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과연 학교가 맞나 싶다. 교실은 단 한 칸. 운동장도 손바닥만 하니 웬만한 시골집 마당 정도의 크기다. 운동장 바닥에는 모래가 아닌 흙이 깔려 있다. 농구 골대 하나만 덜렁 있을 뿐, 그 흔한 축구 골대 하나 없다. 도시의 초등학교와는 비교도 안 되게 썰렁한 분위기다. 초등학생이면 한창 밝게 뛰어놀아야 할 텐데 이런 곳에서 어떻게 공부하나 싶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이것은 쓸데없는 걱정일 뿐, 이 곳 두남분교에서는 희망찬 꿈이 자라나고 있었다.
원량초등학교 두남분교는 통영에서 약 34km 떨어진, 통영 최남단에 위치한 섬 ‘두미도’에 있는 학교로 현재 전교생은 단 한 명 뿐이다.
● 앞에서도 일등, 뒤에서도 일등. 도시 아이들은 누리지 못하는 것들
“저는 우리 학교에서 전교 일등이랑 꼴등을 동시에 하고 있어요. 재미있죠?”
이건 교문에 들어서는 기자에게 4학년 신주호(11) 군이 개궂은 웃음을 지으며 건낸 첫 인사다. 햇볕에 검게 그을린 피부와 전체적으로 동글동글한 주호의 인상이 영락없이 순박한 섬마을 소년의 모습이었다.
혼자 쓰기에는 넓어 보이는 12평 정도의 교실 뒤편은 주호가 직접 그린 그림, 선생님과 다정하게 찍은 사진들로 꾸며져 있다. 사방에 널린 삼단 책꽂이에 꽂힌 책은 무려 500여권이나 된다. 또 컴퓨터 두 대와 전자 피아노, 리코더나 기타 학습 도구들은 모두 주호의 것이다. 따라서 이곳은 교실이라기보다는 마치 주호를 위한 방 같은 느낌을 준다.
“이거는 얼마 전에 욕지도에 있은 본교 미술 대회에서 그렸던 건데 3등해서 상도 받았어요. 조금만 더 입체적으로 그리고 싶었는데...”
교실 구경을 시켜주던 주호가 몸집만한 스케치북을 꺼내 보이며 말했다. 제대로 된 미술 학원을 다닌 적이 없는데도, 주호는 제법 그림을 잘 그렸다.
“아차! 학교 오면 먼저 물부터 줘야되는데 까먹고 있었다!”
분주하게 교실을 나가는 주호를 뒤따라 갔더니 낡은 물뿌리개에 물을 채워와 학교 뒤편의 조그만 텃밭에 물을 뿌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 심어진 식물이 시들시들했다.
“처음에는 이틀에 한 번씩 물을 줬는데, 요즘에는 사실 귀찮아졌어요. 물을 안 줘서 안 크는게 아니고 화장실 옆이라 땅이 안 좋아서 그래요.”
핑계가 아니냐며 되묻자, 주호는 고개를 저으며 선생님도 그러셨다며 머쓱하게 웃어보인다. 물뿌리개를 화장실에 가져다 놓으며 주호는 “작년에는 화장실도 파란종이 빨간종이 귀신이 나올 것 같은 재래식이었는데, 올해 수세식으로 바뀌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화장실이 바뀌었어도 큰 볼 일은 무조건 집에서 본다고 한다.
“왜냐하면 학교 화장실은 아직도 귀신이 살고 있을 것 같아서 무서워요.”
● 선생님 한 명, 학생 한 명, 학교에 남은 단 두 사람
작년까지만 해도 두남분교에는 6학년 학생이 한 명 더 있었으나 졸업을 하면서 섬을 떠났다고 한다. 올해부터 혼자 학교를 다니게 된 주호에게 소감을 물었더니 제법 어른스러운 답변을 했다.
“외롭다고 생각하면 더 외로운걸요. 그래도 학교 행사가 있을 때마다 본교에 가면 친구들이 많으니까 괜찮아요. 심심할 땐 선생님과 자전거 타고 섬 한 바퀴를 돌기도 하고, 개구리나 곤충을 잡으러 가기도 해요. 가끔은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하지만 (엄마는) 이미 늦은 것 같아요.”
쑥스러운 듯 웃지만, 주호의 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외로워 보였다. 혼자 쓰기에는 교실이 넓은 편이라 더욱 그랬다. 어느 분교의 상황이건 마찬가지겠지만 두남분교도 학생 수가 적어서 폐교의 위기를 여러 번 겪었다.
두남분교에 재직 중인 박천주(43) 선생님은 “교과부의 정책에 따라 전교생이 60명 이하인 소규모 학교의 경우 언제든지 강제 통폐합이 될 수 있는 처지이기 때문에, 이 학교도 강제폐교의 위험에 놓여있다”며 “주호가 졸업할 때까지만큼은 마을 주민 분들이 적극적으로 학교를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박 선생님은 수업 방식에 대해 “학생과 교사가 매일 일 대 일로 수업을 진행하다보니 쉽게 친근해지고, 이제는 가족 같은 분위기가 되었다”며 장단점은 “주호가 모르는 부분은 이해할 때까지 집중 지도를 할 수 있지만 예체능은 합동식 수업이 많아서 지도를 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남자라도 악기 하나 쯤 제대로 다룰 줄 알아야 한다는 박 선생님. 음악 시간이 되자 주호와 함께 음악책을 펼치고 오카리나를 연주했다. 멀리서 보면, 마치 '아빠와 아들' 같은 모습이다.
● 주호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하고 소박한 바람들
점심 시간이 되자 선생님은 교무실 안에 위치한 부엌에서 주호를 위해 손수 점심밥을 만들었다. 매일매일 선생님이 지어주는 급식을 먹는 일은 오직 주호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함이다.
주호는 “선생님께서 해주시는 건 뭐든 다 맛있어서, 저번엔 엄마가 끓여주는 라면보다 선생님표 라면이 훨씬 맛있다고 말해, 엄마한테 혼난 적도 있다”고 한다. 박 선생님은 그런 주호가 막내아들보다 더 귀엽다.
주호에게는 꿈이 있다. “아빠가 축구와 야구를 좋아해서 TV로 경기 중계를 많이 보는데, 그런 운동을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며 “친구들을 많이 사귀면 이런 운동을 같이 해보는 게 꿈”이라며 웃었다.
한창 바라는 게 많을 나이라서 다른 소원은 없냐고 물었더니, 주호는 “내년에는 혼자 학교를 다니지 않도록 우리 학교에 전학생이 왔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한다.
또 작은 바람이지만 “따뜻한 피자와 햄버거를 먹고 싶다”며 “피자는 두미도로 들어오는 배를 통해서만 시켜 먹을 수 있는데, 항상 피자를 받을 때면 딱딱하게 굳어있어서 별로 맛이 없다”고 준호는 전했다.
육지 소년에게는 일상의 일이지만, 섬마을 소년 주호에게는 이게 소박하고 작은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