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경계 장애인’의 희망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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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경계 장애인’의 희망 메시지
  • 취재기자 김혜련
  • 승인 2013.05.13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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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계 장애인’ 안윤성(24) 씨가 카페에 앉아 있다(사진: 김혜련 취재기자)

검게 탄 피부, 짧은 머리, 스포틱한 용모에 잘 어울리는 선글라스까지..

얼핏 보면  아주 평범한 남자 대학생이다. 하지만 그에겐 일반 학생과는 다른 '차이점'이 하나 있다. 실외는 실내든 언제나 선글라스를 끼고 생활한다는 점이다.

 경성대학교 일어일문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안윤성(24) 씨. 그가 늘 선글라스를 끼는 데는 사정이 있다. 그의 선글라스는 멋을 내기 위한 것이 아니다. 특이 질환으로 앞을 잘 볼 수 없는 그의 눈을 보호하고 시력을 보조하기 위한 도구다.  

안 씨가 앓고 있는 병 이름은 ‘황반변성’. 황반이란 눈의 안쪽 망막 중심부에 위치한 신경조직으로 물체의 상이 맺히는 곳이며 사람의 시력에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 황반에 여러 가지 원인으로 변성이 일어나 시력장애를 일으키는 것이 황반변성이다. 현재 이 질환은 수술법도 없어 한번 증상이 나타나게 되면 완전 치유가 안되며 결국엔 실명하기 쉽다. 황반변성은 일단 증세가 나타나면 앞을 제대로 볼 수 없는 병이지만, 완전 실명 전까지는 장애로 판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 병의 환자는 장애인으로서 어떤 혜택도 누릴 수 없다. 비장애인도 아니고 장애인도 아닌 '경계 장애인'인 것이다.

하지만 안 씨는 언제나 밝고 명랑하다. 그의 목소리는 어느 누구보다 자신감이 넘치고 당당하다.

● 중학교 1학년, 불치병을 알게 되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시력이 좋은 편이 아니었던 윤성 씨는 처음부터 이 병을 앓았던 것은 아니었다. 중학생이 된 후 시력이 나빠져 부모의 권유로 안경을 맞추러 갔던 윤성 씨는 안경을 껴도 자신의 시력이 안 맞춰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윤성 씨가 찾았던 동네 병원은 더 큰 대학 병원을 가라고 권유했고, 그때서야 그는 자신에게 황반변성이라는 난치병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처음 황반변성을 알게 됐을 때는 햇빛을 봐도 눈이 부시지 않았고, 시력 또한 0.3 정도로 안경을 끼면, 보행 등 일상생활에 큰 불편이 없었다.

그는 “중고등학생 시절까지만 해도 이렇게 시력이 나쁘지 않았어요. 수능을 칠 때도 글자가 뚜렷이 보이는 건 아니었지만, 아예 글자가 안 보이는 게 아니기 때문에, 시각장애인 전형으로 치지 않았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대입시에서 어떤 장애인 혜택도 받지 못했고, 일반인과 똑같은 전형을 통해서 경성대학교에 입학했다.

현재 윤성 씨의 시력 상태는 점점 악화되어 멀리 있는 것도 잘 안 보이고 가까이 있는 것도 잘 안 보인다. 멀리 있는 것은 쌍안경으로 보아야 식별이 가능하고, 가까이 있는 것은 800만 화소 이상의 스마트 폰이나 사진기로 확대해야 읽힐 수 있다. 또한 햇빛이나 형광등 불빛을 직접 보면 눈이 극도로 부셔, 그는 실내외를 막론하고 항상 선글라스를 껴야만 한다.

▲ 윤성 씨는 수업을 들을 때 쌍안경으로 멀리 있는 칠판을 본다(오른쪽 사진: 김헤련 취재기자). 책을 볼 때는 카메라나 휴대폰을 사용해 글자를 확대해서 본다(가운데 및 왼쪽 사진: 김혜련 취재기자).

그는 “다른 사람들은 10분 만에 끝낼 공부를 저는 30분이 걸린다고 보면 되요”라고 말했다.

윤성 씨가 시험을 칠 때는 미리 교수에게 양해를 구하고, 글자가 확대된 시험지로 시험을 본다. 또한 수업을 들을 때는 선글라스를 낀 이유, 쌍안경이나 카메라를 수업 중에 사용하는 이유를 미리 교수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사용한다.

윤성 씨는 시각장애인 1, 2급인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앞이 아예 보이지 않는데도 다 해내는 것을 보고 현재의 자신의 상태를 탓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그런 사람들을 보고, 저도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이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시각장애인에 비하면 제가 하는 노력은 아무 것도 아니에요”라고 말했다.

● 휴학, 고비를 겪게 되다

현재 일어일문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윤성 씨는 대학교 2학년 시절, 여행가이드 자격증 준비를 위해 휴학한 적이 있다. 윤성 씨는 이 시기를 계기로 글자를 볼 때 직접 눈으로 보고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 억지로 작은 글씨를 보는 훈련을 했다고 한다. 그게 그의 시력을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그가 휴학시절 겪었던 시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자신의 용돈을 스스로 마련해보겠다는 의지로 아르바이트에 도전하게 된 윤성 씨는 지원하는 곳마다 퇴자를 맞았다. 이유는 하나,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일하는 것이 힘들겠다는 것이다. 현재 대학교 4학년생인 그는 아르바이트를 통한 구직 실패 경험으로 용기를 잃은 상태다. 그는 “졸업 후, 직장을 구할 땐 어떻겠어요. 이제 곧 취업을 해야 될 텐데. 저에겐 이 병이 큰 장애물이죠. 그렇다고 제가 아예 앞을 볼 수 없는 시각 장애인도 아니니, 저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사람이란 생각이 많이 들어요”라고 안타까운 심정을 전했다.

● 장애인과 비장애인 그 사이에서

최근 윤성 씨와 같이 장애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으로 지정이 안되어 장애인 혜택을 받을 수 없는 ‘경계 장애인’들이 늘어남에 따라, 국가가 의학적 판단으로만 복지 서비스를 결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조선일보가 4월 16일자에서 보도한 바 있다. 그래서 국가는 장애인 당사자가 처한 환경과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의학적 판단에만 의존해 결정해온 현행 장애 등급 결정 제도를 대폭 손질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장애 판정이 이루어지는 과정의 대부분은 원인이나 병명에 상관없이 등급기준에 의거하여 의사가 판정한다. 그러나 2012년부터 장애 판정 과정에서 의료기관(의사)의 권한이 축소됐다. 하지만 여전히 의학적 기준에만 전적으로 기대어 장애 유형과 등급을 결정한 뒤 각종 장애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금의 장애등급제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다.

현재 윤성 씨의 시력은 안경을 낀 상태로 0.1로 시각장애인 4급 기준인 ‘시력 교정 후 좋은 한쪽 눈의 시력’인 0.1 이하에 맞지만, 그가 장애 판정을 받으려고 했던 당시, 의사가 그의 황반변성 진행 상태는 장애로 판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장애 등급을 받지 못했다. 또한 그의 눈 상태가 실명 상태가 아니라는 이유도 포함됐다.

보통 시각장애인 6급을 판정받는 경우는 ‘안경, 렌즈 등으로 굴절 이상을 교정한 후 나쁜 한쪽 눈의 시력’이 0.02 이하인 경우를 말한다. 그러나 실제 교정된 눈의 시력이 0.02 수준이면, 해당되는 눈의 상태는 거의 실명 수준이라고 한다. 한 쪽 눈의 시력이 실명되어야만 시각장애인 6급 정도를 판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 현행 장애등급 판정기준의 실제이다.

이에 대해, 윤성 씨는 “저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의학적인 판단으로만 등급을 결정하기보다 조금 더 현실적인 방안으로 혜택을 받을 수 있었으면 해요”라고 말한다. 그는 “항상 제 힘으로 바꿀 수 없는 현실을 부정하면서 살아갈 순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요. 무조건적인 혜택은 아니지만, 불편한 사람들이 조금 더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덧붙였다.

현재 부산의 한 장애인 복지관에서 장애인 활동보조를 돕고 있는 복지사 이선미(38) 씨는 “불편한 사람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고 싶은 건 사실이지만, 사회에 가짜 장애인들 또한 많아 장애등급제 폐지가 힘든 것 같다”며 덧붙여 “의학적인 기준으로만 판단하기에는 노인 분들의 경우나 소득 수준이 낮은 사람들에겐 더 많은 활동 보조 서비스가 필요한 건 사실이다”고 말했다.

복지부 장애인정책과 정충현 과장은 "현행 장애등급제의 문제점과 개선 필요성에 대해서는 장애인들과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한 만큼, 최대한 견해차를 좁혀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도록 하겠다"고 장애인 대안언론 에이블뉴스를 통해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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