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승 교수의 '열두 발자국', 인간과 AI와 로봇의 경계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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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 교수의 '열두 발자국', 인간과 AI와 로봇의 경계를 말하다
  • 부산시 해운대구 김강산
  • 승인 2019.06.18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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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 장래희망을 묻는 선생님의 질문에 친구들은 각양각색의 대답을 내놓곤 했다. 대통령, 과학자, 연예인 등 다양한 답변이 나오고, 내 차례가 됐을 때 나는 항상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우연히 접한 <해리포터>라는 소설을 읽고 나서부터였다. 하지만 그 꿈은 오래가지 못했다. 꿈을 위해 자주 써왔던 습작들을 여러 공모전에 내 보았지만 번번이 낙방했을 때, 나는 재능의 부족을 느끼며 장래희망 칸에 쓸 새로운 직업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아쉬움 때문일까? 그 이후로 나는 글을 쓰지는 않았지만, 수많은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독서의 분야는 늘 한정적이었다. 소설 말고 다른 분야의 책을 읽어보려 시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치는 내게 너무 딱딱했고, 학문은 어려웠으며, 과학은 전형적인 문과 감성인 내게 멀게만 느껴졌다. 그렇기에 이번 <열두 발자국>은 내 인생 처음으로 완독한 과학 관련 책이었다.

책장을 덮고 가장 먼저 한 행동은 맨 앞장, 저자의 약력으로 돌아가 이 사람이 진짜 과학자가 맞나 확인한 것이었다. 그만큼 이 책에는 그의 학문에 관한 지식 뿐 아니라 ‘인문학적' 통찰력이 담겨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름부터 ‘복잡’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복잡계 과학을 간략하고 명쾌하게 비유를 통해 설명하는 모습은 전업 작가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인공지능 이미지(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인공지능 이미지(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인간이라는 경이로운 숲을 향해 과학자들이 내디딘 열 두 발자국", 즉 열두 장의 내용 중 어느 하나 인상적

초등학교 시절, 장래희망을 묻는 선생님의 질문에 친구들은 각양각색의 대답을 내놓곤 했다. 대통령, 과학자, 연예인 등 다양한 답변이 나오고, 내 차례가 됐을 때 나는 항상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우연히 접한 ‘해리포터’라는 소설을 읽고 나서부터였다. 하지만 그 꿈은 오래가지 못했다. 꿈을 위해 자주 써왔던 습작들을 여러 공모전에 내 보았지만 번번이 낙방했을 때, 나는 재능의 부족을 느끼며 장래희망 칸에 쓸 새로운 직업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아쉬움 때문일까? 그 이후로 나는 글을 쓰지는 않았지만, 수많은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독서의 분야는 늘 한정적이었다. ‘소설’, 다른 분야의 책을 읽어보려 시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치는 내게 너무 딱딱했고, 학문은 어려웠으며, 과학은 전형적인 문과감성인 내게 멀게만 느껴졌다. 그렇기에 이번 ‘열두 발자국’은 내 인생 처음으로 완독한 과학관련 책이었다.

책장을 덮고 가장 먼저 한 행동은 맨 앞장, 저자의 약력으로 돌아가 이 사람이 진짜 과학자가 맞나 확인한 것이다. 그만큼 이 책에는 그의 학문에 관한 지식 뿐 아니라 ‘인문학’적 통찰력이 담겨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름부터 ‘복잡’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복잡계 과학을 간략하고 명쾌하게 비유를 통해 설명하는 모습은 “전업 작가가 아닌가?”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인간이라는 경이로운 숲을 향해 과학자들이 내디딘 열 두 발자국’, 즉 열두 장의 내용 중 어느 하나 인상적이지 않은 것이 없었지만, 그 중 특히 기억에 남았던 것은 책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인공지능’에 관한 그의 통찰이었다.

소위 AI라고 불리는 이 기술은 다가올 미래가 아니다. 이미 다가온 현실이다. 우리는 이미 많은 AI와 살아가고 있다. 당장 손에 들고 있는 핸드폰의 빅스비, 시리와 같은 것에서부터 신문방송학도인 내 장래를 위협하는 기사 쓰는 로봇까지. 이런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은 물론 큰 편리함을 안겨주지만 늘 따라붙는 걱정도 있다. “그래서 이런 로봇이 위험하진 않은거야?”, “로봇이 인간에게 적대감을 가지면 어떻게 해?” 나 또한 각종매체에서 이미 수도 없이 다루어졌던 인간과 로봇과의 전쟁이 현실이 되는 것은 아닌가 걱정한 적이 있다. 저자는 이런 사람들의 물음에 명쾌하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한 답변을 내놓는다.

먼저 로봇이 인간을 멸망시키는 터미네이터식 디스토피아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한다. 아직 인간이 어떻게 의식을 가지고, 적대감을 가지는지 조차 파악하지 못했는데 로봇에게 그러한 감정들을 주입하기는 요원한 일이기에. 대신 저자는 다른 것이 더 두렵다고 말한다. 발전하는 인공지능에 ‘사고’를 뺏기는 일. 이 역시 명쾌한 예시가 동반되어 이해를 도왔다. 16년에 세계를 충격에 빠트렸던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 그 대결에서 이세돌과 마주앉았던 것은 중국인 ‘아자황’이다. 그가 했던 일은 알파고가 두는 수를 그대로 바둑판에 옮기는 것. 의사결정의 주체가 인간이 아닌 로봇이 된 것이다.

이 대목은 나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생각을 멈춘 채 로봇이 내린 의사결정에 따르는 인간. 그런 미래가 오게 된다면 과연 인간을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일까? 수많은 정보를 바탕으로 계산해 결과를 도출하는 로봇, 로봇이 내린 결과에 따르기만 하는 인간. 과연 무엇이 인간에 가까운 것일까?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이 이어진다면, 끝없이 사고하는 것을 멈추고 인공지능을 맹목적으로 따라간다면. 생각하는 법을 잊은 인간은 ‘로봇화’ 될 것이다. 그렇게 다가온 미래는 그렇게나 우리가 걱정하던 로봇과의 전쟁만큼 끔찍한 결과를 나을 것 같다. 기술의 발전도 좋지만,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역시 고민해봐야 할 문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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