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 블럭에 온갖 장애물, 신호등 음향기는 먹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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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 블럭에 온갖 장애물, 신호등 음향기는 먹통
  • 취재기자 강민아
  • 승인 2013.12.16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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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구실 못하는 시각장애인 보호시설...되레 위험에 내몰아

시각장애인 윤가람(30) 씨는 노란색의 유도블럭을 따라 보도를 걷다가 누군가 보도 위에 세워놓은 오토바이에 걸려 크게 다쳤다. 또한 윤 씨는 길 가던 행인이 들고 있던 장바구니에 부딪힌 적이 있다. 그런데 하필 바구니 속에 있던 뾰족한 것에 찔려 피가 나는 수모도 당했다. 대부분 시각장애인들은 혼자 다니기를 꺼려한다. 윤 씨는 “시각장애인들이 안전하게 다닐 수 있게 사람들이 우리를 조금만 더 배려해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차도와 보도의 높이 차이를 없앤 횡단보도의 유도블록도 시각장애인들에게는 위험천만이다. 시각장애인 이상훈(35) 씨는 휠체어 장애인들을 위해 차도와 보도의 높이 차이를 없앤 것은 이해하지만, 도로 턱 경계가 없으니 유도블록을 따라 차도로 시각장애인을 직행시킬 수도 있는 아찔한 경우가 일어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만든 시설이 오히려 우리를 위험으로 내모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 음향기까지 연결되어 있지 않은 유도블록 (사진: 취재기자 강민아)

길 위의 시각장애인들이 위험하다. 보도 위의 유도블럭, 횡단보도의 신호등음향기 등이 제 구실을 못하고 있는 것은 물론, 시각장애인들에게 부상을 안기기도 한다. 일반인들이 거리의 시각장애인을 보기 힘든 이유가 바로 그들을 돕기 위한 시설 부실에 있다.

부산 해운대장애인자립센터가 지난 3월부터 7월까지 부산의 154곳의 건널목 및 횡단보도를 조사한 결과, 신호등음향기는 전체 횡단보도 중 약 28.2%만 설치되어 있고 그 중에서 고장 난 채 방치된 신호등 음향기들이 많다고 밝혔다.

신호등음향기는 신호등의 색깔 변화를 구분하기 어려운 시각장애인에게 신호를 음성으로 안내해 주기 위해 만들어졌다. 시각 장애인들이 신호등 기둥 아래쪽에 설치된 음향기 버튼을 누르면, 신호등 신호가 바뀔 때 길을 건너도 된다는 안내 음성이 나오고, 시각장애인은 이 지시를 따르면 된다.

센터 측 조사 담당자인 시각장애인 이성훈 씨는 “저희 센터에 다니시는 분들 중에 음향기 버튼을 눌러도 안내 음성이 나오지 않아 한참을 돌아 길을 건너는 시각장애인 분들도 있었고, 이로 인해 가족의 도움 없이 밖으로 나가지 않는 분들도 있다”고 음향기 고장 문제를 지적했다.

이 씨는 이런 조사결과를 토대로 교통법과 여러 근거를 종합해 해결방안 및 대안을 제시하여 만든 공문을 부산시 교통관리과에 발송했지만, 부서의 대답은 자체 조사를 통해 고장 난 곳은 이미 고쳤다는 것이고 내년에 예산을 확대해 신규 설치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도로교통공단에서 신호등 음향기설치 및 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권기환 씨는 “지자체에서 주기적으로 신호등과 교통신호제어기를 검사하면서 음향신호기도 같이 검사를 하는데, 신호등 음향기가 왜 고장 난 채 방치된다고 하는 건지 이해가 안 가고, 서로 간의 오해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신호등음향기 고장 중 가장 흔한 것은 음향기의 버튼 불량이다. 권 씨는 “주로 일반인들이 이쑤시개 같은 이물질을 버튼 틈새에 끼워놓거나, 술 취한 분들이나 어린이들이 발로 차는 것이 고장 원인이다”라며 “고장 방지를 위해서는 사람들의 인식이 중요하다”고 했다.

대학생 백석진(23) 씨는 신호등 음향신호기가 고장 났을 경우 시각장애인이 대처하기가 힘들다는 점을 지적했다. 백 씨는 음향신호기 고장을 발견하는 사람들은 주로 시각장애인들이고 이들이 고장을 발견했다 해도 신고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점을 지적했다.

한편 시각장애인들의 또 다른 장애물은 ‘볼라드’이다. 볼라드란 차량이 보도에 진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세워놓은 원통형 말뚝을 말한다. 횡단보도에 볼라드가 세워져 있는 경우, 지자체는 시각장애인이 인지할 수 있도록 점형블록을 설치해야 한다. 그래야 시각장애인들이 전방에 볼라드가 있음을 인지하여 이에 걸려 넘어지는 일을 피할 수 있지만, 일반인들도 무심코 길을 걷다 부딪히는 것이 볼라드이다.

경성대학교에 재학 중인 김현지(24) 씨는 학교 가는 길에 볼라드에 부딪혀 무릎이 멍든 적이 있다. 물론 스마트 폰을 보느라 주의하지 못한 잘못이 있지만, 그녀는 “시각 장애인들은 일반인들보다 다칠 위험이 더 클 것 같다”고 우려했다.

도로교통법에는 볼라드에 부딪혀도 충격을 줄일 수 있게 고무재질을 써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이미 설치되어 있는 대부분의 볼라드가 화강암 재질로 되어 있어, 모든 볼라드를 바꾸는 데는 오랜 시간과 비용이 든다.

▲ 인도 위의 설치된 차량진입억제용 말뚝인 볼라드 (사진: 취재기자 강민아)

도로교통공단 권기환 씨는 “각 지자체의 예산에 따라 신호등 음향기, 유도블록, 볼라드 등이 관리되고 있어 많은 요구사항들을 한꺼번에 수용하기에 힘든 점이 있다”며 시각장애인들이 불편하게 느끼는 부분들은 점점 개선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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