어지는 인심 좋은 덤도 있다. 이따금 언성이 높아지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 또한 5일장에서나 볼 수 있는 꾸밈없는 풍경이다.

오시게 장이 흥정도 되고 덤도 주는 곳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대형마트보다는 가격이 저렴한 게 사람들이 이곳을 많이 찾는 이유다. 노화방지나 눈 건강에 좋다고 소문이나 사람들이 많이 찾는 크랜베리도 여기서는 5000원이면 한 움쿰 살 수 있다. 대형마트에서 대략 8000원 정도는 줘야 될 양이다. 크랜베리 뿐만 아니라, 도라지나 산삼도 마트보다 싸다. 그렇다고 이곳에 파는 모든 것이 대형마트보다 저렴한 것은 아니다. 27일 열린 장날에는 도라지가 비쌌던 모양이다. 전에 왔을 때보다 가격이 올랐다며 발길을 돌리는 사람도 있었다. 김선희(53, 부산시 진구) 씨는 “재래시장이라고 무조건 마트보다 저렴하다고 할 수 없다. 그러니 잘 보고 물건을 골라야 한다”고 말했다.

오시게 장에는 어느 연령층보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많다. 그들의 손에 들린 장바구니에는 딱히 물건이 많이 들어 있는 것도 아니다. 이순임(75, 부산시 진구) 할머니는 매번 장이 설 때마다 먼 곳에서 이곳까지 발걸음을 한다. 이 할머니는 깔끔하고 정돈된 마트보다는 어수선하고 북적북적해도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장터가 더 정이 간다. 할머니는 “마트는 깔끔하고 좋더라. 딱딱 물건도 정리돼있고. 근데 눈도 부시샀코. 사람들도 쌩쌩 지나가고. 어지러버서 못간다”고 말했다.

▲ 오시게 장에서 사람들이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며 얘기를 나누는 모습(사진: 취재기자 이정은).

노인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모이는 장소는 만남의 장이 되기 마련이다. 오시게 장 또한 그렇다. 장의 가장자리에는 장날에 먹어야 더 맛있는 빈대떡이나 돼지꼬리국밥 등 여러 음식이 팔린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음식을 먹기도 하고, 반주(飯酒)로 마신 술기운에 소리 높여 상대방과 얘기하기도 한다. ‘오시게 장’은 단순히 필요한 물건을 사는 장소임과 동시에 노인들에게 대화와 소통의 장이다. 박옥자(73, 부산시 금정구) 씨는 “장을 보기도 하지만, 사람들 만날라고 장터에 마실 댕기는 거지”라고 말했다.

할아버지 손을 잡고 있는 손자가 커다란 국화 풀빵을 사달라고 조르는 모습은 사람과 사람이 부대끼지 않고서는 만들어낼 수 없는 재래시장의 풍경이다. 드문드문 언성이 높아져 말다툼이 생기는 광경도 보이지만, 오시게 장에서는 사람 사는 모습을 꾸밈없이 볼 수 있다. 추위 속의 따뜻한 정이 있어 오시게 장에는 아직도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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