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제(官製)'의 추억
상태바
'관제(官製)'의 추억
  • 손동우 칼럼니스트
  • 승인 2017.02.13 04: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손동우 칼럼니스트
칼럼리스트 손동우

나는 지금도 ‘청룡부대,’ ‘백마부대,’ ‘맹호부대’ 군가를 기억하고 있다. "삼천만의 자랑인 대한 해병대," "아느냐, 그 이름 무적의 사나이," "자유통일 위해서 조국을 지키시다" 등등의 가사를 읇조리다보?? 1960~70년대 초·중학교 시절이 또렷이 떠오르곤 한다. 내가 베트남전 참전 부대의 군가를 죄다 외울 수 있는 것은 특별히 암기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그 시절 학교에서 입술이 부르트도록 불러제꼈고, TV와 라디오에서 곡조가 흘러나올 때도 따라 불렀다. 노래가 몸에 밸 수밖에 없었다. 이른바 ‘베이비붐 세대’인 내 나이 또래 대부분이 이런 기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내 고향이 포항이라는 점도 군가 암송에 영향을 미친 듯하다. 포항에는 지금도 해병대 1사단이 주둔하고 있는데, 당시에는 이곳에서 훈련을 받은 해병대 병사들이 청룡부대원이 되어 기차를 타고 부산항으로 떠났다. 그때마다 포항시내 학생들은 태극기를 들고 역광장에 모여 ‘삼천만의 자랑’인 그들을 환송했다.

오뉴월 뙤약볕을 온몸에 맞으며 역광장에 서있다보면 힘들고 짜증도 났지만 가끔씩 재미있는 일도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때인 1969년 어느날 포항역에 나타난 청룡부대원 중에는 당시 인기 절정의 가수 남진도 포함돼 있었다. 사전에 정보를 입수해 기다리던 동네 누나들은 그가 나타나자 “꺄~악!” 하고 괴성을 지르면서 발을 굴러댔다. 얼굴이 새카맣게 탄 남진이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씩 웃던 광경이 지금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른다.

지금 생각해보면 학교에서 베트남전 참전부대 군가를 불렀던 것이나, 역광장에 모여 태극기를 흔들었던 것이나 모두 국가권력의 지시와 강요에 의해 이뤄진 관제(官製) 작업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반공 웅변대회, 반공 백일장 등도 국가권력의 영향 아래 마련된 행사였다. 군사독재정권은 자신들의 권력 유지와 체제 수호를 위해 어린 초등학생들까지도 철저하게 동원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박정희 정권의 친위 쿠데타인 1972년 10월 유신과 관련해서도 나에게는 뼈아픈 추억이 있다. 당시 나는 중학교 2학년이었는데 어느날 학생들은 아예 수업을 하지 않고 공보물 발송작업에 동원됐다.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가가호호로 보내는 안내문을 노란봉투에 집어넣고 풀로 붙이는 일이었다. 담임교사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내가 교탁으로 나가서 “야, 야, 잠시 놀면서 하자”며 아이들을 선동해 신나게 수다를 떨고 있다가 어느틈엔가 교실로 들어온 담임에게 발각됐다. 그는 “이 빨갱이 같은 새끼”라고 욕설을 퍼부으며 다짜고짜 두들겨패기 시작했고, 그래도 분에 차지 않았던지 교무실로 끌고가서 생활지도교사와 함께 매질을 해댔다. 나는 그렇게 14세 어린 나이에 ‘극렬 좌파’가 되는 ‘느닷없는 명예’를 누렸다. 공보물 작업과 교사들의 구타 역시 크게 보면 관제에 속하는 것이었다.

내가 경향신문 신입기자로 일하던 1980년대 중반 당시, 대학 캠퍼스는 전두환 군사독재에 항거하는 학생들의 함성으로 가득했다. 그런데 때때로 "과격 시위를 멈추고 지금은 오로지 학생의 본분인 학업에 열중해야 한다"는 내용의 유인물이 학내 곳곳에 뿌려지곤 했다. ‘면학 유인물’로 불렸던 이 문건의 작성자는 물론 학생들이 아니라 안기부 등 정보기관이었다.

이 유인물이 살포된다는 사실은 사전에 미리 언론사 데스크로 통보되곤 했다. 문제는 이따끔씩 유인물이 제 시간에 뿌려지지 않는 ‘배달사고’가 발생한다는 사실이었다. 짐작하건대 교통체증 또는 살포작업을 맡았던 프락치들의 개인사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느날 데스크의 지시로 현장에 갔으나 유인물은 아직 뿌려지지 않았고, 이를 사실대로 보고하자 데스크는 “응, 관계없어”라며 전화를 끊었다. 신문에는 "ㅇㅇ대학에 면학유인물 뿌려져"라는 제목의 잘못된 ‘관제 기사’가 버젓이 나가곤 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었다.

전대미문의 국정농단과 헌정유린으로 탄핵당한 박근혜 정권이 그동안 저질렀던 갖가지 관제 공작의 실상이 하나둘씩 드러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어버이연합을 비롯한 극우보수단체들을 동원해 시위와 집회를 벌인 것이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따르면, 청와대 정무수석실은 삼성, 현대차, SK, LG 등 재계 서열 1~4위의 기업들을 동원해 어버이연합, 엄마부대, 박사모 등 38개 극우보수단체에 70억여 원을 지원했다고 한다. 돈을 건넨 단체는 어버이연합처럼 관제 시위를 벌인 곳, 자유경제원 같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앞장서 주창한 곳, 미디어워치 등 보수논객이 이끄는 매체 등이다. 전경련은 정부와 관계없이 ‘자발적으로’ 이들 단체들에 자금을 지원했다고 둘러대고 있다지만 그야말로 소가 웃을 일이다.

이뿐이 아니다. 한국자유총연맹 등의 단체들은 3월 1일 서울 광화문에서 대규모집회를 열기로 하고 총동원령을 내렸다고 한다. 전국 각 지부에 공문까지 내려보낸 사실이 공개되자, 자유총연맹은 “국가 정체성 확립을 위한 ‘태극기 국민운동’ 행사”라는 취지로 해명했다고는 하지만 촛불집회에 맞서기 위한 사실상의 탄핵반대 집회가 될 것이라는 사실은 삼척동자라도 알 수 있다. 자유총연맹 내부에서도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총동원령이냐"며 반발이 적지 않은데도 이처럼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것은 청와대 등 국가기관의 적극적 개입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자유총연맹처럼 국고지원을 받는 법정단체가 탄핵반대와 같은 정파성 짙은 행사에 발벗고 나서는 것은 무엇보다 심각하게 법을 거스르는 일이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자유총연맹 등이 정치적 중립을 위해 공명선거 운동조차 할 수 없도록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라고 특별법으로 보호받는 단체가 정작 자유민주주의를 뿌리째 위협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는 이 웃을 수 없는 코메디 앞에 말문이 막힐 뿐이다. 정권교체가 이뤄지면 자유총연맹과 같은 극우 관변단체들이 과연 더 이상 존재할 필요가 있는 것인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또한 국가권력이 관제 데모 등을 기획하고 주도하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집회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을 왜곡하는 헌정유린 행위이기도 하다. 헌정유린으로 탄핵을 당한 박근혜 집단이 바로 그 탄핵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다른 헌정유린을 저지르고 있으니 반드시 ‘곱배기’로 징치해야 마땅하다.

고시리손에 태극기를 쥐고 청룡부대 노래를 부르던 일, 얻어터지며 유신 공보물 발송작업을 하던 일, 뿌려지지도 않은 ‘면학유인물’을 찾아헤매던 일 등등 지금까지 겪었던 갖가지 관제 공작은 민주화와 함께 다시는 발을 붙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잠시라도 방심하면 역사를 40~50년 뒤로 돌리는 퇴영적 반동이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은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이 입증하고 있다. ‘관제의 추억’, 두 번 다시 떠올릴 일이 없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