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은 아직도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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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은 아직도 살아있다
  • 장재호
  • 승인 2013.01.16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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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때가 묻은 책이 있고, 빛바랜 책장 사이엔 추억이 서려 있다. 오래 전 헤어진 반가운 친구를 만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다. 부산 중구 보수동 헌책방골목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의 발길이 줄어들면서 활력을 잃었던 이곳이, 최근 번영회의 자구 노력과 부산시와 중구의 지원으로 서서히 활기를 되찾고 있다.

 
보수동책방골목번영회는 지난 2005년부터 해마다 9월이면 ‘보수동책방골목축제’를 열고, 젊은 층을 겨냥해 홈페이지를 개설하는 등 다양한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책방골목에는 없는 책이 없을 정도다. 참고서 및 교과서, 소설류는 물론 고서적에다 지금은 절판된 책도 여기서는 구할 수 있다. 게다가 가격도 싸다. 헌책은 정가의 40~70%, 새 책도 10~20% 정도 싸게 살 수 있다. 학생과 교직원을 겨냥한 전문서점도 들어섰다.

 
보수동책방골목번영회 남명섭(54) 회장은 “보수동 책방골목도 대학생을 겨냥해 영어 원서 등 전문서적을 비치하고 있다. 책방골목축제 때는 대학생과 젊은이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행사로 진행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부산시는 책방골목번영회와 함께 책방 셔터 30여 개에 ‘꿈과 젊음, 자유’를 주제로 그라피티 벽화를 그려, 문을 닫은 휴일에도 관광객이 즐겨 찾는 곳으로 만들었다. 추억과 향수가 서린 이 골목을 관광객들이 보고 즐기는 문화상품으로 만들어 지역 상권을 되살리고, 작가들에게는 예술세계를 펼쳐 보이는 무대로 활용토록 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린 것이다.

 
이와 함께 역사와 책을 테마로 한 전통문화역사거리 조성사업도 실시했다. 헌책방골목 입구에 상징조형물과 표지석을 설치하고, 서점 안내도와 글방쉼터도 설치했다. 또한 올해 안에 대청로 농협 맞은편에 지하 1층 지상 5층 규모의 ‘책문화관’을 착공, 내년 6월에 완공할 예정이다. 책문화관에는 책 박물관과 북카페, 열람실, 창작실, 휴게쉼터 등으로 설치한다. 또한 책방골목의 역사를 담은 사진과 50~70년대 유행했던 책, 당시 인쇄방법을 볼 수 있는 인쇄시설, 희귀도서, 책걸상 등도 전시할 예정이다.

 
책방골목을 찾은 정민경(18) 학생은 “젊은 학생들을 위해 변화하는 책방골목은 최고의 문화공간이다. 학생들과 지역 주민들이 참여하고 쉴 수 있는 책문화관이 빨리 개관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중구청의 일손도 바빠졌다. 중구청은 동아대 부민캠퍼스 학생들을 겨냥해 원도심권을 부활시키겠다는 복안을 세우고 있다. 지난해 개최한 ‘빛의 거리 광복로축제’를 앞으로는 부민캠퍼스까지 연계해 중구의 대표적인 축제로 만들 계획이다. 김은숙 중구청장은 “도심의 공동화 현상까지 겹쳐 활기를 잃어가는 책방골목을 전통과 현대, 문화와 건축이 어우러진 멋진 공간으로 다듬어 젊은 층이 찾게 함으로써 옛 명성을 되살리겠다”고 말했다.

 
이러한 책방골목의 변화에 주변상인들은 반가운 기색이 완연하다. 책방골목과 동아대 부민캠퍼스 인근에는 학생과 교직원을 겨냥한 저렴한 식당은 물론, PC방과 당구장 등도 하나씩 들어서고 있다. 동아대 대학로상가번영회 박철범(45) 총무는 “학생들이 차츰 사라져 적막감이 감돌던 이곳에, 최근 학생들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넘쳐나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고 이곳의 상황을 설명했다.

 
보수동 헌책방골목은 1950년 6ㆍ25전쟁 때 부산이 임시수도가 되었을 때 이북에서 피란 온 손정린 씨 부부(옛 보문서점 주인)가 보수동사거리 입구(현재 글방쉼터 자리) 골목 안 목조건물 처마 밑에 박스를 깔고 미군부대에서 나온 헌 잡지, 만화, 고물상으로부터 수집한 헌책 등으로 노점을 시작한 것이 시초다. 여기에 다른 피란민들이 가세하여 노점과 가건물에 책방을 하나둘 열어 책방골목이 형성되었고,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과 지식인들이 자신의 책을 내다 팔고, 헌책을 구입하면서 한때 성황을 이루었다. 현재는 고서전문인 고서점, 대륙서점, 성남서적 등을 비롯해 40여 곳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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