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장면은 없지만, 여전히 무서운 영화 <애나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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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장면은 없지만, 여전히 무서운 영화 <애나벨>
  • 부산광역시 북구 안수진
  • 승인 2014.10.17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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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 공포영화가 제철인 여름을 한참 넘기고 개봉된 영화<컨저링>은 공포 영화로는 전례 없는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무서운 장면 없는 무서운 영화’라는 문구로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성공한 <컨저링>은 총 누적 관객 수 800만을 돌파했고, 영화<식스 센스>를 제치고 국내에서 가장 많은 관객을 모은 공포 외화에 등극했다.

<컨저링>은 새집으로 이사한 어느 가족이 그곳에서 기이한 일들을 겪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영화 내내 이어지는 긴장감이 손에 땀을 쥐게 하지만, 많은 관객들을 최고의 공포로 몰아넣은 것은 엉뚱하게도 영화 사이사이에 아주 잠깐 등장하는 소녀 인형이었다. 인형은 영화 배역으로 치면 단역 혹은 엑스트라 급일 정도로 비중이 적었지만, 섬뜩한 눈빛과 괴기스런 표정으로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번에 <컨저링>의 인기를 등에 업고 스핀오프(spinoff: 인기를 끈 영화나 소설의 등장 인물을 배경으로 새로 창작된 작품)로 탄생한 것이 그 소녀 인형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애나벨>이다. <애나벨>은 컨저링 사건 발생 1년 전, 애나벨이라는 소녀 인형이 저주에 걸린 이유에 대해 이야기한다. <컨저링>의 속편이라는 것만으로도 이미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믿고 보는 영화가 됐는데, 과연 <컨저링>의 신화를 그대로 이어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지금까지의 공포영화는 귀신이 등장하거나 무서운 장면들로 시각적인 공포를 자극한 반면, <컨저링>과 <애나벨>은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영화 내내 관객들의 심리적인 공포를 자극한다. 무언가 튀어나올 타이밍이라고 느끼는 순간이 번번이 빗나가고, 예상치도 못한 장면에서 “악!”소리가 나게 만드는데, <컨저링>이 상영할 당시 화제를 모았던 ‘박수 숨바꼭질’ 씬은 특히 압권이다. 박수 숨바꼭질은 술래의 눈을 가리고 나머지 사람들이 박수를 치면, 술래가 박수 소리를 듣고 찾아내는 게임이다. <컨저링>에서 막내딸 로리와 엄마 캐서린이 게임을 하는데, 영화 속 분위기가 갑자기 진공상태에 있는 것처럼 고요해진다. 그리고는 음산함을 느낄 새도 없이 갑자기 장롱 속에서 박수 소리가 들리는데, 적막함 속에서 불쑥 튀어나온 박수 소리에 객석 곳곳에서 비명과 탄식이 쏟아지기도 했다.

<컨저링>과 <애나벨>의 스토리 자체는 여느 공포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귀신들린 집에 이사 온 가족과 그들에게 벌어지는 기이한 일들, 악령이 깃든 무서운 인형과 퇴마사들의 엑소시즘 역시 진부하다고 할 수 있는 소재들이다. 그러나 감독은 다소 뻔할 수 있는 이야기에 60-70년대라는 고전적인 시대적 배경을 가미함으로써 클래식 공포영화에 익숙하지 않은 10대와 20대의 젊은 관객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간다.

이렇게 기존 공포영화들의 틀을 살짝 비껴간 연출이 신선함을 주긴 하지만, 1편보다 나은 2편은 없다는 말이 있듯이 <컨저링>의 독특한 공포도 처음이라 무서웠지 <애나벨>에선 식상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무서운 장면 없이 무서운 것, 적막함이 흐를 즈음에 불쑥 튀어나오는 공포, 그리고 고전적인 시대 배경 역시 전작 <컨저링>에서 맛 봤기 때문에 이 이상 무엇이 더 새로울 수 있을까?

그러나 <애나벨>은 우려를 단번에 잠재운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무서운 장면 없이 무서울 줄 알았는데, 오히려 무서운 장면이 나오고, 동시에 <컨저링> 특유의 고요하지만 섬뜩한 사운드가 더해져 한층 업그레이드된 공포를 선사한다. 영화의 막바지에서 악령의 모습을 드러냈던 <컨저링>과는 달리, 영화 초중반부터 이미 눈에 보이는 공포의 대상이 영화 내내 관객의 눈을 괴롭힌다.

애나벨 인형에 씌어 있던 악령이 어린아이의 모습을 한 채 빠른 속도로 정면을 향해 뛰어오는 씬이 있는데, 이 장면에서 관객들은 너무 놀란 나머지 들고 있던 팝콘을 사방으로 날려버린다. 영화가 끝나고 상영관 바닥 사방에 널브러져 있는 팝콘들이 <컨저링>을 능가하는 <애나벨>의 더욱 짜릿한 공포를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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