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내라, 유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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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라, 유승민!
  • 칼럼니스트 손동우
  • 승인 2017.05.07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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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니스트 손동우
칼럼니스트 손동우

2011년 3월 일본 도호쿠 대지진 참사가 발생했을 때 고통에 빠져있던 일본인들은 물론 세계인들을 감동시킨 언론보도가 있었다. 영국 일간신문 <인디펜던트> 3월 13일 일요일자 1면 기사가 바로 그것이었다.

이 신문은 1면 전체에 일본 국기를 싣고 태양을 상징하는 붉은 원 안에 일본어로 "힘내라 일본, 힘내라 도호쿠"라는 구호를 실었다. 붉은 원 바로 아래 일장기 여백에는 영어로 "포기하지 마세요, 일본. 포기하지 마세요, 도호쿠’(Don't give up, Japan. Don't give up, Tohoku)"라는 큰 글자를 넣었다. 물론 <인디펜던트>가 참사 소식 전달 자체를 소홀히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신문은 미증유의 재앙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일본인들을 따뜻하게 격려하고, 세계인의 동참을 호소하는 메시지로 뉴스를 시작함으로써 인류애라는 보편적 가치를 새삼스레 환기시켰다.

반면 대한민국의 신문들은 대부분 1면 머릿기사의 제목을 ‘일본 침몰’로 달았고, 어느 공중파 방송은 ‘일본 한류 열풍 타격’이라는 뜬금없는 뉴스를 내보내기도 했다. 또 어느 대형교회 원로목사는 “일본 국민들이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숭배와 무신론에 빠진 것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라는 섬뜩한 망언을 내뱉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수준을 드러낸 풍경들이었다.

당시 <경향신문> 편집국 부국장이었던 나는 <인디펜던트>의 1면을 보는 순간 턱하고 숨이 막히는 듯했다. 왜 우리는 이러한 기획기사를 생각도 하지 못했는가 하는 자책과, 뉴스 전달이라는 언론 본연의 사명을 넘어 인류애를 담아내는 안목에 대한 부러움이 한꺼번에 엄습했던 것이다.

<인디펜던트>의 ‘힘내라’ 구호가 갑자기 떠오른 것은 지난 2일 바른정당 소속 국회의원 13명이 전격적으로 탈당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이들은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자신들이 선출한 유승민 대선후보의 등에 칼을 꽂은 뒤 지금까지 ‘적폐세력’이라고 그토록 비난해왔던 친정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대선후보에 대해 지지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이들은 탈당의 명분으로 ‘보수 단일화’ ‘친북좌파세력의 집권 저지’ 등을 내세웠지만 결국은 자기살길 찾아 나왔다가 다시 살길 찾아 되돌아간 것일 뿐이다. 대의명분과는 동떨어진 자기부정이자 정당민주주의를 정면으로 짓밟은 폭거인 것이다. 갑자기 유승민에게 ‘힘내라’라는 격려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 솟귀면서 <인디펜던트>의 구호가 생각났다.

12명(13명중 황영철 의원은 탈당 의사를 번복하며 잔류하겠다고 밝혔다) 탈당파들과 한국당 홍준표 후보의 ‘막장 드라마’는 서로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유승민의 저조한 지지율에 당 소속 광역·기초 의원들이 탈당하는 등 지역조직이 와해되자 이들은 “이대로는 내년 지방자치단체 선거를 치를 수 없다”고 토로해왔다. 결국 이들의 진짜 목적은 보수층을 등에 업은 한국당에서 지방선거를 치르내고 3년 뒤 총선에 대비하는 등 정치생명을 연장하는 것이다. 또한 홍준표로서는 보수단일화라는 명분 아래 이들을 끌어들이면 눈앞의 대선은 물론 그 이후에도 자신의 당내 입지 강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유승민의 지지자는 아니다. 그러나 그가 아직 박근혜 대통령의 서슬이 퍼랬던 시절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외치며 최고권력과 정면으로 맞섰을 때 속으로 ‘참 괜찮은 보수 정치인이 나왔다’며 속으로 그의 결기를 높이 평가했다. 또한 박근혜의 국정농단을 비판하고 탄핵에 앞장섰으며, 결국 새누리당과 결별하고 개혁보수신당을 출범시켰을 때 진심으로 그의 정치적 성장을 기원했다. 제대로 된 보수정당의 존재야말로 정당정치를 건강하게 하며 사회 공동체 전체에게 유익하다는 평소의 믿음 때문이었다.

기회주의자 탈당파들의 ‘거사’로 유승민은 큰 위기를 맞았지만 오히려 예상밖의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탈당파들에 대해 비난 여론이 집중되면서 당원 가입과 후원금 지원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이를테면 ‘전화위복’의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여론의 응원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결국 유승민 본인의 얘기대로 ‘아직 남아 있는 배 12척’으로 개혁성과 품격을 갖춘 보수정당이라는 함대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인지는 전적으로 그 자신의 능력과 의지에 달려있다고 하겠다. 나는 유승민이 자신의 목표를 성취하기를 기원하면서 격려와 응원을 보내고 싶다. 아울러 그에게 몇가지 도움말을 건네고자 한다.

첫째, 유승민은 자신에게 ‘최초의 보수정당 건설’이라는 역사적 소명이 부여돼 있다는 사실을 무겁게 인식해야 한다. 내가 굳이 ‘최초’라고 표현한 까닭은 지금까지 이 땅에는 진정한 보수세력 또는 보수정당이 존재한 적이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입으로만 보수를 외쳤지 사실은 친일, 독재부역, 부정부패 등 온갖 죄악과 부도덕에 찌들고 찌든 ‘가짜 보수’ 집단들이 부귀영화를 누려왔고, 지금 이 순간에도 누리고 있다. 흔히 박근혜 세력의 파멸을 두고 ‘보수의 몰락’이라고 하지만 나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그들이야 말로 도저히 보수라고는 할 수 없는, 보수의 근처에도 갈 수 없는 반역사적 부패집단이었고, 인과응보와 사필귀정의 법칙에 따라 죄값을 치르고 있을 뿐이다.

진정한 보수의 창설을 위해서라도 유승민은 자신이 가짜 보수세력에 속해 있었고 그들을 위해 복무했다는 사실에 대해 다시 한 번 진심으로 반성하고 참회해야 한다. 유승민이 훌륭한 품성과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선국면에서 크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박근혜에 대한 국민들의 심판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절대다수는 박근혜 세력에 대한 사법적 단죄뿐만 아니라 정권교체를 통해 심판을 완성하려 하고 있고, 이러한 구도 아래서는 유승민이 개인적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소용이 없다. 따라서 유승민은 이번 대선에서 인정받겠다고 조바심을 낼 것이 아니라 진정한 보수정당을 처음으로 만들어보겠다는 장기적 목표 아래 정치적 행보를 이어나가야 한다.

둘째, 유승민은 대북관 또는 대북정책에서 보다 유연하고 신축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 대선후보 TV 토론에서 유승민은 ‘주적 문제’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주적’과 관련한 그의 인식은 기존 강경극우 보수주의자들의 군사적 대결주의 노선과 큰 차이가 없는 듯하다. 유승민은 “국방백서에 ‘주적’이 명시돼 있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사실관계에도 어긋나고, 설령 그렇다 하더라고 대통령이 ‘주적’을 입에 달고 다닐 수는 없는 일이다. 각군 참모총장을 비롯한 군 지휘관들이 북한군을 주적이라고 인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국군통수권자로서 군의 최고사령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남북한 평화와 화해의 설계자이기도 하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라면 강력한 군사적 대응과 유연한 대화협상의 자세를 지혜롭고도 균형있게 배합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유엔으로 대표되는 국제사회가 이미 오래전부터 권고하고 있는 국가보안법 개폐에 대해서도 열린 자세를 보일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유승민이 진정한 보수정당 건설을 통해 우뚝한 정치 지도자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대의명분을 부여잡은 채 꿋꿋하게 나아갈 수 있는 강인함과 용기,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지역구 국회의원 한 번 더 해보겠다거나 장관을 비롯한 고위공직을 노리는 사람은 시류에 따라 이러저리 약삭빠르게 움직여도 목표를 이룰 수 있다. 그러나 정치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다수 국민들이 인정하고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대의명분을 붙잡고 있어야 한다.

1990년 3당 합당 당시 통일민주당 소속 초선의원이었던 노무현이 당 총재인 김영삼을 따라 갔더라면 국회의원 한두 번은 더 할 수 있었겠지만 결코 대통령은 되지 못했을 것이다. 김영삼과 결별한 이후 그가 겪었던 신산고초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그대로이다. 자신들 스스로가 “없어져야 할 정당”으로 규정하면서 문을 박차고 나온 자유한국당으로 되돌아가려는 바른정당 탈당파들도 금배지 한두 번은 더 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장담하건대 이들 가운데 그누구도 대통령은 되지 못할 것이다.

유승민은 탈당파들의 ‘막장 쿠데타’ 직후 페이스북에 "나는 끝까지 간다"는 제목과 함께 비장한 표정을 담은 동영상을 올렸다. 이는 대선을 완주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인 동시에 진정한 보수정당 건설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밝힌 것으로 읽힌다. 나는 유승민의 이러한 결의가 열매를 맺었으면 좋겠다. 유승민이 좌초한다면 대한민국에는 서청원·윤상현·김진태·이정현과 같은 ‘막장 보수’, 홍준표와 같은 ‘저질 보수’가 계속 보수의 탈을 쓰고 활개칠 것이다. 부디 유승민이 주도하는 진정한 보수정당이 탄생함으로써 국가에 대한 헌신과 책임, 명예, 도덕적 우월성 등 보수 본연의 가치가 찬연하게 빛나는 시대가 오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힘내라, 유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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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vicnews 2017-05-08 09:4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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