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한 명에 교사도 한 명... "그래도 꿈은 영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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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한 명에 교사도 한 명... "그래도 꿈은 영근다"
  • 취재기자 신혜화
  • 승인 2013.06.10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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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통영 앞바다 외딴섬 두미도 두남분교 르뽀
▲ 두남분교의 전경(사진: 취재기자 신혜화).

여기가 과연 학교가 맞나 싶다. 교실은 단 한 칸. 운동장도 손바닥만 하니 웬만한 시골집 마당 정도의 크기다. 운동장 바닥에는 모래가 아닌 흙이 깔려 있다. 농구 골대 하나만 덜렁 있을 뿐, 그 흔한 축구 골대 하나 없다. 도시의 초등학교와는 비교도 안 되게 썰렁한 분위기다. 초등학생이면 한창 밝게 뛰어놀아야 할 텐데 이런 곳에서 어떻게 공부하나 싶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이것은 쓸데없는 걱정일 뿐, 이 곳 두남분교에서는 희망찬 꿈이 자라나고 있었다.

▲ 배를 타고 본 두미도의 전경. 오른쪽 언덕 너머로 학교가 보인다(사진: 취재기자 신혜화).

원량초등학교 두남분교는 통영에서 약 34km 떨어진, 통영 최남단에 위치한 섬 ‘두미도’에 있는 학교로 현재 전교생은 단 한 명 뿐이다.

● 앞에서도 일등, 뒤에서도 일등. 도시 아이들은 누리지 못하는 것들

“저는 우리 학교에서 전교 일등이랑 꼴등을 동시에 하고 있어요. 재미있죠?”

이건 교문에 들어서는 기자에게 4학년 신주호(11) 군이 개궂은 웃음을 지으며 건낸 첫 인사다. 햇볕에 검게 그을린 피부와 전체적으로 동글동글한 주호의 인상이 영락없이 순박한 섬마을 소년의 모습이었다.

▲ 교실 뒤편에는 주호와 선생님의 사진, 주호가 그린 그림으로 가득하다(사진: 취재기자 신혜화).

혼자 쓰기에는 넓어 보이는 12평 정도의 교실 뒤편은 주호가 직접 그린 그림, 선생님과 다정하게 찍은 사진들로 꾸며져 있다. 사방에 널린 삼단 책꽂이에 꽂힌 책은 무려 500여권이나 된다. 또 컴퓨터 두 대와 전자 피아노, 리코더나 기타 학습 도구들은 모두 주호의 것이다. 따라서 이곳은 교실이라기보다는 마치 주호를 위한 방 같은 느낌을 준다.

▲ "어때요? 잘 그렸죠?” 주호가 미술대회에서 상을 받은 그림을 들어 보이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신혜화).

“이거는 얼마 전에 욕지도에 있은 본교 미술 대회에서 그렸던 건데 3등해서 상도 받았어요. 조금만 더 입체적으로 그리고 싶었는데...”

교실 구경을 시켜주던 주호가 몸집만한 스케치북을 꺼내 보이며 말했다. 제대로 된 미술 학원을 다닌 적이 없는데도, 주호는 제법 그림을 잘 그렸다.

“아차! 학교 오면 먼저 물부터 줘야되는데 까먹고 있었다!”

▲ 참외가 잘 자랄 수 있도록 얼마 전 참외 껍질을 비료로 주었다는 주호(사진: 취재기자 신혜화).

 분주하게 교실을 나가는 주호를 뒤따라 갔더니 낡은 물뿌리개에 물을 채워와 학교 뒤편의 조그만 텃밭에 물을 뿌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 심어진 식물이 시들시들했다.

“처음에는 이틀에 한 번씩 물을 줬는데, 요즘에는 사실 귀찮아졌어요. 물을 안 줘서 안 크는게 아니고 화장실 옆이라 땅이 안 좋아서 그래요.”

▲ “그래도 고추는 제법 자란 것 같은데요?”(사진: 취재기자 신혜화)

 

핑계가 아니냐며 되묻자, 주호는 고개를 저으며 선생님도 그러셨다며 머쓱하게 웃어보인다. 물뿌리개를 화장실에 가져다 놓으며 주호는 “작년에는 화장실도 파란종이 빨간종이 귀신이 나올 것 같은 재래식이었는데, 올해 수세식으로 바뀌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화장실이 바뀌었어도 큰 볼 일은 무조건 집에서 본다고 한다.

“왜냐하면 학교 화장실은 아직도 귀신이 살고 있을 것 같아서 무서워요.”

 

● 선생님 한 명, 학생 한 명, 학교에 남은 단 두 사람

▲ 운동장 한 켠에 놓여있는 박 선생님과 주호의 자전거. 날씨가 좋을 때는 두사람이 두미도 자전거 라이딩을 즐긴다고 한다(사진: 취재기자 신혜화).

작년까지만 해도 두남분교에는 6학년 학생이 한 명 더 있었으나 졸업을 하면서 섬을 떠났다고 한다. 올해부터 혼자 학교를 다니게 된 주호에게 소감을 물었더니 제법 어른스러운 답변을 했다.

“외롭다고 생각하면 더 외로운걸요. 그래도 학교 행사가 있을 때마다 본교에 가면 친구들이 많으니까 괜찮아요. 심심할 땐 선생님과 자전거 타고 섬 한 바퀴를 돌기도 하고, 개구리나 곤충을 잡으러 가기도 해요. 가끔은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하지만 (엄마는) 이미 늦은 것 같아요.”

쑥스러운 듯 웃지만, 주호의 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외로워 보였다. 혼자 쓰기에는 교실이 넓은 편이라 더욱 그랬다. 어느 분교의 상황이건 마찬가지겠지만 두남분교도 학생 수가 적어서 폐교의 위기를 여러 번 겪었다.

두남분교에 재직 중인 박천주(43) 선생님은 “교과부의 정책에 따라 전교생이 60명 이하인 소규모 학교의 경우 언제든지 강제 통폐합이 될 수 있는 처지이기 때문에, 이 학교도 강제폐교의 위험에 놓여있다”며 “주호가 졸업할 때까지만큼은 마을 주민 분들이 적극적으로 학교를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 오카리나 연주법을 까먹었다는 주호에게 시범을 보여주고 있는 박 선생님(사진: 취재기자 신혜화).

또 박 선생님은 수업 방식에 대해 “학생과 교사가 매일 일 대 일로 수업을 진행하다보니 쉽게 친근해지고, 이제는 가족 같은 분위기가 되었다”며 장단점은 “주호가 모르는 부분은 이해할 때까지 집중 지도를 할 수 있지만 예체능은 합동식 수업이 많아서 지도를 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남자라도 악기 하나 쯤 제대로 다룰 줄 알아야 한다는 박 선생님. 음악 시간이 되자 주호와 함께 음악책을 펼치고 오카리나를 연주했다. 멀리서 보면, 마치 '아빠와 아들' 같은 모습이다.

● 주호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하고 소박한 바람들

점심 시간이 되자 선생님은 교무실 안에 위치한 부엌에서 주호를 위해 손수 점심밥을 만들었다. 매일매일 선생님이 지어주는 급식을 먹는 일은 오직 주호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함이다.

▲ 교무실 안에 위치한 박 선생님과 주호의 작은 급식실. 웬만한 가정집 부엌보다 깔끔하게 정리되어있다(사진: 취재기자 신혜화).

주호는 “선생님께서 해주시는 건 뭐든 다 맛있어서, 저번엔 엄마가 끓여주는 라면보다 선생님표 라면이 훨씬 맛있다고 말해, 엄마한테 혼난 적도 있다”고 한다. 박 선생님은 그런 주호가 막내아들보다 더 귀엽다.

주호에게는 꿈이 있다. “아빠가 축구와 야구를 좋아해서 TV로 경기 중계를 많이 보는데, 그런 운동을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며 “친구들을 많이 사귀면 이런 운동을 같이 해보는 게 꿈”이라며 웃었다.

한창 바라는 게 많을 나이라서 다른 소원은 없냐고 물었더니, 주호는 “내년에는 혼자 학교를 다니지 않도록 우리 학교에 전학생이 왔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한다.

▲ 선착장에서 바라본 풍경. 저 멀리 학교가 보인다(사진: 취재기자 신혜화).

또 작은 바람이지만 “따뜻한 피자와 햄버거를 먹고 싶다”며 “피자는 두미도로 들어오는 배를 통해서만 시켜 먹을 수 있는데, 항상 피자를 받을 때면 딱딱하게 굳어있어서 별로 맛이 없다”고 준호는 전했다.

육지 소년에게는 일상의 일이지만, 섬마을 소년 주호에게는 이게 소박하고 작은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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