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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틀 할머니’ 아시나요?…길거리 노인에게 담배 심부름시키는 청소년들한 갑당 500원에 “저기 가서 담배 좀 사다주세요”…비행 청소년 도덕의식 심각 수준 / 정인혜 기자

점심 시간을 갓 넘긴 평일 오후. 교복 차림의 남학생 네 명이 거리를 활보했다.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학생들은 "앞으로 가보라"며 한 친구를 밀친 뒤 뒤에 숨어서 킥킥거렸다.

학생이 등 떠밀려 마주 친 사람은 한 노인. 그는 빛바랜 모자, 군데군데 찢어진 옷의 남루한 행색을 하고 있다. 이내 학생이 무언가 말을 건넸고, 잠시 고민하던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학생은 주머니에서 1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 노인에게 쥐여주었다.

돈을 받아든 노인은 길 건너편 편의점으로 향했다. 3분여가 지났을까. 손에 작은 박스를 쥔 채 문을 나선 노인은 조금 전 돈을 쥐여준 학생에게 물건을 건넸다. 학생은 뒤돌아서 친구들에게 주먹을 들어 보이며 웃었다. 멀찌감치 서 있던 학생들은 박장대소하며 환호했다. 노인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행인들 사이로 사라졌다.

두 사람 사이 오고간 하얀 상자는 다름 아닌 ‘담배.’ 해당 편의점에서 근무 중이던 직원 A(45) 씨는 “담배 이름도 잘 모르는 할머니가 담배를 달라고 해서 좀 이상하다고는 생각했다"며 "할아버지 심부름이겠거니 했는데, 학생들이 시킨 줄을 몰랐다”고 당황해했다.

미성년자인 학생들이 노인에게 담배 심부름을 시킨 것이다. 심부름 대가로 노인이 손에 쥔 돈은 1000원. A 씨는 노인이 담배 두 갑을 사고 거스름돈 1000원을 가져갔다고 했다.

흡연 청소년들 사이에서 노인에게 심부름값을 주고 담배 심부름을 시키는 수법이 유행하고 있다(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일탈 청소년들의 ‘담배 구하기 작전’이 진화하고 있다. 미성년자라 구입할 수 없는 담배를 길에서 만나는 ‘노인’에게 푼돈을 주고 심부름시키는 수법까지 등장했다. 심부름 대가는 담배를 사고 남은 거스름돈. 거래에 쓰이는 단위는 주로 5000원, 1만 원권. 4500원짜리 담배 한 갑은 5000원에서 남는 500원, 두 갑은 1만 원에서 남는 1000원이 수고비다. 담배 한 갑당 500원을 사례하는 게 시세라는 의미다.

어른들에게는 경악스러운 일이지만, 비행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수법으로 자리 잡은 듯 보인다. 고등학교 3학년 B 양은 “중학교 때부터 있던 일”이라고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심부름을 해주는 노인들을 ‘500원 할매’ 또는 ‘500원 할배’로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남성 노인보다는 여성 노인을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남성 노인들은 화를 내며 훈계하는 반면, 여성 노인들은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단다.

B 양은 “할아버지들은 시끄럽게 혼내는데, 할머니들은 별 이야기 안 하고 잘 사다 주신다. 특히 여자(여학생)들은 무조건 할머니한테만 가야 한다”며 “할머니들은 돈 버니 좋고 우리는 담배 생기니 편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다른 연령대에 비해 노인이 가장 만만하고, 여성 노인은 더욱 그렇다는 의미다. 행색이 초라한 노인일수록 이 같은 청소년들의 타깃이 될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적은 돈으로 매수(?)할 수 있고, 위협하기도 쉽다는 것이다.

상식 밖의 일이지만, 법적으로 청소년들을 처벌할 방법은 없다. 청소년에게 담배를 판매한 업주나 구입을 대리한 성인은 처벌받지만, 미성년자를 처벌할 근거는 아직 없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신고를 받고 출동하더라도 애매한 상황이 많다. 심부름시킨 청소년들은 지구대에서 훈계하거나, 부모나 학교 측에 연락해 인계한다”면서도 “참 씁쓸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담배를 태우기 위해 할아버지뻘 노인들에게 500원을 쥐여주며 심부름을 시키는 아이들. OECD 국가 노인 빈곤율 1위, 노인 자살률 1위를 기록 중인 2018년 대한민국의 씁쓸한 자화상이다.

취재기자 정인혜  reporter1@civic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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