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부산은 미래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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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부산은 미래도시다
  • 칼럼니스트 강석진
  • 승인 2016.03.07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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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니스트 강석진

운전대를 잡은 손이 떨렸다. 힘도 들어가지 않는다. 그저 핸들 위에 힘겹게 손을 얹은 것 같다. 그래도 손을 돌볼 마음의 여유가 없다. 전날 과음한 속이 울렁울렁거리며 그 때마다 머리를 쾅쾅 때린다. 차에는 옷가지와 양말, 세면도구, 책, 얇은 이불, 기타 집을 떠나 지낼 채비를 가득 실었다.

의자를 뒤로 젖히고 눈을 붙이고 싶지만 "잘 다녀 오세요"라는 식구들의 말을 뒤로 하고 출발한다. 경부고속도로에 들어서서 차선 하나 물고는 앞 차 가자는 대로 간다. 양재 IC를 지나자 휴대폰이 계속 울린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확인하면 긴급한 전화는 아니다. 대부분 "잘 다녀 오세요"이거나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분개하는 목소리다. 필자가 갑작스레 회사의 인사 명령으로 부산지사장 발령을 받고 다음날 부임하게 된 데 대한 공분이었다. 그런 인사, 격려, 분노에 대해 어느 정도 반응해야 하는지조차 내 머릿속은 가늠할 상황이 못됐다. 그저 "고맙소," "같이 이겨냅시다" 어쩌구저쩌구 하는 소리 하면서 한낮에 겨우 추풍령에 도착했다. 비몽사몽이라는 말 그대로였다.

추풍령, 가을 바람 불어 시원한 곳! 중학교 수학여행 길에 들렀던 추풍령 휴게소의 출렁이던 갈대의 물결이 눈에 선했다. 쉬면서 다시 힘을 내자며 차에서 내렸다. 그 넓었던 갈대 군락은 간 데 없고 휴게소 뒤에 불과 몇 평 넓이에 그 모습이 남아 있었다. 실망이 적지 않았지만 그래도 아예 없는 것보다는 이게 어디냐 싶은 생각에 만져 보고 멀리 보고 옛날 생각하며 물끄러미 보다가 다시 차에 올랐다. ‘자 이제 경상도 땅에 들어섰으니 조금만 더 힘내면 바로 부산 아니겠나?’

추풍령이 서울과 부산의 중간쯤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김천 대구 경주를 거쳐 부산으로 가는 길은 그때까지 온 거리, 그 시간만큼이나 걸렸다. 동래에 도착했을 때는 서너 시가 넘어서였다. 10여 년 전 5월 5일 나는 이렇게 부산에 도착했다.

며칠 후 중앙로와 산복도로 사이의 이면도로를 이리저리 걷게 되었다. 원룸을 구하기 위해서였는데, 눈에 확 띄는 풍경은 오가는 행인들의 남루한 행색이었다. 술에 절어 살고 있는 듯한 모습, 때에 전 옷차림, 시커먼 피부, 좋아 보이지 않는 영양 상태 등등 주민들의 모습이 꽤 충격적이었다. 어느 도시인들 빈민가가 없으랴만 그래도 제2의 도시 부산의 중앙로 바로 뒤편인데 이렇게 낙후되어 있다니…….

그리고 또 알게 되었다. 부산의 인구가 해마다 줄어들고 있어 400만을 밑돌게 되었다는 사실을. 신발과 고무 산업 등 부산 경제를 떠받치던 산업들이 무너지거나 빠져 나가면서 경제도 어렵고 인구도 줄고 있다는 것이었다.

머나먼 타향살이, 회 한 점 소주 한 잔에 시름을 달래고, 보수동 헌책방 골목이나 어슬렁거리며 시간을 보내면서도 부산 사정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웠다. ‘어찌 할거나, 어찌 할거나.’

그 즈음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 생각을 부산시에 전하고 싶어졌다. 우연찮은 기회에 부산시 고위관계자와 옛 성지곡수원지를 걷게 되었다.

“시장님은 바쁘시죠?”
“업무도 업무지만 서울에 늘 올라가야 하니까요.”
“서울에 가면 주로 누구를 만나나요?”
“중앙으로부터 예산을 많이 확보해야 하니까 아무래도 그쪽 사람들을 많이 만나지요”

이 분에게 내 생각을 말했다. "중앙정부가 편성하는 예산을 많이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지방 재정수입이 중앙정부 수입에 비해 워낙 빈약하게 되어 있으니까. 하지만 중앙에 동동 매달려서는 백날이 가도 지방 나름의 발전을 기약하기 어렵다. 중앙에 등을 돌려라! 눈을 바다로, 바다 너머로 돌려라. 일본 관서지역, 중국 동부 지역, 타이완(대만), 필리핀이 가까이 보이지 않느냐. 지도를 거꾸로 돌려라. 일본 후쿠오카시가 아시아로 눈을 돌려 성공 신화를 일궜다는 사례도 있다"고.

두 번째 이야기는 조금 엉뚱한 이야기였다. "우리나라에는 어뮤즈먼트 파크가 용인에 에버랜드 하나 있습니다. 부산에는 기장에 넓은 땅이 있는데 거기에 어뮤즈먼트 파크 하나 유치하는 게 어떻습니까?"라고 말을 건넸다.

그 분 말씀이 "부산시가 에버랜드와 접촉했습니다. 에버랜드가 한 번 와서 보았죠. 시장성이 없다고 하지 않겠다고 하더군요."

다시 말했다. "에버랜드는 부산에 하나 더 세우면 그나마 작은 한국 시장을 둘로 나누는 게 되니까 시장성이 없다고 보겠죠. 하지만 디즈니랜드를 유치해 보시죠. 일본 관서지역 사람들은 도쿄 디즈니랜드로 가는데, 그 비용이면 부산 디즈니랜드로 올 수 있을 겁니다. 해외여행 기분도 내고, 가까운 경주도 볼 수 있습니다. 부산 디즈니랜드는 일본 관서지역, 중국 동부지역, 타이완, 심지어 멀리 말레이시아 등도 시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습니다. 후발 주자인 만큼 세계에서 가장 예쁘고 가장 신나고 가장 환상적인 어뮤즈먼트 파크가 될 수 있습니다. 일본 사람들 중국 가기 꺼리지만 한국 오는 것은 심리적 거부감도 적습니다"라고 진언했다.

지금 부산에 디즈니랜드가 있는가? 없다. 그래도 나는 당시 대화를 떠올리면 기분이 좋다. 그 대화가 있고 나서 몇 달 뒤 고위 관계자 그 분을 다시 만났다. 그 분이 한숨을 쉬면서 하는 말이 “디즈니 본사에 다녀왔습니다. 도쿄 디즈니랜드도 보고요. 그런데 디즈니 본사에서 말하기를 자기 지역에 디즈니랜드를 유치하겠다고 찾아온 한국 지방자치단체가 이미 많이 있습니다. 부산시가 열 번째인가 열한 번째라고 그럽디다. 별 대수롭게 생각하는 것 같지 않습디다”라는 것이었다.

'오 마이 갓(Oh my God)'이 아니라 ‘오 유어 갓(Oh your God)'이라도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부산이 무엇인가 먹거리가 된다면 사소한 제안이라도 귀담아 듣고 발걸음을 옮겨보는 용기와 의지를 갖고 있음을 나는 확인할 수 있었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그 뒤 아시아 두 번째 디즈니랜드는 중국 상하이로 갔고, 부산의 인구는 350만 명대로 주저앉아 있다. 부산, 이대로 가라앉을 것인가. 그저 그런 시커멓고 우중충한 제2의 도시가 될 것인가? 해운 유통 산업도 점차 중국에 주도권을 넘겨주고 말 것인가?

경제에서 창조성은 ‘낡은 것의 새로운 조합’이라는 말이 있다. 세상의 경험 지식 등 ‘이미 나와 있는 것, 즉 낡은 것’을 익히고 ‘이를 새롭게 엮어 내는 발상의 전환’을 결합시키는 것이 창조성(creativity)이라는 것이다.

디즈니랜드뿐이겠는가? 세상을 향해 열린 창 부산의 앞에는 무수하게 많은 새로운 도전과 기회가 놓여 있다. 세상은 빠르게 진화 발전한다. 꽉 막혀 있는 도로에서 앞지르기는 어렵지만 흐르는 도로에서는 앞지르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과감하게 서울을 향해 등을 돌려라. 바다 너머로 눈을 돌려라. 바다는 희망이다. 바다 너머를 그리게 하니까.

필자가 부산을 떠나올 때 부산역 플랫폼에서 지사 직원들과 ‘눈물 젖은’ 이별을 하였다. 아직도 그 기억 속에는 부산이 언젠가 바닥을 찍고 새로움으로 다시 일어서리라는 기대가 오버랩되곤 한다. 부산 구글, 부산 페이스북, 부산 트위터, 부산 시네폴리스(멕시코 기업으로 인도에서 복합상영관 사업으로 대성공)가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그 날을 향해 힘내라 부산! 할 수 있다 부산! 일어서라 부산! 부산은 미래 도시다.

*편집자 주: 필자 강석진은 서울대 정치학과, 동 대학원을 졸업한 뒤 언론계에 투신, <서울신문> 정치부, 국제부, 사회부 기자를 거쳤으며, 주일 특파원, 편집국장을 역임했다. 2012년 서울신문사를 퇴사, 현재 을지대 외래교수로 재직 중이다. 공중파, 종편 등 방송에 패널로도 활약하고 있다. 역서로는 <저항과 극복의 길림길에서- 재일동포의 정체성, 그 역사와 현재 그리고 미래(2005년 지식산업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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