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리뷰] 기자 출신 대학교수, 삶의 역경(逆境) 발가벗고 털어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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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리뷰] 기자 출신 대학교수, 삶의 역경(逆境) 발가벗고 털어놓다
  • CIVIC뉴스 칼럼니스트 차용범
  • 승인 2023.10.21 11: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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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의 좌절-정동우의 자전적 에세이집'을 읽고

평생에 단 두 개의 직업, 기자와 교수로 살다 은퇴한 정동우 교수의 자전적 에세이집이다. 그는 동아일보 사회부장·편집부국장·전문기자를 거친 뒤 건국대 교수로 전직, 언론홍보대학원장을 지냈다. 그의 말대로, 직업이 가지는 값어치나 사명감, 만족감이 남다른 경험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그의 직업, 기자·교수의 세속적 성공을 말하기보단, 그 과정에서 역경을 겪으며 순응해 온 삶의 스토리를 담담하게 털어놓고 있다.

책의 제목 ‘일곱 번의 좌절’에서 간취할 수 있듯, 저자는 살아오면서 겪었던 실패와 좌절, 역경의 순간들을 주요 모티브로 삼아 책을 구성했다. 그가 젊은 시절의 삶에서부터 어쩔 수 없이 맞닥뜨린 좌절의 순간까지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나름의 운명을 극복한 과정이다. 그는 그 기억과 기록의 진솔함을 “스스로 솔직하게 발가벗었다”고 말하지만, 그 묘사는 차마 눈물겨울 정도로 솔직해서 읽는 이의 공감을 자아낸다.

기자 출신 대학교수 정동우 박사의 자전적 에세이집 '일곱 번의 좌절' 표지. 정 박사는 책에서, 그의 직업, 기자·교수의 세속적 성공을 말하기보단, 그 과정에서 역경을 겪으며 순응해 온 삶의 스토리를 '온통 발가벗듯' 담담하게 털어놓고 있다(사진: 저자).
기자 출신 대학교수 정동우 박사의 자전적 에세이집 '일곱 번의 좌절' 표지. 정 박사는 책에서, 그의 직업, 기자·교수의 세속적 성공을 말하기보단, 그 과정에서 역경을 겪으며 순응해 온 삶의 스토리를 '온통 발가벗듯' 담담하게 털어놓고 있다(사진: 저자).

언제부터인가, ‘자기에 대한 글쓰기’가 크게 유행하고 있다. 오늘날 자서전 쓰기는 저명인사가 아닌, 평범한 사람의 영역에서도 잦다. 자서전을 통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자아(自我)를 알고 성찰한다는 것, 자서전의 진정한 가치이기도 하다. 자서전, 곧 내가 나의 삶을 기록하는 행위의 매력은 그만큼 크다. 그 대표적 장르가 자서전과 자전적 에세이다.

그 ‘나의 삶 쓰기’에는 독특한 특성이 필요하다. “한 개인이 자신의 삶을 대상으로, 오직 진실만을 충실하게 고백할 것을 전제해야 한다”는 필립 르죈(자서전 이론가)의 규약이 있다. 그 글을 쓰는 동기, 곧 자기 인식의 욕구, 자기 정당화의 욕구, 증언의 욕구를 주목할 때, 그 글쓰기는 당연히 진실의 담론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를 객관적으로 서술하며 진실을 증명해야 한다? 그렇다. ‘자기에 대한 글쓰기’는 자신의 ’신화‘를 넘어 ’사실‘에 기반해야 할 특별한 유형의 글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저자가 살아온 삶의 굴곡을 여과나 윤색 없이 고백하며, 그야말로 ’진실의 담론‘을 추구한 발군(拔群)의 자전기이다. 필자 역시 그와 비슷한 연대를 살며 주변의 자전기를 읽고 특정한 인물의 평전을 쓰기도 하지만, 이 ’정동우의 자전적 에세이집‘처럼 진솔한 감정을 세밀하게 묘사한 자전기를 읽은 기억이 없다.

그가 동아일보 사건팀장(시경 캡)에서 갑자기 지방부로 발령나거나 해외특파원 선정에서 탈락한 사연, 편집국 부국장에서 논설위원으로 옮기기로 했다가 갑자기 전문기자로 발령 난 과정을 쓴 부분도 그렇다. 세칭 ’스카이(SKY)‘ 위주 조직 속 지방대 출신으로 겪은 차별에서, 조직의 구조적 쇠퇴 속 연줄이 없어 당한 냉대까지…. 그는 어쩌면 부끄럽고 창피했을 ’그때 그 시절‘도 마음을 비워내고 진솔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첫 직장에서 숙정 대상 언론인이 되기도, 신문사에서 좌천되거나 교수직 채용이 무산되기도 한 위기를 축복으로 기억한다. 현재에 안주하며 만족하는 순간마다 운명은 한 단계 더 나아가라 재촉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고난을 겪고 있는 이에게는 그 뒤의 성장을 기약하고, 잔잔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이에게는 (그 삶에 안주하는 대신) 성장의 길로 나아가는 길잡이가 될 것”이란 기대를 주는 것이다.

필자는 저자를 ’늘 당당하고 솔직한 경상도 사나이‘로, ’주변 배려에 눈 밝은 정 많은 형‘으로 기억하고 있다. 우리는 1993년 여름, 미국 중부 미주리주립대 저널리즘스쿨에서 처음 만났다. 그는 필자보다 한 학기 앞서 그곳에서 연수를 시작했다. 그 저널리즘스쿨은 세계적 명성을 지닌 명문이었고, 연수(지원) 조건도 참 좋았다. 그 좋은 대학-좋은 환경에서, 우리는 가족을 동반한 연수 생활을 함께하며 도타운 정을 쌓았다.

이 책에 우리의 사적(私的) 경험은 들어있지 않지만, 그와 그 가족은 늘, 우리 가족을 지켜주는 든든한 후원자였다. 필자가 언론 현업에서의 해방감을 즐기며 연수 초기 폭탄주를 즐기다 대학병원을 찾아야 했을 때, 그는 필자의 보호자였다. 필자의 아내가 공사(公事)로 잠시 귀국했을 때, 그는 끓인 미역국을 대형 양동이에 가득 담아 전해주며 우리 가족의 식사 걱정을 덜어줬다. 그는 언제 어디서나, 동업의 아우를 속정으로 보살핀 형이었다.

그가 사내 혼란 끝에 전문기자로 발령받았던 2005년, 그는 서울 출장길에 동아일보를 찾은 필자에게 그 사연을 줄여 설명했다. 이 책의 ’‘전문기자’편에 쓴 대로, “새로운 분야를 개척, 지면에 기여하면 살아날 수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도태될 것”이라고. 그때, 그 사연을 설명한 어투와, 오늘 이 책의 서술은 너무나 솔직하고 절절했다. 그 허물없는 고백과 미련없는 기억 앞에, 필자는 그저 눈물이 난다.

그는 동아일보에서 나름 호방한 성격과 탄탄한 일솜씨, 원만한 대인관계로, 동료 후배에게 ’참 좋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가 대학교수 발령을 받고 직장을 옮겼을 때, 동아일보 후배들이 조촐한 송별연을 베풀며 전해준 기념패가 있다. 그의 동료 허승호가 쓴 이별시다.

 

2008년 4월은

당신과 나눈 시간은

눈부신 함박눈이었다가

심술재비 황사비에 흩어지는 아지랑이 현기증

한여름 뙤약볕

때론 하회탈 웃음소리로 들리다

종내 대지를 흠뻑 적시는 장대비가 되었다.

광화문 네거리의 분주하고 어수선한 편집국

청계천과 함께 추억도 흘렀고

그대 새 길 떠날 때

나 달리 가진 것 없이 이 노래만 드릴지니

아아 당신이 조금 멀어진다고

(…)

이제 그대가 무엇을 아니하여도 좋은 것은

당신과 함께한 시간이 이미

넉넉하고도 벅찬 축복이었기 때문

지난여름 열기는 데일 듯 뜨거웠지만

가을은 청명하게 더욱 단단히 익어갔듯이

숱한 그날들에 대해

우리는 오늘도 감사하며 기도하나니

-사랑하는 정동우 선배를 보내는 후배들이-

저자는 이 책의 ’은퇴 생활‘편에서, “인생에서 가장 좋은 직업은 백수 생활”이라고, “늘 편하고 여유롭다”고 말한다. 그가 ’일곱 번의 좌절‘을 겪고도 오늘 편하고 여유로운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는 그만큼 탄탄한 삶의 궤적을 밟아왔으며, 노후의 정신적 여유 또한 그만큼 넉넉한 것이다. 그는 평소 죽음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이 책의 ’당부‘편에서, 다가올 죽음과 관련한 구체적 상황을 설정, 그 현실적 처리 지침을 남긴 것도, 역시 그다운 생각이다.

저자 정동우는 은퇴 생활을 즐기며 “인생에서 가장 좋은 직업은 백수 생활”이라고, 그래서 “늘 편하고 여유롭다”고 말한다(사진: 저자).
저자 정동우는 은퇴 생활을 즐기며 “인생에서 가장 좋은 직업은 백수 생활”이라고, 그래서 “늘 편하고 여유롭다”고 말한다(사진: 저자).

저자는 이 책을 그저 ’자전적 에세이‘로 썼지만, 그는 나름 삶을 틈틈이 메모나 일기로 기록해 왔던 것 같다. 유년에서 고교·대학 시절까지, 동아일보 입사와 초년 기자 시절부터 전문기자의 역정까지, 이처럼 세밀하고 절절하게 기억하고 정리한다는 것, 그 순간의 기록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는 1980년대 군사정권 말기-민주화운동 시기 ‘한국기자상’을 잇달아 수상하며 동아일보의 성가를 높인 ‘민완기자’였다. 그 화려했던 순간의 기록인들 왜 없겠나만, 그의 ’에세이‘로 정리하지 않은 것 역시 그다운 고집이리.

일본 언론인 다치바나 다카시는 역저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에서 강조했다. ”개인의 역사는 곧 세계사“라고. 역사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기록이고, 사람들은 기록을 통해 기억하며, 그 기억은 역사로 남는 것이다.” 이 책 역시 한 개인의 역사를 넘어, 기자 사회와 교수 사회의 속살을 들여다보며 한 시대의 사회사를 기록한 역사일 수 있을 터이다.

저자는 이제 자기 생에 가장 충실했던 삶을 기록으로 남겼으니, 노년의 삶은 보다 풍요할 것이다. 무엇보다 한 은퇴인이 거쳐온 삶의 정직성과 충만성을 깊이 공감할 수 있다는 면에서, .주변과 함께 읽기를 권할 만한, 한 기자 출신 은퇴교수의 귀한 자전기이다.

정동우(지은이)/맑은샘(김양수)/2023-10-16/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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