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저기 계십니다”...사물존칭, 해도 너무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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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저기 계십니다”...사물존칭, 해도 너무 하네
  • 취재기자 임소현
  • 승인 2015.03.22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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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객업소 종업원 중심 무조건 존댓말 풍조..."국어 왜곡 심각" 지적도

 대학생 정해정(23, 울산시 남구 무거동) 씨는 며칠 전 지인들과 함께 커피를 마시기 위해 대학가 앞 한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을 찾았다. 정 씨가 커피를 주문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주문한 커피가 나왔다는 신호가 울렸고, 커피를 받으러 온 정 씨에게 아르바이트생은 “주문하신 커피 나오셨습니다”라고 말했다.

직장인 윤모(24, 부산시 진구 부전동) 씨는 주말에 백화점에서 쇼핑하다가 점원에게 화장실 위치를 물어봤다. 점원은 “화장실 저기 계십니다”라고 말했다.

주부 배순자(52, 경남 김해 부원동) 씨도 최근 휴대폰 부가 서비스에 가입하기 위해 통신사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다가 비슷한 경험을 했다. 고객센터 직원이 “고객님께 알맞는 부가서비스가 많이 준비 돼 있으십니다”라고 했기 때문이다.

요즘 사물에 대한 존칭어가 난무하고 있다. 병원에 가게 되면, 간호사들이 “처방전 나오셨습니다”라고 말한다. 은행에서는 “수수료 500원 있으십니다,” 음식점에서는 “주문하신 음식 나오셨습니다,” 심지어 편의점에서는 “여기 잔돈 있으세요” 등 각종 서비스 업소의 젊은 종업원들이 손님이 아닌 사물에게 존칭어를 남발하고 있다.

이처럼 요즘 유통업계 종사자, 백화점 판매직, 콜센터 상담원 등 많은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잘못된 사물 존칭 사용을 하는 것이 문제시되면서, 이에 대한 기사나 칼럼도 늘어나고 있다. 1월 14일자 <조선일보> 칼럼은 사물존칭에 대해 “공손함이 지나치니, 누구를 향한 존경심인지조차 모르겠다”고 썼다. 또한, 2월 1일자 <중앙일보> 칼럼은 “사물 존칭의 사용은 소비자를 존중하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사물만도 못한 존재로 (소비자를) 취급하는 비합리적 소통이다”라고 사물존칭 사용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3월 11일자 <데일리 한국> 기사와 3월 17일자 <세계일보>, <서울경제> 기사들도 이러한 사물존칭 사용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2월 1일자 <중앙선데이> 칼럼에 따르면, 유통업체마다 서비스를 강조하다보니 무조건 손님을 잘 모셔야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게 된 직원들이 사물까지 높이는 잘못된 존칭이 확산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커피 전문점 카페베네 관계자 박모(32) 씨는 사물 존칭 사용이 일부 고객들이 직원을 자신보다 아래로 보는 경향과 무조건적인 서비스를 해야 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박 씨는 “고객에게 최대한 친절히 응대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종업원들의) 이러한 잘못된 언어 사용이 습관이 됐다”고 말했다.

경성대 국문과 나찬연 교수는 사물에 존칭어를 쓸 수 있는 경우는 사람의 신체, 생각, 개인 소유물 등에 국한된다고 설명했다. “선생님의 손이 크십니다,” “선생님의 시계가 멋있으십니다”와 같이 사람의 신체가 소유뮬이 문장의 주어가 될 경우는 ‘-으시-'를 넣어 사물에 존칭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 교수는 하지만 최근에 가게, 식당, 병원 등에서 종업원들이 자주 사용하는 사물 존칭은 문법 규칙에 어긋난 표현이라고 지적했다. 나 교수는 “이는 지나치게 상대방을 의식하여 주체 높임법을 남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3월 초, 사물존칭의 ‘원조’로 지목되는 일부 커피 전문점들 중 카페베네, 파스쿠찌, 망고식스는 상호 간의 작은 매너를 변화시켜 컨 사회 변화를 이루자는 공공 프로젝트인 LOUD(Look over Our community, Upgrade Daily life: 우리 공동체를 보살펴 우리 일상 삶을 드높이자) 프로젝트를 벌이기로 했다. 이들은 LOUD 캠페인의 일환으로 사물 존칭 사용을 바로잡기로 하고 이 달부터 “사물을 고객님보다 높이지 않습니다”라는 문구를 테이크아웃용 컵홀더에 적어 넣을 예정이다. 그리고 바른 경어 사용에 대한 직원 교육도 강화할 방침이다.

▲ LOUD캠페인의 일환으로 컵홀더에 사물존칭 사용을 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문구가 새겨져 있다.(사진: 취재기자 임소현).

망고식스 매장 매니저 황은아(27, 부산 수영구 광안2동) 씨는 요즘 직원들에게 사물존칭에 대한 문제점을 수시로 알리고 교육한다. 사물존칭을 바로잡자는 문구가 새겨진 컵홀더도 고객의 음료와 꼭 함께 나가도록 직원들에게 지시하고 있다. 또한, 매장 직원들은 한 달에 두 번 정기적으로 사물존칭 바로잡기에 대한 교육도 받는다. 황 씨는 “잘못된 언어에 대한 교육으로 직원들의 언어 습관이 많이 개선됐고, 컵홀더에 새겨진 문구에 대해 고객님들도 많은 관심을 가진다”고 말했다.

현대 홈쇼핑도 전화 자동 주문 시 소비자들에게 들려주는 안내 멘트에서 과도한 존칭, 불필요한 설명, 서술어 등을 대거 삭제한 '스피드 ARS'를 도입하는 등 엉터리 높임말을 고치려는 노력을 시작했다. 현대 홈쇼핑 관계자는 시빅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과도한 존칭 사용에 대한 불만이 많이 줄었고, 직원들도 간단, 명료해진 안내 멘트에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료업계 또한 “오늘 내시경검사 있으십니다”, “식후 드셔야 할 약이세요” 등 사물존칭 사용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강동 경희대병원은 의료업계 최초로 높임말 잘쓰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현장에서 빈번하게 잘못 쓰이는 사물존칭에 대한 사례를 수집하여 이를 바로잡는 것이 목표다. 강동 경희대병원 관계자는 저너화 인터뷰에서 “아직 완벽하진 않지만, 병원 내 모든 종사자들이 환자들을 위해 바른 높임말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성대 국문과 박훈하 교수는 과도한 사물존칭어는 사람의 가치와 품격을 사람보다는 사람이 가진 옷과 차와 시계 등이 결정하는 세태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훈하 교수는 “비싼 물건이 존대의 대상이 된 사회는 앞으로 우리가 고민해야 할 중요한 문제임이 분명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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