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설, 성희롱 대답에 텔레마케터들은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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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설, 성희롱 대답에 텔레마케터들은 괴롭다
  • 취재기자 신민근
  • 승인 2013.04.15 1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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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희생하며 일하는 <감정 노동자들>.. "장난 돌던지기 마세요"

 “야, 너 조선족이지? 어디서 사기야, 이 미친 X아!” 

 이제 갓 텔레마케터로 일을 시작한 최선혜(22) 씨는 최근 간단한 전화 설문조사에서 응답자로부터 이런 막말을 들었다.  최씨는 처음 얻은 직장이라 큰 의욕을 가지고 일을 시작했는데 첫 통화부터 욕을 먹자 너무 당황스러웠다. 그녀는 “다음 통화하기가 무서웠어요. 30분이 지난 후에야 가까스로 다이얼을 누를 수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요즘 보이스피싱 같은 사기 전화를 한두 번 안 받아 본 사람이 없을 듯하다. 그렇다보니 정상적인 텔레마케팅 전화에도 짜증을 내기 일쑤다. 보이스피싱 피해사태에 너나없이 예민해진 탓이다.

 텔레마케터는 전화 통신 판매원이라고 불린다. 그들은 홈쇼핑 전문 업체, 카드회사, 통신회사, 호텔 등 다양한 업종의 텔레마케팅 실이나 고객 상담 센터에서 근무한다. 미국 버클리대 사회심리학 교수 앨리 혹쉴드는 그의 저서 <감정 노동>에서 텔레마케터를 "자신의 감정은 드러내지 않고 서비스해야 하는 직업 종사자들"로 규정, '감정 노동자'라 불렀다.

 같은 텔레마케터 박모(23.여) 씨도 매일매일 치솟아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일한다. 박 씨는 "상대방이 욕설만하고 끊으면 그나마 양반"이라며 "어떤 경우에는 속옷 색깔까지 물어보는 등 언어적 성희롱에 시달리기도 한다"고 밝혔다. 그녀는 “세상에 별 미친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당하는 입장에선 정말 정신적으로 많은 고통을 받는다"라고 말했다.

 이러다보니 텔레마케터의 직장 수명은 짧다. 잠깐 하다가 아니다 싶으면 그냥 떠난다. 부산시 남구 대연동의 한 텔레마케팅 회사이 인사 담당자 김모(28) 씨는 구인광고를 통해 힘들게 텔레마케터 직원들을 구하면 1주일을 버티는 사람들이 없다고 한탄했다. 처음에는 직원들의 적성 문제라고 생각하고 가볍게 넘겼지만 고객들의 욕설과 폭언에 의한 정신적인 고충으로 퇴사하는 사태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김씨는 “정말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텔레마케터들에게 상대방이 욕하면 같이 욕하라고 주문하고 싶다”라고 했다.

 텔레마케터들을 조롱하는 풍조는 사이버 공간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인터넷 개인 방송 서비스 ‘아프리카 TV’의 한 방송 프로그램은 아예 BJ(진행자)가 텔레마케터들에게 장난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프로는 아프리카 TV 내에서도 높은 순위에 들어갈 만큼 인기가 많다. “BJ형, 오늘은 (텔레마케터 놀리기 위해) 전화 안 해요?” “오늘도 (텔레마케터를 놀리러) 한번 달립시다!”는 시청자들의 요구가 들어오면 BJ는 아무 망설임 없이 아무 텔레마케터에게 전화를 걸어 방송을 진행한다. 진행자에게 걸린 어느 텔레마케터는 청취자들이 다 듣는 가운데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한다. 텔레마케터를 조롱하는 BJ를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포털사이트에서 ‘전화상담원 장난전화’, ‘전화상담원 멘붕’ 등으로 검색어를 입력하면, 우리는 녹음된 음성파일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들 역시 상담원에게 조롱을 하며 모욕감을 주고 있는 내용이다. 녹취 속 상담원은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며 대화를 진행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업로드된 이 음성파일의 댓글을 살펴보면, 상담원을 위로 하는 글은 하나도 찾아 볼 수 없었다.

 대학생 박모(21) 씨는 무료할 때 텔레마케터들의 전화를 기다린다. 그는 “어차피 그 사람들에게는 제가 고객이잖아요. 마구 놀려도, 제가 욕 듣는 경우는 없죠. 물건이야 안사면 그만이고, 어차피 얼굴도 안 볼 사이인데요”라고 말했다.

 상담원들의 피해가 계속되자, 이에 따른 텔레마케팅 회사들의 대응책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최근 현대카드사는 콜센터로 전화하여 성희롱, 욕설 등을 하며 업무를 방해할 경우, 2회 경고 후 전화를 차단하는 정책을 도입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일부 대기업에서만 시행되고 있을 뿐 대부분의 영세한 텔레마케팅 업체들은 고객보다 먼저 전화를 끊는 행위는 매뉴얼에서 금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텔레마케터들이 약자라는 이유를 들어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지난 2월 12일자 한국금융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텔레마케팅 업체들은 정부가 대응센터를 구축하고 ‘상담원보호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해당 업체들은 상담원보호법에 따라 고객을 고발한다고 해도 기업 이미지 훼손을 우려하는 부담감이 있는데다, 소환조사, 법정 진술 등 소송 과정에서 당사자 상담원이 참여해야 하기 때문에 상담원 보호에 실익이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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