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통 빈 집..급속한 슬럼화로 곳곳에 쓰레기 더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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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빈 집..급속한 슬럼화로 곳곳에 쓰레기 더미만
  • 취재기자 조나리
  • 승인 2013.07.02 16: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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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화의 그늘, 우암 달동네 르포 <상>

한 아이가 태권도 학원 승합차에서 내려 눈 앞에 있는 쓰레기 더미를 몇 분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기자가 먼저 인사를 건네자, 곧 울 것만 같았던 아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반갑게 다가왔다. 여기 빈 집이 많냐는 질문에, 아이는 "! 이 골목에서 우리 집이랑 세 집 빼고는 다 빈 집이에요. 여기도, 여기도 다 비었어요"라고 말했다. 소년의 밝은 목소리가 왠지 슬프게 느껴졌다. 

부산 51번 시내버스를 타고 부산시 남구 우암동 우암뉴서울아파트 정류장에서 내리자, 크고 작은 아파트 단지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파트를 등지고 큰 찻길을 따라 걷다가 우암초등학교 뒤로 펼쳐진 오르막길로 향했다. 기울어진 땅위로 군데군데 세워진 집 옆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주황색 마을버스가 내려오고 있었다. 어디까지 올라가면 이 동네의 끝을 볼 수 있을는지. 가파른 길을 20분가량 올라 온 몸에 땀이 배어나올 즈음, 낡고 허름한 주택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 우암동 시장 골목(사진:취재기자 조나리)
주택가 골목 사이로 끝이 없어 보이는 계단이 펼쳐져 있었다. 녹이 슬고, 금이 가 보기에도 30년은 족히 돼 보이는 집들이 계단 양 쪽으로 외롭게 서있었다. 얼핏 봐서는 사람이 사는지 아닌지 가늠할 수가 없는 집들. 대문 앞에 꽂혀있는 수십 개의 고지서와 깨진 유리창만이 그 답을 말해주고 있었다. 골목 안으로 조금 더 들어가자 쓰레기가 쌓여 있는 빈 집들이 보였다. 부서지고 무너진 집의 입구를 막고 있는 '쓰레기산으로 집 안에 들어가기가 힘들었다. 흉가를 방불케 하는 모습에 대낮인데도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시장도 마찬가지였다. 상인과 손님의 익살스런 실랑이가 벌어지는 전통시장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한 집 걸러 두세 집이 문을 닫았다. 채소 가게 주인은 가게 앞에 앉아 동네 주민과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시장이 왜 이렇게 다 문을 닫았냐고 묻자, 그들은 말도 마라며 손을 내저었다. 시장이 이렇게 된 지도 오래고, 뒷골목으로 가면 고양이집이 따로 없다는 것이다. 햇볕도 잘 들지 않는 시장 골목에는 장사를 했다는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60~70년대를 재현해놓은 듯한 가게 터에는, 상인의 말대로 고양이만이 주인 행세를 하고 있었다.

우암동 한 켠. 이 곳은 20년 전만해도 여느 동네처럼 사람 냄새가 짙게 풍겼다. 인근에 부산 감만항과 7부두가 있어 목재 회사와 철강회사 직원들이 많이 살았다. 산을 끼고 있는 우암동의 북서쪽에도 작은 집들이 빽빽이 생겨났다.

하지만 약 20년 전부터 시작된 '아파트 건설 열풍'에서 상대적으로 지대가 높은 우암 2동은 소외되기 시작했다. 1984년부터 1999년까지, 15년간 우암동 일대에 세워진 아파트만 11단지. 이 중 대부분은 우암1동에 지어졌다. 이미 너무 낡아 손 대기도 골치 아픈 집을 고치는 것보다 새로 생긴 집으로 가는 것이 간편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그렇게 '우암달동네'를 떠났다.

50년간 우암동에서 약국을 운영해 온 박승희(75) 씨는 "10년 전부터 (주변에) 아파트 짓는다고 젊은 사람부터 시작해서 다 나갔지. 여기는 70년대나 지금이나 발전이 없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재개발 소식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재개발만 시작되면 이 일대를 다 밀어 버릴 거라는 생각에 집을 떠나는 발길은 더욱 분주해졌다. 집을 떠난 뒤 따로 철거하거나 되팔 필요도 없었다. 떠나지 않은 사람들도 집에 손을 대지 않았다. 이미 노후화돼 수리가 필요한 곳이 많았지만, 주민들은 어차피 재개발 될텐데라는 마음으로 불편을 안고 살아왔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낸 게 벌써 10년이 흘렀다.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재개발할 방법이 없으면 하지를 말아야지. 10년이 넘게 질질 끌어오니깐 도로정비사업 하나, 하수구 정비 하나 못한다정부가 여길 방치했지. 우암동 슬럼화의 주범은 시()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사람이 사는 집보다 빈 집이 더 많다는 게 주민들의 전반적인 대답이었다. 빈 집이 늘어갈수록 남은 사람들의 걱정은 커져만 갔다. 뉴스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강력 범죄 사건이 보도되는데, 그게 바로 내 옆집, 뒷집에서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몇 해 전 부산의 사상구 빈 집터에서 발생했던 '김길태 사건'은 이들의 걱정에 한 몫을 더했다. 어두운 밤길에 이 곳 주민들을 지켜줄 거라곤 가로등 불빛 하나. 할머니들은 밤이 되면 사람이 무서워 절대로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 쓰레기더미가 되어가는 빈 집(사진:취재기자 조나리)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방치된 빈 집은 조금씩 쓰레기장으로 변해갔다. 나서서 쓰레기를 치울 주인도 없었다. 주민들은 동사무소에서 청소하러 나오는 사람도 없다며, 옆집 사람들이 가끔 쓰레기를 치우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고 했다. 날씨가 더워지자 쌓인 쓰레기 더미에서 나온 악취는 더욱 심해졌다. 앞집, 옆집이 다 빈 집이라는 왕송악(73) 할머니는 냄새도 냄새지만 벌레가 우글우글해. 쓰레기에서 바퀴벌레가 얼마나 많이 나온다고라며 불만을 털어놓았다.

우암동 '빈집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연세가 지긋한 노인들이다. 그래서인지 열악한 환경에도 주민들은 별 대책이 없다. 환경을 개선하려는 의지도 없다. 이 곳 주민들은 10년 전부터 들려온 재개발 사업에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된 지 오래다.

"방법이 없지. 누가 여기와서 살라고 하겠노. 내가 죽으면 우리 집도 빈 집인데 뭐..”라고 말하는 한 할머니의 목소리에는 체념섞인 한숨만 짙게 깔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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