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짝 않고 멍때리기, 이거 쉽지 않네?" 2017년 한강 멍때리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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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짝 않고 멍때리기, 이거 쉽지 않네?" 2017년 한강 멍때리기대회
  • 취재기자 박영경
  • 승인 2017.05.01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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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서울 망원한강공원...아기 엄마, 초등학생, 회사원에 모델, 영화배우까지 참가 / 박영경 기자
망원한강공원에서 열린 2017 한강 멍때리기대회에서 참가자들이 행사 직전 준비 체조를 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박영경).

4월 30일 오후 3시 망원한강공원 성산대교 인근 망원한강공원.  이곳에서 '2017 한강 멍때리기대회'가 열렸다.  

늘 바쁜 일에 쫒기는 현대인의 뇌를 쉬게 하자는 의도로 진행된 이 행사는 2014년 서울 광장에서 처음 열린 이후 해마다 개최되고 있다. 멍때리기는 아무런 생각 없이 넋을 놓고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말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상태를 오래 유지하는 것'이다.

이번 대회의 참가규칙은 휴대폰 확인 금지, 졸거나 수면 금지, 잡담 금지, 웃기 금지, 시간 확인 금지, 노래 부르거나 춤추기 금지, 주최 측에서 마련한 음료 외 음식물 섭취 금지, 기타 상식적 멍때리기에 어긋나는 행동 금지 등이다. 

뙤악볕에다 미세먼지가 끼어있는 상황에서도 참가자들은 멍때리기에 열중(?)했다. 참가자들의 참가 사유를 적는 '시민투표장' 게시판에는 "아기 엄마는 멍때릴 시간이 없다. 대회 참가를 핑계로 멍 좀 때리겠다", "어떤 사람들이 참가하는지 궁금해서 출전해보면 알 것 같아 참가했다", "만화와 게임에만 열중하는 초등학교 3학년 아들에게 멍때리기의 훌륭함을 가르쳐주고 싶었다", "공부에서 벗어나고 싶은 초등학생" 등등 출전선수들의 참가 사유도 다양했다. 참가자들 중에선 요리치료사, 모델, 영화배우 등도 보였다.

작년 멍때리기대회 우승자인 크러쉬가 반려견 두유와 함께 2017 멍때리기대회 시상을 위해 다시 한강을 찾았다(사진: 취재기자 박영경).

 

대회 심사에 중요한 지표가 되는 시민투표장으로 스티커를 세 장씩 나눠 받아 원하는 참가자 칸에 부착하도록 했다. 각각 참가번호가 적힌 칸에는 멍때리기 대회 출전 사유 및 직업이 적혀 있다(사진: 취재기자 박영경).

 

2017 한강 멍때리기대회 우승을 거머쥔 직장인 1명과 취업준비생 1명으로 구성된 팀의 멍때리기 장면(사진: 취재기자 박영경).

참가선수 선발기준은 특이 사연을 가진 사람, 교도관, 삼수생 등 이색 직업을 가진 사람 등이었다. 한 시간 반가량 탈락하지 않고 멍때린 참가자들 중 시민투표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10명을 추려 우승자를 선발했다.

올해 한강 멍때리기 대회 1등 수상자는 직장인 두 명과 취업 준비생 한 명으로 구성된 팀. 1등 팀은 수상소감 발표에서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회사에 가기 싫은 상황을 재현하기 위해 잠옷을 입고 출전했다”고 밝혔다. ‘머~엉”이라고 적힌 현수막까지 손수 제작해 들고 나왔다. 1등에게는 트로피와 상장이, 2, 3등과 특별상에는 상장이 주어졌다. 2등은 삼수생, 3등은 안전관리위원이 수상했으며, 행사 기간 내내 안정적인 심박수 그래프를 보인 지하철 역무원이 특별상을 수상했다. 

주최자인 웁쓰양과 암행어사들이 대회를 지켜보다 멍때리기대회 규칙을 어기는 경우에 노란 카드로 경고, 빨간 카드로 탈락을 선고해 탈락자들을 연행(?)했다(사진: 취재기자 박영경).

지난 대회 우승자이자 래퍼인 크러쉬가 1등 시상을 맡아 그 열기가 더욱 뜨거웠다. 크러쉬는 작년 우승 때와 같은 의상을 입고 등장했다. 크러쉬는 “작년보다 준비가 더욱 철저해진 것 같다. 멍때리기 대회가 발전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1등 수상자의 출연 사유에 공감했다. 그들은 “맞다. 아침에 눈뜨면 정말 회사 가기 싫다”, “아침 등교 전 멍때리기는 정말 몇 시간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연을 들어보니 그들이 왜 잠옷을 입고 출전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의사 가운을 입은 스탭들이 10분마다 선수들의 심박수를 체크해 심박수 그래프를 기록한다. 기록된 심박수 그래프는 심사 지표 중 하나로 안정적인 그래프 곡선일수록 높은 점수를 받는다. 특별상을 시상한 주안역 역무원은 가장 안정적인 심박수그래프로 특별상을 수상했다(사진: 취재기자 박영경).

10분마다 측정된 참가선수의 심박수와 시민투표가 심사기준으로 적용됐다. 대회 기획자인 아티스트 웁쓰양과 암행어사 복장을 한 행사 진행요원들이 돌아다니며 경고 및 탈락을 알렸다. 수상자들을 비롯해 순위권 안에 들지 못한 참가자들 전원에게도 2017 한강 멍때리기 대회 참가 인증서가 주어졌다. 

2017 한강 멍때리기대회에 참여한 MC그리(사진: 취재기자 박영경).

이번 대회에는 연예인 김구라의 아들이자 래퍼로 활동 중인 MC그리, 그리고 다른 영화배우 및 모델도 출전했다. 중도에 탈락한 YG케이플러스 소속 모델 남기광 씨는 “쉬고 싶어서 참여했다. 멍때리는 일이 생각보다 힘든 것 같다”며 “재밌는 경험이었다. 다음에도 출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행사에서 서울시는 별도의 시민참여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행사장 인근에 해먹과 빈백 설치, 낙서 열전 및 캘리그래피  전시회 등이 서울시 주최로 열었다.

한 참가자가 시민참여 프로그램의 하나인 페이스페인팅을 받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박영경).

시민참여 프로그램에서 페이스페인팅을 받고 있던 신지예(25, 경기도 고양시) 씨는 “어릴 때로 돌아간 기분”이라며 “재밌는 대회를 주최한다는 자체가 색다르다. 앞으로도 이런 대회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 씨는 “멍때리기 대회에 참여한 사람들 모두 대단하다. 어떻게 저렇게 멍을 잘 때리는지 정말 신기하다”고 덧붙였다.

한강 멍때리기 대회 주최자 웁쓰양은 멍때리기가 일종의 집단 퍼포먼스이면서 동시에 거대 시각예술임을 밝혔다. 그는 "바쁜 도심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집단과 바쁜 사람들을 대조시키는 것이 멍때리기 대회의 가장 큰 목적"이라고 덧붙였다.

멍때리기 대회를 구경하던 정하림(22, 서울시 성동구 왕십리) 씨는 "축제가 이렇게 조용한 것도 신기한데 이 조용한 축제가 재밌는 건 더 신기하다"고 말했다. 황주현(22, 서울시 동대문구 이문동) 씨는 "자기가 종사하는 직업군의 유니폼을 입고 출전한 것이 신기하다"며 "허락받고 멍때리는 느낌이다. 한 번 출전해보고 싶다"며 멍때리기 대회 참가에 호기심을 표했다.

한편  오는 5월 20일 대전에서도 지방에선 처음으로 멍때리기 대회가 개최될 계획이다. 

첫번째 지방 멍때리기대회가 오는 5월 20일 대전시에서 개최된다(사진: 취재기자 박영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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