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불가역적 패착된 한·일 위안부 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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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불가역적 패착된 한·일 위안부 합의
  • 칼럼니스트 박용채
  • 승인 2015.12.30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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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채 경향신문 논설위원
경력 : 도쿄특파원. 경제부장, 산업부장, 경제에티터, 온라인뉴스 편집인

 

협상은 늘 어렵다. 말이 쉬워 주고받는 것이지, 엄밀히 따지면 뺏고 빼앗기는 것이다. 위안부 문제처럼 당사자의 입장과 고충, 국민 감정, 여기에 국익까지 뒤섞일 경우 목표지점을 어디로 잡아야 할지 혼란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한일 위안부 합의는 납득불가 투성이다.

"대승적 견지에서 이해를 바란다(박근혜대통령)," "위안부 문제를 다음 세대까지 질질 끌어선 안 된다(아베 총리)"는 대의를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이런 대의가 결과마저 구속하는 것은 아니다. 공학적으로 보면 위안부 합의의 최대 수혜자는 미국이다. 이는 단순히 합의 뒤 나온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만큼이나 중대한 합의. 한·일관계의 새로운 장을 연 이정표"라는 찬사 일색의 반응 때문만이 아니다. 미국이 그동안 북한 위협과 중국의 부상 등 동북아 과제에 대처하기 위한 한·미·일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한·일 정부를 상대로 과거사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압박해왔다. 이를 감안하면 결과물 도출 자체가 미국 주도의 질서를 이끌나가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 여기에 임기 3년을 지나면서 성과를 내고 싶어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조급증까지 겹쳐졌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번 합의는 인권이라는 본질적 문제보다는 외교적 현실이 반영된 결과로 보는 게 타당하다. 기실 1965년의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모든 것이 해결됐다는 일본과 그렇지 않다는 한국간의 견해차를 감안하면 애초부터 위안부 문제의 법적 책임 인정과 배상은 쉽지않은 터여서 일정 부분 흥정하지 않을 수 없는 한계가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다. 예상대로 합의안은 애매함과 모호함으로 가득찼고, 해석은 양측 편의대로 진행되는 양상이다.

우선 일본의 위안부 인식부터 보자. 기시다 외상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고, 아베 총리는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인식은 1993년의 고노담화 등의 인식과 별반 다르지 않다. 위안부 제도는 일본의 ‘국가 범죄’이며 일본이 이에 대한 ‘법적 책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한국인들의 인식에는 턱없이 미치지 못한다. 역사 수정주의자라는 비판을 받아온 아베 신조 총리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을 언급하고 피해자들에게 사죄했다는 점 정도가 유일한 성과라면 성과다.

정작 문제는 합의내용이다. 당장 우리 정부 정부가 위안파 할머니들을 지원하는 재단을 설립하고, 일본정부가 10억 엔을 내기로 한 방식부터 사리에 맞지 않는다. 위안부 소녀상 처리 문제는 말할 것도 없다. 우리 정부는 합의 전날까지도 소녀상 이전은 말도 안된다고 펄쩍 뛰었다. 하지만 합의문은 "관련 단체와 협의를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할 것"이라는 문구가 들어갔다.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 불가역적으로 종결됐다고 약속하고 국제사회에서 이 문제를 놓고 상호 비난하지 않는다는 것에 합의해준 것은 더욱 납득하기 어렵다.

위안부에 대한 일본정부의 책임이나 강제성을 입증할 만한 역사적 자료는 많다. 이를 감안하면 앞으로도 평가와 입증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그럼에도 이번 합의는 이같은 길을 원천봉쇄했다. 오히려 일본은 책임이 없고 사죄할 이유도 없다는 것을 보증해준 것과 다름없다.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문제를 비난하지 않겠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국제무대에서 인류 보편적 가치인 인권 문제에 대해 일본과의 합의가 있기 때문에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어느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한·일간 좁은 의미의 외교 문제로 위안부 문제를 축소·폄훼하려는 일본의 의도에 말려들었다고 해도 할 말이 없게됐다. 아베 총리가 합의안을 들고 "역사적인 날"이라고 말한 게 이런 배경이다.

기실 위안부 문제는 일본이 고개 숙이지 않는 이상 애초부터 한계가 명확한 사안이다. 일본군의 전시 잔혹행위를 부인하고 있는 아베 총리의 역사인식을 감안하면 합의사항의 진정성 있는 이행도 뜬 구름 잡는 얘기나 다름없다. 소녀상을 철거하지 않으면 10억 엔을 주지 않겠다거나, 아베가 앞으로는 사죄를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는 보도가 나오는 것을 보면 문제가 불거지는 것은 불을보듯 뻔하다. 이런 점에서 위안부 문제는 끝난 게 아니라 시작에 불과하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합의는 역설적으로 양국에 어떤 길이 진정한 합의에 이르는 길인지를 보여준 셈이다. 해법은 새로 마련돼야 한다. 한·일간의 과거사 문제는 위안부 단 한건만 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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